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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의회 무용론, 이유 있다
김수복(르포 기자 / 입력 : 2012년 08월 27일(월)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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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포함한 영어권은 물론이고, 유럽 각국에서 제1급의 작가로 대접받고 있는 현존 최고의 소설가 줄리언스 반스. 그의 어록에 이런 말이 있다. “공무원은 언제나 도덕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매력적인 직업이다.”
‘언제나 도덕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공무원이란 고통스런 직업인 것이 아니라 매력적인 직업이라는 이 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곳에서 글을 쓰는 작가는 뭐랄까, 일언이 폐지하고 행복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을, 그 사람의 행동거지를 찬양하는 것만큼 짜릿하게 신명나는 게 또 무엇이 있을 것인가. ‘저도 죽고 나도 죽고’ 다 죽게 되어 있는 인간 세상에서 누구를 비판하는 것만큼 고통스런 것은 또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고민 많은 사람들은 가끔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아직 멀었구나. 격려와 칭찬을 해줄 준비는 되어 있는데, 그것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칭찬 받을 준비가 안 된 집단 가운데서도 악명 높은 그룹을 들자면 아무래도 지방자치, 그 중에서도 특히 기초의회를 첫손에 꼽아야 할 것이다.
지방자치 제도가 새로 도입된 지도 어언간 이십여 년을 바라보는 시점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우리의 기초의회는 도무지 변할 줄을 모른다. 아니, 변하기는 변했다. 긍정적이 아니라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퇴행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고창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황토배기유통이라는 대형 유통회사가 있다. 표방하는 명칭은 유통이지만 생산까지 손대고 있는 이상한 회사다. 이 회사는 출범부터 말이 많았고, 출범 뒤에는 고창의 명예를 진흙탕 속에 처박을 수 있는 한 끝까지 완벽하게 처박아 버리고, 자살이라도 하겠다는 것인지 복마전도 그런 복마전이 없고, 점입가경도 그런 점입가경이 없다. 급기야는 수사당국에서 회사 대표의 신체를 압수수색했다는 진귀한 뉴스가 생산되기에까지 이르렀다.
황토배기유통은 몇몇 개인이 만든 사기업이 아니다. 군에서 삼분의 일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고, 군민들에게 주식을 매입해 달라고 적극 권장한 바 있는 일종의 공기업이다. 따라서 의회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의무가 있고 권한도 있다. 수사당국이 나서기 전에 의회가 먼저 조사할 것은 조사하고 따질 것은 따져서 그 결과를 수사당국에 고발하는 것, 이게 아름다운 순서이고 상식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아니다. 현실이 어떠냐고 묻고 말 것도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보여준 군의회 의원들의 활동양상을 볼 때 그만한 능력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만한 패기가 엿보이지도 않으며, 그럴 만한 의지 또한 없어 보인다. 요컨대 고창의 군의회는 오래 전부터 이미 그런 ‘거창한’ 일에는 관심을 두지 못해 왔다는 것이다. 이것을 정리하자면 이런 말이 된다.
큰일은 모두 군수님이 알아서 하세요. 우리 의원들은 자잘한 일들에만 신경을 쓸랍니다.
지나친 표현이라고 볼멘소리를 하는 의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도 많은 증거들이 쌓여 있다. 최근의 아주 간단한 사례 하나만 들어보자. 모두 합해서 열 명인 의회 의장을 누가 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샅바싸움에 물밑경쟁에 온갖 기술을 동원하다가, 끝내는 세 불리한 쪽이 퇴장해 버린 사건, 이 사건은 일부 의원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주는 아주 상징적인 추태로 기록될 만하다.
이런 ‘찌질한’ 일이 왜 반복되는가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한층 더 심각하게 우스워진다. 에두를 필요도 없이 그냥 직설적으로 말해보자. 예전에 의장을 한 번 했던 사람이 또 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애’들이 말을 잘 안 들어준다. 그래서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여기서 무슨 말을 더 할까. 그릇이 웬만큼 된 사람이라면, 자신이 앉았던 자리는 이제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좀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는 모범 정도는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고, 이런 말을 굳이 해야 할까?
그래도 한 마디만 더 토달아두자. 상황이 이런 지경이다 보니 국가의 재정으로 동네 건달들 놀이터 만들어준 것이라는 식의 기초의회 무용론이 제기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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