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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 철탑의 설날 떡국
정 기자 / 입력 : 2013년 02월 18일(월)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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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즐겁고 넉넉했던 설 연휴가 끝났다.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이지만 만날 때마다 내가 사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고, 앞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니 떠나는 발걸음이 쉽지 않고, 보내는 이들의 눈빛 또한 촉촉이 젖기 마련 아닌가? 하지만 우리 곁에는 이런 저런 이유로 가족들과 함께 명절을 보내지 못하는 이들이 많으니, 그들의 아픈 사연들을 듣자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하늘에서 설날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공 농성 중인 노동자들이다. 이들이 머무는 곳은 15만 볼트 송전탑, 성당 종탑 등이다. 적게는 수십일 째부터 길게는 100일이 넘게 농성들을 벌이고 있다.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 주차장 송전 철탑에는 현대차 사내하청 해고자 최병승(37)씨와 비정규직지회 천의봉 사무국장(32)이 ‘회사의 불법파견 인정’과 ‘모든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화’ 등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고,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맞은편 혜화동성당 종탑에는 해고자 전원 복직과 단체협약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재능교육지부 소속 해고노동자인 여민희(41)씨와 오수영(40)씨가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 앞 송전탑 15만 볼트가 넘는 전류가 흐르고 있는 송전탑에는 국정조사 실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한상균(52) 전 지부장, 문기주(53) 정비지회장, 복기성(38) 비정규지회 수석부지회장이 80일이 넘게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불법으로 해고된 노동자 신세이기도 하지만, 이미 사법기관과 행정기관에서 회사의 불법 행위나 불법 파견·불법 고용을 인정하고, 전원 복직과 사측의 충실한 대화가 결정되었음에도 회사 측에서는 아무런 조치가 없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힘을 가진 자의 폭력이요, 상식을 뒤엎는 횡포라 할 수 있다.
혹자는 ‘힘이 약한 이들의 고공 투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어차피 깨지는 싸움이 아닌가? 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길 텐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는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일부 가진 자들의 얄팍한 노림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우리가 흩어져 있기를 바란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하나가 되면 자신들의 의도가 통하지 않아 입장을 바꿀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국민 대다수는 언제든지 철탑이라는 사지에 몰릴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도 저 고압 전류가 흐르고,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고공 철탑에서 가족의 눈물과 사랑을 뒤로 한 채 홀로 싸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홀로 되었을 때 나는, 이 사회에 무엇을 바랄 것인가?
우리보다 힘이 월등한 자들의 이해와 은혜(?)를 바라며, 그들의 특정한 조치만을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나와 똑같은 입장의 이들에게 연대를 구하여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를 당당히 쟁취할 것인가?
우리의 힘은 개인의 힘으로 나타나지 않을뿐더러, 그러한 힘은 우리에겐 없다. 오로지 하나가 되어 한 마음이 되어 세찬 강물처럼, 뜨거운 불꽃처럼 나타날 뿐이다. 지난날의 촛불이 바로 그 증거이다.
오늘도 고공 철탑의 매서운 칼바람과 함께 지낼 해고노동자들에게 몸은 멀리 떠나 있지만 승리의 확신을 기원하는 연대의 다짐을 보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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