고창과 부안 역사의 한 축 줄포만
몇 달 전 필자는 절친한 사람들과 막걸리를 하면서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한 분이 날씨가 풀리면 함께 줄포만으로 여행을 가자고 한다. 줄포만! 고창 역사의 한 축이지만 고창사람들 관심 밖의 바다였다가, 2010년 2월 람사르습지로 등록되면서 습지의 중요성에 대해 조금씩 인식하기 시작한 곳이다.
등록된 고창과 부안의 갯벌은 고창갯벌습지보호지역 10.4km²와 부안 줄포갯벌습지보호지역 4.9km² 외에 고창군 주변갯벌 30.2km²이 포함되어 있다. 고창과 부안의 갯벌은 고창군과 부안군의 사이에 있는 줄포만에 위치한 반폐쇄적인 내만형의 갯벌로 서쪽이 트인 바다이다. 줄포만의 갯벌은 펄갯벌과 혼합갯벌 및 모래갯벌 등의 다양한 토질과 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또한 이곳은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의 서식처로 이용되는 등 전국에서 몇 안 되는 곳으로 그 보존가치가 높은 곳이다.
줄포만은 갯벌이 넓게 펼쳐져 있으며, 갯골을 따라 남북 양안에는 작은 포구가 발달하였다. 그 중 흥덕의 후포와 사포는 1920년대까지 이곳의 중심 포구였으나 경제사회적 요인으로 줄포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줄포 또한 만에 토사가 쌓임에 따라 곰소로, 다시 격포로 중심항이 이동하여 번성하고 있다.
소학개와 줄포의 갯길
안 선생님의 줄포만 여행 제안이 겨울은 안 되고 날씨가 풀려야 된다는 말씀이 선뜻 이해가 안 되었다. 뭐! 요즘 자동차로 갈 수 없는 길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고 수영을 하면서 가자는 것은 아닐 터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안선생님은 그 여행 장소가 갯벌이란다. 아니 줄포만의 질퍽한 갯벌을 왜 걷자는 것인지… 그러자 안 선생님은 “예전에 부안면 마을조사를 하였는데, 마을의 고로분이 상포의 소학개에서 줄포까지 갯벌로 걸어서 다닌 옛 갯길이 있었다”고 한다. 필자는 “에이! 선생님 농담도 잘하시네요. 갯골과 갯벌로 뒤덮힌 줄포만을 어떻게 걸어서 가요?”라고 재차 확인하고자 핀잔주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기겁하며 “정말로 걸어서 갔데요”라고 하셨다.
하긴 당시 부안면 상포 인근에서 사시던 분들이 줄포까지 가려고 하면 부안면 난산을 거쳐 흥덕의 사포와 후포를 지나 가야하는 약 20km의 먼 거리이다. 그러나 상포 소학개에서 바다인 갯벌을 통과하여 줄포에 간다면 약2.5km만 걸으면 되었을 것이다.
서해안은 밀물과 썰물이 하루에 2회 발생한다. 아마 이곳 사람들은 이른 아침 썰물 때 갯벌을 걸어서 줄포에 가서, 일을 마치고 오후 썰물 때 다시 돌아왔을 것이다. 특히 이곳은 줄포만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농담으로 한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갯길 복원과 활용 방향
아직 정확하게 어느 곳의 갯길을 따라 이동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고로들의 증언과 고지도상으로 확인해 본 결과 상포에서 줄포면 우포리와 부안면 신천에서 후포 인근 사이의 갯벌을 지나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갯벌은 상포에서 줄포의 최단거리이기도 하지만 깊고 큰 갯골 하나만 통과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여간 이에 대한 정밀조사는 5월 이후 조사팀을 꾸린 후에 탐사할 예정이다.
최근의 관광은 보는데서 멈추는 관광이 아니라 느림의 미학이라 할 수 있는 녹색관광이다. 그 대표적인 관광 상품이 제주 올레길로 세계에 제주를 소개하는 대표 문화로 자리 잡았다. 첫 올레코스가 열린 2007년, 3천 명에 불과하던 올레 탐방객은 2011년 백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정부나 각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의 자연경관과 스토리를 연계한 길을 만드는데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제주도 올레길이 성공한 것은 보통의 관광지에선 보기 힘든 마을마다의 풍광, 고을마다의 느낌과 마주하는 신비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고창에도 질마재길과 동학 마실길 등이 있다. 아마 스토리만 뺀다면 전국의 마실 길들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갯길은 아직까지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다. 아마 세계에서도 갯길은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있다면 바닷가를 따라 걷는 길이 전부일 것이다. 정부나 지자체는 옛 갯길을 복원하자고 하면 수십억 수백억을 투입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많은 돈이 투자되면 될수록 자연은 파괴된다. 갯길은 자연 그대로 갯벌을 맨발로 걸으면 되고, 갯골에는 나무 몇 개를 놓아 자연스럽게 건너면 된다. 단 갯길 걷기는 예약제로 운영하고, 밀물과 관련된 안전수칙을 철저히 지키도록 해야 한다. 예산 투입은 안전시설과 간단한 샤워장 및 낙조를 관찰할 수 있는 시설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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