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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방동(京坊洞)의 유래
이기화(고창지역학연구소장) 기자 / 입력 : 2013년 01월 23일(수)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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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방동은 고창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 이름이다. 고려중기에 한림학사(翰林學士) 오학인(吳學麟)이 식읍으로 하사받은 고창고을로 내려와(1060년) 지금의 신월리(新月里) 동쪽에 마을을 설기하여 여생을 마치게 됨에 후손들이 고창오씨 시조로 옹립하고 서울(松都)에서 남하한 것을 기념하여 경방(京坊)이라 하였다.
행정상으로 산내면(山內面)의 동북간방으로 신월(新月) 신흥(新興) 봉곡(奉谷) 점촌(店村)의 네 뜸을 거느리고 있었으나 1914년 3월 일제강점기의 통폐합령으로 덕정(德井) 제내(堤內) 신곡(新谷)의 각 1부를 병합하여 18개 법정리의 하나가 되었다.
식읍(食邑)이란 역사적으로 나라에서 공신(功臣)에게 내려 그 곳의 조세(租稅)를 그 공신가에게 받아 쓰게 한 고을이다. 사패지(賜牌地)의 명목도 임금이 국가유공자에게 상으로 내려준 식읍지의 산림이나 토지의 공세(貢稅)를 거두게 한 땅인 것이다.
고려시대 고창지역의 토성(土姓)인 무송유(庾)씨, 무송윤(尹)씨, 장사유(兪)씨, 흥덕장(張)씨, 흥덕진(陳)씨, 흥덕김(金)씨, 고창오(吳)씨, 고창윤(尹)씨, 고창박(朴)씨 등 51개 성씨가 모두 그 당시 공신후손들이요, 특수지역 유공관리의 후손들이다.
의향(義鄕) 고창의 민족의식이 싹 터 올라 선비들 은거지의 본향이 되게 함으로써 유배문화(流配文化)의 산실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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