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평화당 전북도당(위원장 임정엽)은 지난 5월11일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첫번째 기념식을 축하·환영하는 논평을 냈다. 이 논평에서 민주평화당 전북도당은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전북 정읍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대되어간 최초의 농민운동으로서, 우리 역사에 기록된 숭고한 저항운동의 상징”이라고 밝혔다.
동학농민혁명이 정읍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은 무장기포라고 알고 있다. 즉 동학농민혁명은 고창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간 국가기념일 선정과정에서, “무장기포를 혁명의 시작으로 보고, 혁명의 시작인 무장기포가 기념일로 선정돼야 한다”는 주장은 학계와 동학관련단체들의 다수 의견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동학농민혁명’을 “1894년 3월에 봉건체제를 개혁하기 위하여 1차로 봉기하고, 같은 해 9월에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2차로 봉기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농민 중심의 혁명”이라 정의하고 있다. 1894년 3월은 무장기포를 일컫는다. 즉, 법률에 동학농민혁명은 고창에서 시작됐다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 민주평화당 전북도당은 공당으로서 법률에 근거한 논평을 내야 함에도, 일부의 주장에 근거한 논평을 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따라서 본지는 민주평화당 당원인 유기상 군수에게 묻는다. 유 군수는 “동학농민혁명이 정읍에서 시작됐다”는 주장에 동의하는가? 만약 동의하지 않는다면, 민주평화당 전북도당에 항의할 의향은 있는가?
같은 민주평화당인 유성엽 국회의원(정읍·고창)도 “동학농민혁명이 정읍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성엽 의원은 5월9일 전북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고부봉기(정읍)가 지역봉기, ‘무장기포’(고창)를 전국적인 최초 거사로 역사를 왜곡하는 경우가 있다. 역사적 순서대로 보면 ‘사발통문-고부봉기-무장기포-백산기포-황토현전승’ 순으로 동학농민혁명이 전개됐다. 인과관계로 이어져서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고 주장했다.
유 의원은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까지 바꿀 기세다. ‘국가기념일이 황토현전승일로 선정됐다’는 문체부의 발표(작년 11월9일)가 있은 직후(작년 11월14일), 유 의원은 “1894년 1월에 전라도 고부군에서 발생한 봉기가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며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1894년 3월”(무장기포)을 “1894년 1월”(고부봉기)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유 의원은 전북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도종환 장관(문체부)에게 그간의 과정을 다 말했다. ‘내 지역구 정읍과 고창이 무한경쟁을 해서 기념일 지정이 보류가 돼서 염치없이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는 정읍과 고창을 벗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읍이든 고창이든 두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써 정치적 부담은 내가 떠 앉겠다. 장관도 지도자로서 과감히 짐을 떠 않자’고 모든 것을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유 의원은 “황토현전승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특별법 개정안”을 낸 적도 있으며, 작년 12월20일 고창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유족회와의 간담회에서, “(국가기념일이 황토현전승일로 선정된 것과 관련) 직접적인 영향력은 없었지만, 간접적인 영향력은 있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을 고부봉기’로 보는 입장에서, 무장기포의 중요성은 폄하될 수밖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간 (국가기념일로서) 다수 의견이었던 무장기포가 ‘문체부 선정위원회’ 5인에 의해 ‘황토현전승일’로 뒤집어졌다. 안병욱 선정위원장은 ‘무장봉기’를 ‘무장현 재봉기’라 부르는 사람이었다.
고창군민의 입장에서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을 도둑맞은 셈이다. 눈 뜨고 코 베인 셈이다. 그런데 이젠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은 무장기포…동학농민혁명은 고창에서 시작됐다’는 사실도 도둑맞게 생겼다. 유기상 군수는 민주평화당 당원이라고 해서 이를 두고만 볼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