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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적 가치관
토장 기자 / 입력 : 2012년 07월 25일(수)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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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孟子)는 성선설에서, 인간의 본성은 본래 선(善)하여 선천적으로 도덕의 근본을 가지고 태어나며 이를 확충할 능력이 있고, 악(惡)은 외물(外物)에 유혹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에 반하여 순자(筍子)는 성악설을 주장하면서, 인간은 감성적 욕구에 의해 악한성품을 타고나며 선(善)은 사람이 하기 나름으로 노력하면 성취되는 것이라 했다. 형이상학적 사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나, 인간의 본성이 어떻든 생후에 영향을 미치는 교육, 환경 등이 중요 하다는 뜻일 게다.
그렇다면 선과 악이 칼로 자르듯 확실하게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일까? 생각키로 선악의 개념이란 모호하고 복잡하다. 고대의 철학자나 성인, 근현대에서 활략하는 학자들 모두, 서로 다른 견해와 해석을 내 놓는 것이 그 증거다. 시대에 따라 변하고 환경에 따라 전도(顚倒)되며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결국 주변이나 개인의 가치(價値)에 의하여 선악의 개념은 변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맹자와 순자도 살아가면서 어떤 여건에서 인격이 도야되고, 어떠한 학문을 이루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주장은 일치한다.
일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기둥이 되는 가치관은 여하히 형성되는가에 따라, 화합과 타협 속에서 건설적 삶을 사느냐, 아집과 편견 속에서 힘들게 사느냐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개인의 가치관은 선악의 개념을 떠나 가정, 사회, 교육과 주위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조성되는바, 사람의 얼굴만큼이나 천차만별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치관은 고래로 내려오는 전통, 풍습, 공동의 약속으로 인한 사회규범, 시대를 대표하는 패러다임 등으로, 선한 가치관이 되기도 하고 악한 가치관이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절대 다수가 옳다고 믿는 관습 및 규범은, 그 시절 사회에서만은 선하고 정의로운 가치임에 틀림없는데도, 어떤 이는 누가 뭐라고 하던 자신의 가치관을 일편단심 절대로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요즘 통일지상주의에 빠져 애국가(愛國歌)를 국가(國歌)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잡다한 세상살이 모두를 법(法)으로 규정하기란 불가능함이 세상 이치인데, 법 제정여부를 트집하는 것은 불문법적인 관습과 사회규범을 완전히 무시하자는 처사다.
6·25를 격지 않은 젊은 사람들은 전쟁이 휩쓸고 간 피와 눈물, 이산의 아픔과 구곡간장이 녹는 고통을 알 리 없고, 배고픈 설움을 격지 않은 이들은, 아버지 세대들이 잘살아 보겠다고 밤을 낮 삼아 땀 흘려서 이뤄놓은 풍요의 고마움을 알 수 없을 것이라 이해한다고 해도, 어떤 환경 어떤 경로에서 어떻게 가치관이 형성되었길레, 이미 낡아버린 이념에 사로잡혀 허황한 주장을 펼 수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혹자는 속을 들여다보면 위선과 거짓이 존재하는 세상이라,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있지 않다면서, 그들의 주장이 최악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살지 않으려면 몰라도, 자유의 가치를 지향하는 자본주의국가의 정체성 속에서 살아가려면, 자신의 가치관을 유연하게 변화시킬 필요는 있다.
건설적 가치관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고 사회규범을 지키며, 아집을 버리고 상식의 현실을 인정하여 슬기롭게 대처하는 곳에 그것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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