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군청이 추진중인 쓰레기 ‘소각장’ 인근에 있는 아산면 대동·학전·계산·용계리(이하 인근마을) 주민들은 명백한 당사자이다. 넓게 보면 ‘인근마을’을 포함한 아산면민도 당사자이다. 더 넓게 보면 쓰레기를 배출하는 고창군민 모두 당사자이기도 하다. 고창군청은 군민들이 배출하는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현 아산면 계산리에 있는 쓰레기매립장에 쓰레기소각장(+매립장 순환이용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인근마을’ 주민 등은 ‘아산면 소각장 반대 대책위원회’(이하 반대대책위)를 꾸려 이에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창군청이 소각장을 건설하려면, (법적 책임을 포함해) 누구와 협의하고 합의안을 도출해야 하는가? 고창군청은 아산면민을 당사자로 규정했다. 물론 ‘인근마을’을 제외한 아산면민들은 쓰레기를 배출하는 고창군민에 가깝지만, ‘인근마을’ 주민들도 이 규정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인근마을을 포함한 아산면민’은 명백한 당사자이다. 그 중에서도 ‘인근마을’이 핵심 당사자인 것 또한 분명하다. 그런데 고창군청에 따르면, ‘아산면 혐오시설 반대 대책위원회’(위원장 강국신, 이하 혐오대책위)란 곳이 (소각장과 관련해) 아산면민을 대리하며, 따라서 ‘혐오대책위’와 협의한 뒤 합의안을 도출했으며, 현재까지 유효하다고 한다.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쓰레기 ‘매립장’과 관련한 아산면민들의 대규모 반대집회 후, 고창군청(군수 이호종)과 아산면민들은 “▲‘협의’되지 않은 사업은 절대 안 한다 ▲소각장 설치는 절대 안 한다”는 강력한 협약을 맺었다. 이 협약을 대리한 것은 ‘농어촌폐기물 종합처리시설 반대 아산면 대책위원회’(위원장 강국신, 이하 농어촌대책위)이다. 이는 아산면민들의 ‘매립장’과 관련한 싸움의 결과물이며, ‘농어촌대책위’는 싸움의 과정을 통해 그 정당성(대리성)을 획득했다. 이후 2009년 고창군청(군수 이강수)은 ‘농어촌대책위’와 아산면민 지원금을 50억에서 75억원으로 늘리는 협약을 맺었다.
그런데 2013년 ‘아산면 혐오시설 반대 대책위원회’라는 생뚱맞은 단체가 나타나 ‘소각장’을 ‘찬성’하는 협약을 맺는다. ‘매립장’은 ‘농어촌대책위’가 대리하고 있었는데, 이 단체는 사라지고, ‘혐오대책위’가 ‘매립장’과 ‘소각장’을 모두 대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우선은 ‘혐오대책위’가 ‘매립장’을 대리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위원장이 강국신씨라는 것 외에는 (‘농어촌대책위’와) 어떻게 연속성이 증명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순리대로라면 ‘매립장’은 ‘농어촌대책위’가 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도 사업인) ‘소각장’과 관련해선 ‘소각장’ 인근마을을 중심으로 대리하는 단체가 만들어져야 한다. 고창군청은 아산면민을 당사자로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산면민이 회원이거나 그에 상당하는 단체, 실무적으로는 다수의 아산면민의 서명이 있어야 아산면민을 대리할 수 있다. 그런데 고창군청과 ‘혐오대책위’는 그러한 사실을 어영부영 뭉개고, 당사자도 아니면서, 대리자라는 근거도 없이, 그들끼리만 협의하고 합의하고 협약을 맺은 것이다.
고창군청은 2012년 12월10일자 ‘출장결과 보고서’에 “아산면 대책위 및 주민지원협의체에 일임하기로 최종 합의”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 한 문구 외에 다른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혐오대책위’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 ‘주민공청회’에 ‘누가’ 와서, ‘누가’ 위임했다는 기록이 없으니, 위임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군청에서는 다수의 이장들이 참여했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이장의 서명을 받는 것, 이장들이 주민들의 서명을 받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고창군청이 직무유기를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떠나, 인근주민들은 현 상태의 ‘소각장’ 추진을 반대하고, ‘혐오대책위’는 찬성한다. 의견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렇다면 ‘인근주민’들이 2013년에는 찬성했다가 지금은 반대하는 사기를 치고 있을까? 아니면 고창군청이나 ‘혐오대책위’가 당사자들의 동의도 없이, 당사자들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를 해놓고는, 당사자들의 의사를 대리했다고 사기치는 것일까? 명백한 것은, (소각장 설치와 관련해) ‘혐오대책위’가 ‘인근주민들을 포함한 아산면민의 동의’를 받지 않았고, 고창군청 또한 ‘아산면민의 동의’를 받거나, ‘혐오대책위’에게 ‘아산면민의 동의’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창군에게 당사자는 누구인가? 협의와 합의의 대상은 누구인가? ‘협치행정’과 ‘울력행정’을 강조하고, ‘지방자치의 교과서’를 쓰겠다는 고창군이 ‘당사자들과의 협치’가 아니라 ‘당사자들이 소송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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