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지난 9월11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켰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이수 재판관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한 지 116일 만이다.
헌정 초유의 일이다. 국회 스스로 이미 청문보고서를 채택해 적격 판단을 내렸고, 현재 헌재소장 대행을 하고 있으니 ‘대행’을 떼는 일일 뿐인데도, ‘반대를 위한 반대’의 정치적 희생양이 되었다.
2표가 모잘랐다. 민주당·정의당 찬성당론, 자유한국당·바른정당 반대당론, 국민의당은 자율투표를 결정했다. 김이수를 부결시킨 뒤, 자유한국당은 환호했고, 국민의당 대표 안철수는 “국민의당이 지금 20대 국회에서 결정권을 갖고 있는 정당”이라는 말을 남겼다.
민주당 국회의원 표창원은 자유한국당의 행태에 대해 “악마를 보았다”고 말했는데, 안철수나 국민의당의 행태는 유치하고 부끄럽기 그지없다. 멀쩡한 후보를 낙마시켰으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자신의 힘을 보여줬다고 ‘과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호남 최초의 헌법재판소 수장, 고창 출신의 헌법재판소장이란 명예는 침탈됐다. 전북도민 특히 고창군민들은 격분과 울분을 토해내며 국민의당에 대한 반감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특히 국민의당 중진이자 고창·정읍지역구인 유성엽 국회의원에게 화살이 쏠리고 있다.
유성엽 의원은 무얼 했냐는 것이다. 고창의 인물인 김이수 부결을 방치한 것인지, 아니면 말만 중진이지 국민의당에서조차 정치력이 없는 것인지, 자기 지역구 인물조차 지키지 못하는 국회의원이 앞으로 지역을 위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움직일 지 믿을 수 없다는 여론이다. 유 의원은 고창에서 기자회견을 열든지 해서, 어떻게 이 사태가 일어난 것인지 자신의 입장을 솔직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김이수 후보자에 대해서는 그간 광주항쟁 운전기사 사형 판결, 군대 내 동성애 옹호의견, 통합진보당 해산 반대의견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광주항쟁 당시 시민군이 탄 버스를 몰고 경찰관 4명을 숨지게 한 운전기사 배용주의 군사재판에 참여해 사형을 선고한 바 있다. 김 후보자는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당시 실정법을 거스르기 어려웠다, 피하고 싶었다”고 토로했으며, 지난 6월8일 인사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한 배용주씨에게 사죄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김 후보자가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결정 당시 낸 소수의견도 특정이념과는 무관하며, 정당의 자유와 정치결사의 자유를 옹호하는 내용이었으며, 동성애 옹호는 사실관계에서부터 정확하지가 않다. 군대 내 동성애를 옹호했던 게 아니라, 옛 군형법의 일부 조항이 너무나 불명확하고 포괄적이란 점을 지적했을 뿐이다.
김이수 부결사태는 ‘촛불’로 촉발된 우리 사회 거대한 변화·개혁 흐름을 반대하는 세력이 만만치 않고, 그들이 정치적으로 재결집하기 시작했음을 상징한다. 정치권력은 교체됐지만 입법권력인 국회에선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여전히 강고하게 버티고 있다는 현실을 확인한 셈이다. 촛불이 부여한 사회 개혁이 그렇게 녹록치 않은 과제라는 사실도 분명해졌다.
부결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김 후보자의 ‘이념’을 집요하게 트집 잡으며 ‘색깔론 정당’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자유한국당에 있다. 새로운 보수를 주창하는 바른정당이 자유한국당과 별다를 바 없는 태도를 취한 것도 유감스러운 일이다.
‘김대중 정신’을 계승한다는 국민의당, ‘캐스팅 보트’를 과시하는 국민의당이 이번 표결에서 보여준 반인권적이고 무책임한 행태는 더욱 엄중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안철수가 마치 대단한 쾌거를 이룬 양 말한 것은 그걸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민의 뜻과 상식적 판단에 따르기보다 ‘캐스팅 보트’ 권한을 드러내기 위해 ‘김이수 인준 표결’을 부결시키는 게 과연 새 정치를 내세운 정당이 할 행동이라 할 수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