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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같은 벼’ 갈아엎는 성난 농심
벼 백수 피해 실질적 지원 요청…농작물 재해보상법 제정 촉구
김동훈 기자 / 입력 : 2012년 09월 17일(월)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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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창군농민회가 지난 9월 11일(화) 오전 10시 흥덕면 송암마을 앞 논에서, 수확을 앞두고 백수 피해를 입은 벼를 갈아엎고 있다. |
“쉴날없이 뼈 빠지게 지은 농사, 가뭄과 태풍으로 망하고, 우리 농민은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하늘에서 내린 재해라고 하지만, 넋놓고 또 농사지으면 되겠지라고 하기엔, 우리 농민들에겐 2차, 3차 피해와 상실로 더 큰 곤경에 처해있다. 언론 보도에선 태풍의 흔적도 없이 복구가 되어가고, 건장한 장병들이 뉴스 한 장면을 채워가고 있지만, 우리 현실에선 과연 그러한가? 축사 지붕이 날아가고, 연일 이어지는 비로 인해, 고스란히 그 비를 다 맞고 있는 소를 보는 농민들의 가슴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하우스 비닐이 찢기고 날리고,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는 들판은 전쟁이 휩쓸고 간 듯 폐허로 변해 있음에도, 일할 사람이 없어 바라보고만 서있는 늙은 농부의 마음은 어떠한가! 언론매체를 통해 신속하고 정확하게 태풍피해를 다 해결한 것처럼 떠벌리는 정부와, 앵무새를 자처한 언론매체는, 우리 농민들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고창농민 백수 피해 논 갈아엎기 투쟁 결의문 중에서>
고창군농민회(회장 조성기)는 지난 9월 11일(화) 오전 10시 흥덕면 송암마을 앞 논에서 ‘벼 갈아엎기 투쟁’을 진행했다. 이번 태풍으로 생긴 벼 백수 피해를 실질적으로 보상하고, 체계적인 복구지원을 담은 농작물재해보상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지난달 태풍의 잇따른 상륙으로 알곡이 차지 않고 벼 이삭이 마르는 ‘백수(白穗)’ 현상이 발생했다. 고창에서만 전체 논 면적 1만3149헥타르 중 40%인 5천여 헥타르의 논에서 백수 피해가 보고됐다. 하지만 절박한 상황과는 달리, 정부는 백수 피해에 관습적인 대처를 하고 있고, 이에 성난 농심은 “정부의 실질적인 해결, 근본적인 해결을 촉구”하며, 논을 송두리째 갈아엎고 있는 것이다.
현재 백수피해에 대한 정부 지원은, 피해규모가 50% 이하이면 농약대(=농약구입비)를 적용해 헥타르당 지원금 10만원을 지급하고, 피해규모가 50% 이상이면, 대파대(=종자구입비)를 적용해 헥타르당 220만원(보조 50%, 융자 30%, 자부담 20%)을 지원한다. 아산면의 한 농민은 “피해액에 비해서는 터무니없는 복구비”라며 “80% 이상 백수 피해를 본 농민은 수확의 의미가 없다”며 탄식했다.
농민회 이인구 사무국장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됐어도 현실성 없는 복구비로 농민들은 또한번 분노하고 있다”며 “농작물 피해보상은 전무하고, 농약대·대파대 등의 정부 대책으로는 빚만 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벼 갈아엎기 투쟁’에 모인 농민 100여명은 이러한 허울뿐인 복구지원이 아니라 실질적인 피해 보상을 정부에 요구했다. 더불어 매년 반복되는 재해피해에 대한 체계적인 복구 지원책을 담은 농작물 재해보상법 제정을 촉구했다.
고창군농민회 조성기 회장은 “벼 이삭은 쭉정이가 되어 이미 수확을 할 수조차 없는 지경인데도, 공공비축미로 거둬들이네, 농약방제를 통해 더 이상 피해가 없도록 하네, 탁상행정의 병폐를 보여주고 있다”며 “민간보험회사가 아닌 정부 차원에서 농작물 재해보상법을 만들어 농민들이 맘 놓고 편하게 농사지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농작물재해보험은 가입대상이 한정적이고 자기부담금이 높아 농민들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며 “품목 확대와 농민부담금 완화를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농민들은 농어업재해대책법을 넘어 농작물재해보상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농어업재해대책법은 농약대와 대파대를 지원하고 있지만, 농어업재해보상법은 ▲자연재해로 인한 감소 소득에 대한 직접 지불 ▲영농 재기를 위한 경제적 지원 ▲농지 및 피해시설에 대한 복구비 ▲농지은행 등을 임대한 농민들에게 임대료 감면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 제16호 태풍 산바가 17일(월) 제주 해상까지 북상할 것으로 예고돼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현재 벼 백수피해 지원액
피해규모가 50% 이상일 때, 실질적인 지원책은 대파대 헥타르당 110만원, 1제곱미터당 110원이다. 가구당 80만원의 생계비도 지원되지만, 생계비는 피해농지 기준이 아니라 소유농지 전체평균을 따진다. 예를 들면, 10필지 중 5필지가 80% 피해를 입었다면, 대파대는 5필지 값을 받지만, 전체평균은 40%가 되므로 생계비는 받지 못한다.
하여튼 대파대와 생계비를 모두 받아도 지원금은 1제곱미터당 200원 수준에 그친다. 지난 3월 통계청에 따르면 논벼의 경우 1제곱미터당 생산비는 628원, 순수익은 339원이다. 여기에 농어촌공사에서 논을 임차한 경우 1제곱미터당 250원 가량의 임대료까지 내야한다. 이 임차료의 경우, 피해율이 80% 이상이고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 전액 감면되지만, 이 역시도 5년 이상 장기임대차 계약자만 해당된다.
특히 소규모 농가에게는 더욱 치명타다. 정상적으로 수확해도 1~2헥타르 순수익은 340~680만원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 정한 2인 가구 연간 최저생계비인 1130만원에 턱없이 모자란 상황인데, 피해 지원금이 200~400만원에 그친다면 사정은 심각할 수밖에 없다. 물론 다른 부대 수입을 고려하지 않은 계산이지만, 현재까지의 지원대책이 현실적인 지원대책이 되지 못하다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벼 농작물재해보험 지원액
농작물재해보험은 국비 50%, 도비 10%, 군비 20%가 지원되며 자부담은 20% 정도면 가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지역농협에 따르면 이번 백수 피해는 보상요건에는 들어가지만, 보상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행정기관이 조사한 피해율과는 별도로 현장에서 목측 조사를 통해 수확량 기준 피해율을 산정한다. 피해율이 50% 판정 나더라도 자기부담율 20%는 제외된다. 30%에 대한 보상도 해당지역 알피시의 최근 5년간 거래가격과 품종별 평균 수확량 등에 따라 산정하기 때문에 피해 논의 생산량과는 무관하다. 다만, 목측 조사결과에 이견이 있을 경우, 수확 후 물량을 알피시로 가져가 실측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부담율 포함 50%를 보상받는다 해도, 나머지 벼의 품질 저하로 인해 손해도 발생할 수 있어, 피해 산정 과정에 논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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