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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의 두 노동자 후보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정 기자 / 입력 : 2013년 01월 23일(수)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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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늦은 얘기인 것 같지만, 지난 해 대선 결과는 두고두고 충격적이었다. 지금도 아침저녁으로 뉴스 첫 장면으로 나오는 당선인의 이름과 행보가 낯설게 느껴지다 못해 내가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으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분석을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떨 것 같은데? 나는(우리는) 앞으로 뭘 할 수 있는 걸까? 생각을 해 보지만 뚜렷하게 다가오는 것은 없다. 그런데 내 머리 속에는 또 한 가지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때늦은 얘기인 것 같지만, 지난 해 대선 결과는 두고두고 충격적이었다. 지금도 아침저녁으로 뉴스 첫 장면으로 나오는 당선인의 이름과 행보가 낯설게 느껴지다 못해 내가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으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분석을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떨 것 같은데? 나는(우리는) 앞으로 뭘 할 수 있는 걸까? 생각을 해 보지만 뚜렷하게 다가오는 것은 없다. 그런데 내 머리 속에는 또 한 가지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이른바 ‘노동자 후보’가 두 명이나 출마한 것이며, 그들이 끝까지 완주한 점이다. 집안 식구들이나 주위 사람들은 그 두 후보를 두고 많은 의문을 제기했다. 도대체 왜 출마했는가?
김순자 후보는 울산과학대 노조지부장이며,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다. 진보신당 소속이었지만, 진보신당의 대선 대응 포기 방침에 불복,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주로 진보신당의 한 그룹인 사회당 계열의 사람들이 지지하였다. 김소연 후보는 기륭전자 해고자 복직 투쟁을 이끌었고, 변혁적 노동자 정당 건설을 목표로 현장의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추대한 후보이다. 역시 진보신당과 다수의 민주노총 간부들이 지지하였다. 김순자 후보는 4만여 표를 얻어 0.15%를 기록했고, 김소연 후보는 1만 6천여 표를 얻어 0.05%를 기록했다. 두 후보의 득표를 합해도 지난 19대 총선에서 진보신당이 얻은 정당 득표 24만여 표의 1.13%의 득표율에 한참 미치지 못한 그야말로 초라한 결과였다.
물론 그들을 지지했던 많은 표가 문재인 후보로 흡수된 탓도 있겠지만, 충분히 예견될 수 있는 낮은 득표율임에도 왜 출마했던 것일까? 그것도 두 명씩이나 말이다.
선거 기간 동안 살펴보니, 김순자 후보는 선거운동 내내 비정규직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노력한 것 같다. 뒤집어 얘기하면, 다른 후보들이 장기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입장을 받아 안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비정규직의 노동자의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해결할 힘을 갖추어야 해결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김소연 후보는 삼성 본사에서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이것은 상징적인데 김소연 후보는 노동조합의 조직성 위에 바탕을 두고 대선 이후의 노동자 정당의 건설을 명백히 하였다. 김순자 후보보다 대선 이후의 과정을 목적의식적으로 준비하는 연장선상에서 대선에 임했던 것 같다. 조직된 노동자를 중심으로 노동자 정당을 건설하겠다는 명분은 있었지만 득표수는 오히려 김순자 후보보다 낮게 나왔다.
분명히 두 후보는 우리 사회의 다수를 이루지만 힘이 약한 피지배층의 규합을 염두에 두고 출마하였고, 그 진정성 또한 충분한 것 같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가 진정성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처럼(정권 심판!), 이들도 그 ‘진정성’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심지어 우리가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은데도, 두 후보의 연대를 이루지 못한 걸 보면 여전히 자신들의 정파위주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국회 10석을 차지했을 때만 해도 소위 진보 좌파 진영이라고 하는 그룹의 정치력이 금방이라도 자리 잡을 것 같았지만, 결국 다양한 현실의 힘 앞에 대안 한 번 제대로 제출하지 못하고 거의 자멸 직전에 와 있는 지금, 이들 두 후보의 모습으로 진보 좌파 진영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분명히 ‘노동자 대통령’이란 말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고 추구할 가치가 충분한 데도 왜 멀어져만 가는 걸까? 두 후보의 말대로 노동자들 스스로의 힘이 강해지면 우리네 삶이 좀 더 나아질 것도 같은데, 왜 가면 갈수록 지리멸렬해지는 걸까? 지난 대선에서 두 후보는 우리로 하여금 절망의 현실을 확인하게 한 걸까? 아니면 그럼에도 결코 잃지 말아야 할 꿈을 꾸게 한 걸까?
그것은 이른바 ‘노동자 후보’가 두 명이나 출마한 것이며, 그들이 끝까지 완주한 점이다. 집안 식구들이나 주위 사람들은 그 두 후보를 두고 많은 의문을 제기했다. 도대체 왜 출마했는가?
김순자 후보는 울산과학대 노조지부장이며,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다. 진보신당 소속이었지만, 진보신당의 대선 대응 포기 방침에 불복,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주로 진보신당의 한 그룹인 사회당 계열의 사람들이 지지하였다. 김소연 후보는 기륭전자 해고자 복직 투쟁을 이끌었고, 변혁적 노동자 정당 건설을 목표로 현장의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추대한 후보이다. 역시 진보신당과 다수의 민주노총 간부들이 지지하였다. 김순자 후보는 4만여 표를 얻어 0.15%를 기록했고, 김소연 후보는 1만 6천여 표를 얻어 0.05%를 기록했다. 두 후보의 득표를 합해도 지난 19대 총선에서 진보신당이 얻은 정당 득표 24만여 표의 1.13%의 득표율에 한참 미치지 못한 그야말로 초라한 결과였다.
물론 그들을 지지했던 많은 표가 문재인 후보로 흡수된 탓도 있겠지만, 충분히 예견될 수 있는 낮은 득표율임에도 왜 출마했던 것일까? 그것도 두 명씩이나 말이다.
선거 기간 동안 살펴보니, 김순자 후보는 선거운동 내내 비정규직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노력한 것 같다. 뒤집어 얘기하면, 다른 후보들이 장기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입장을 받아 안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비정규직의 노동자의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해결할 힘을 갖추어야 해결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김소연 후보는 삼성 본사에서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이것은 상징적인데 김소연 후보는 노동조합의 조직성 위에 바탕을 두고 대선 이후의 노동자 정당의 건설을 명백히 하였다. 김순자 후보보다 대선 이후의 과정을 목적의식적으로 준비하는 연장선상에서 대선에 임했던 것 같다. 조직된 노동자를 중심으로 노동자 정당을 건설하겠다는 명분은 있었지만 득표수는 오히려 김순자 후보보다 낮게 나왔다.
분명히 두 후보는 우리 사회의 다수를 이루지만 힘이 약한 피지배층의 규합을 염두에 두고 출마하였고, 그 진정성 또한 충분한 것 같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가 진정성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처럼(정권 심판!), 이들도 그 ‘진정성’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심지어 우리가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은데도, 두 후보의 연대를 이루지 못한 걸 보면 여전히 자신들의 정파위주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국회 10석을 차지했을 때만 해도 소위 진보 좌파 진영이라고 하는 그룹의 정치력이 금방이라도 자리 잡을 것 같았지만, 결국 다양한 현실의 힘 앞에 대안 한 번 제대로 제출하지 못하고 거의 자멸 직전에 와 있는 지금, 이들 두 후보의 모습으로 진보 좌파 진영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분명히 ‘노동자 대통령’이란 말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고 추구할 가치가 충분한 데도 왜 멀어져만 가는 걸까? 두 후보의 말대로 노동자들 스스로의 힘이 강해지면 우리네 삶이 좀 더 나아질 것도 같은데, 왜 가면 갈수록 지리멸렬해지는 걸까? 지난 대선에서 두 후보는 우리로 하여금 절망의 현실을 확인하게 한 걸까? 아니면 그럼에도 결코 잃지 말아야 할 꿈을 꾸게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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