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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오노조시 40여명, 고창읍성 방문
나카무라 기자 / 입력 : 2012년 05월 21일(월)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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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오카현 오오노조시(大野城市)의 시관계자들과 일한문화교류회원들 40여명이 지난 5월 15일 고창을 찾았다.
오오노조시는 고대 백제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이다. 특히 663년 왜군이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 4만여 명의 대병을 파병했다. 파병된 왜군은 663년 8월 26일과 27일의 양일간의 백강해전(부안군 두포천과 계화도 내해)에서 기상을 살피지 않고 군선의 수만 믿고 당나라 수군을 공격하였다가 패배하였다. 이 전투는 동아시아 역사상 한·중·일 삼국이 모두 참전한 역사상 최초의 해전이었다.
해전 이후 백제부흥군의 지도자였던 부여풍은 고구려로 도망을 가고, 동년 9월 7일 백제부흥군은 주류성에서 항복하였다. 백강구전쟁의 패배와 왕성 주류성의 함락이 왜에 전해졌을 당시, 일본서기에 “주류성이 항복하였다. 일을 어떻게 할 수 없다. 백제의 이름은 오늘로 끊어졌으니, 조상의 묘가 있는 곳을 어찌 또 갈 수 있겠는가?”라고 기록되어 있다.
일본열도로 도망한 백제인들은 가장 먼저 큐슈와 세토나이카(일본 본토와 시코쿠 사이의 바다) 주변에 많은 백제성들을 축조하였다. 665년 8월 달솔 답발춘초가 나가토(長門)국에 성을 쌓고, 달솔 억례복류와 사비복부(四比福夫)를 쓰쿠시(筑紫)국 오오노조(大野城)과 기성(椽城), 669년에는 쓰시마에 가네다(金田)성 등 많은 성들을 쌓았다. 바로 백제인 억례복류와 사비복부가 오노산에 쌓은 성이 오오노조이다. 고창은 백제부흥운동이 부안의 주류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때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을 것이다. 이를 말해주는 것이 고창의 8개소의 백제계 산성이다. 오오노조시 관계자들이 고창을 방문한 것도 이와 같은 역사적 연관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고창문화연구회 백원철 회장은 야경의 고창읍성을 돌며 해설을 해주었다. 행사를 주관한 이병열 사무국장은 “고창군과 오오노조시는 한일고대관계사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양자 상호민간 수준의 깊은 교류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또한 국제화시대와 한일 간의 상생을 위해 초·중·고학생들과 사회단체간의 교류가 필요하다”며 오오노조시와 고창군의 민간교류 활성화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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