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지난 9월 21부터 3박4일로 아이들을 데리고 중국 상하이에 다녀왔다. 이 여행은 지난해 우리 딸이 한국외대 중국어평가에서 최우수 평가를 받아 부상으로 받은 여행상품권으로 다녀 온 것이다. 딸아이가 중국어로 받은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중국을 경험시켜주고 싶었다. 우리 두 아들도 현재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 그러한 그들에게는 중국체험은 꼭 도움이 될 것이다. 백번 듣는 것 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고 하는 것처럼.
상하이의 대표적인 관광지 2일, 항주관광 1일이라는 짧은 투어였다. 현지 중국요리가 느끼해서 못 먹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요즘은 많이 개선된 것 같다. 어디 가도 깔끔하고 맛있는 만찬이 나와, 함께 간 한국관광객들이 식사하기에 충분히 만족했던 모양이다. 2년 전 역시 아이들과 함께 중국의 대도시인 광저우에 간 적이 있다. 중국은 그때보다 물가가 더 상승하였고, 게다가 환율이 올라 이젠 뭘 사도 중국이 더 비싼 것 같이 느껴졌다.
현재 반일 감정이 가장 심하다고 보도되는 곳이 상하이지만, 9월의 상하이행은 봄부터 정해진 일이었다. 여름을 지나 설마 일본과의 관계가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이런 때에 일본인이 상하이를 가냐고 주변사람이 많이 걱정해주며 놀란다. 그러나 한국 여행단체 안에 가는 것이므로, 말만 하지 않으면 일본인과 한국인의 구별은 어렵다. 우리 아이들에게 일본어 사용은 호텔 안에서만 해야 한다고 약속하고, 일본의 빨강여권은 여행사에서 받은 커버로 끼워 인천공항을 떠났다.
우리가 간 곳이 안전을 우선으로 하는 관광지이기 때문에 그런지, 과연 상하이 어디를 가도 필자는 반일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중국의 글자는 약자 한자이기 때문에 뜻은 대강 알 수 있다. 반일데모가 마음에 걸려 계속 찾았지만, 결국 하나도 찾지 못했다. 상하이의 일본음식점이나 일본과 관계된 가게를 젊은 중국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모습이 보였다. 물어보면 평상시와 별 다를 것이 없다고 한다. 반일감정이 있다 해도, 일본계 기업들은 이제 어쩔 수 없을 만큼 중국에 깊이 뿌리를 내려 버려 중국을 나가기도 힘든 것 같다. 겨우 여행의 마지막에 찾은 반일은 상하이에서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본 한국의 신문기사 뿐이었다.
그러나 상하이에도 인천공항에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산인해를 이루던 일본인 관광객의 모습은 거짓말처럼 보이지 않았다. 8월부터 이어진 반일보도의 공포감이 확실히 관광객의 왕래를 중지시켰다. 현재 아시아 국가 간의 대립은 좋을 것이 없다. 이번 일로 가장 이득을 얻은 자들은 무기를 대량으로 팔게 될 미국의 군사기업일 거라고 생각해 본다. 한중일의 싸움이 결국의 먼 강대국의 이득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한국도 중국도 일본을 상대로 하는 많은 사람이 있을 터인데, 대량으로 움직였던 일본인 관광객이 격감해버린 지금, 그들은 어떻게 먹고 사는 것인지. 필자의 블로그에 오는 질문을 보면 일본의 한류 팬들은 전처럼 마음 편하게 한국에 오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한국의 반일감정의 보도 때문에 무서워 못 오는 것 같다. 관광 목적으로 온 여행객을 해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켜도, 아무튼 현재는 마음 편안하게 오기가 어려워진 것 같다.
실은 필자에 있어서는 이 일련의 반일보도 덕분에 좋은 일이 있었다. “일본이 대국이니까” “일본의 경제가 강해서” 등의 이유로 주변에 있었던 사람이 스스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남은 사람은 인간적으로 변함없이 대해주는 마음 따뜻한 한국 사람들뿐이다. 그래서 이 역풍이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사람을 제대로 보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9월에 어느 고창분이 전화를 주셨다. “에미꼬상, 마음 괜찮아요? 이렇게 매일 매일 반일보도만 계속되면 일본 어머니에게 가고 싶지 않아요?” 필자를 걱정해서 해주는 말이다. “아니요, 이럴 때이니까 여기서 더 깊고 굵은 뿌리를 내려야 하는데요”라고 웃으며 대했지만, 그 따뜻한 마음 씀에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이 분과 필자는 많은 부분에서 의견이 똑같지는 않다. 그래도 그것을 넘어서 만나주고 인간적인 맛을 보여준다. 어르신이라는 말이 바로 이런 분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분을 자연스럽게 존경하게 된다. 그리고 그 분은 나중에 필자에게 한 권의 책을 선물해주었다. 책 제목은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이었다.
여름 후 반일문제는 한국에 사는 일본인에게 대형태풍이었다. 이 가을 한반도에는 심한 태풍 피해를 입었다. 앞으로도 더 심한 태풍이 올지 모른다. 어떻게 해야 할까? 태풍 때문에 망가진 농작물도 있지만, 무사히 넘긴 것도 있다. 앞으로 어떤 태풍이 오든 살아남기 위해는 강한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가 내리든 바람이 불든 넘어지거나 썩지 않고, 강한 바람에게는 대나무처럼 부드럽게 기울어지면 된다. 날씨가 좋아지면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항상 태양을 향한다. 필자는 내 자신을 그렇게 강하게 키우고 싶다. 이 땅에서 내 뿌리를 깊고 굵게 키우면서. 필자가 한국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 사람이 못 하는 일로 이 땅에 공헌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