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일(금) 고창군청소년수련관 1층에서 ‘광산김씨의 고창세거와 문헌·유적’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렸다. 고창군이 주최, (사)고창문화연구회 주관, 고창군 광산김씨 종친회가 후원했다. (사)고창문화연구회는 내년에도 고창군의 성씨 중 한 곳을 선정해 ‘우리조상 뿌리찾기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10시부터 시작된 학술대회는 2부에 걸쳐 진행되었다. 1부는 백원철 고창문화연구회장(공주대명예교수, 문학박사)의 <광산김씨의 고창 입향과 세거>, 이형성 박사(전주대 외래교수, 철학박사)의 <고창 광산김씨의 숭조의식과 주요인물의 행의>, 이병렬 박사(공주대 강사, 이학박사)의 <고창 광산김씨의 집성촌과 유적> 등의 논문이 발표됐다.
김영길 광산김씨 고창군 종친회장은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내 자신의 뿌리를 알고, 우리 조상들의 훌륭한 인품을 알아 숭모정신을 더욱 높이고, 나아가 후손들에게 선조들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며 “자랑스러운 우리 선조들의 훌륭한 업적을 다시한번 생각함으로써, 광김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하고, 광김의 위상을 대내외적으로 드높임으로써 고창종친회가 더욱 발전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제1주제 발표자인 백원철 회장은 광산김씨의 본적지와 계통에 관한 문제를 먼저 언급하였데, 특히 광산김씨 9세손에서 11세손까지의 족보가 누락되었던 원인과 그 연결고리를 조사했다. 계보의 누락 원인으로 고려후기 이자의·이자겸의 난과 무신의 난에 의해 광산김씨는 큰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즉 광산김씨가와 이천이씨간이 혼인관계였던 연유로 광산김씨의 족보가 누락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를 근거로 백원철 회장은 누락된 9대에서 11대까지를 추정하여 발표했다.
고창에는 크게 광산김씨 양간공파와 평장사공파 후손으로 나누고, 양간공파는 다시 전리판서공파, 사은공파, 공조전서공파(南雨), 판군기감사공파(英利)로 나누었다. 그리고 다시 사은공파는 매은공(五行), 교리공(錫元), 판중추공(暘元), 국제공과 서죽헌공, 부정공(命元), 감역공(五音) 후손의 고창의 이거와 세거 과정을 밝혔다. 평장사공파도 문정공·녹사공과 문숙공·삼회공의 고창 입향과 세거 과정을 밝혔다.
이병렬 박사는 고창 광산김씨의 집성촌과 유적을 조사하였다. 고창 광산김씨의 집성촌은 상하면의 오룡과 장암, 대산면의 성남과 중산, 고수면의 장두와 월계, 성송면 축동, 고창읍의 호동과 내동 및 죽림, 아산면 계산·원평, 신림면의 법지, 부안면 상암리 등이다. 고창 광산김씨의 정자로는 고창읍 화산에 있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55호인 취석정과 대산면 성남리의 영취정, 아산면 계산리의 모선정(慕先亭) 등이 남아있다. 고창 광산김씨의 재실은 국음재(菊陰齋), 영모재(永慕齋), 경모재(景慕齋), 성소재(省紹齋), 양송재(良松齋), 법산재(法山齋), 성모재(誠慕齋), 추원재(追遠齋) 2곳, 망운재(望雲齋), 장산영당(은암정, 隱巖亭), 염수재(念修齋), 원모재(遠慕齋) 3곳, 창덕재(彰德齋), 고산재(古山齋), 구화재(九花齋) 등 18개가 남아있다. 광산김씨의 비는 고창지역에 널리 분포하여 있으나, 소개한 비는 국난 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의사들과 왕명에 의해 효자와 열부의 칭호를 받은 분들 및 입향조의 비이다. 조사된 비는 광산김씨삼강문, 김오행묘비, 김기서묘비, 전참판김영곤선덕불망비, 임진의사국재김공유허비, 김기두정려, 서죽헌김선생유적비, 만취당김공유허비, 김광두정려, 의사광산김공휘영완지묘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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