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듬뿍 담긴 학교 운동장에서 청기백기를 든 아이들이 올망졸망 모여 앉아 목청이 찢어질 듯한 응원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만국기가 휘날리고 모래바람에 살포시 감은 실눈으로 반대표로 출전한 친구와 일심동체 된 마음으로 함께 뛰고 있었다. 필자 역시 백색 머리띠를 이마에 감고 운동회의 꽃이라 불리는 계주선수로 출발선에 서 있었다. 1등을 한다면 반친구들에게 공책을 나눠 줄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헐떡이고 신발이 닳을까봐 가지런히 모아두고 맨발로 몸을 움츠려 뛸 준비를 마쳤다. 드디어 ‘쾅’ 하는 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지고 바톤을 이어받을 친구를 향해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 볼 겨를 없이 숨이 턱까지 차도록 뛰고 또 뛰어, 드디어 4월 1일 국가직 소방의 바톤을 후배 소방공무원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됐다. 국가직 소방공무원이 되었다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본연의 업무와 소방정신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방직 공무원에 속했던 소방은 지자체 여건에 따라 인력·장비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던 구조였다. 또한 재난의 규모와 복잡성이 증가되어, 지방자치단체의 수준으로 그 재난 피해를 최소화 하기 어려운 점이 발생되며, 결국 소방서비스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직결되는 바, 국가 차원에서 균일한 인력 운영과 장비보급으로, 신속하고 효율적인 재난 대응력 강화에 속도를 높여, 국민이 아픔을 호소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특히 국가직으로 전환되면서 지역 경계를 허물고 유기적으로 골든타임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되었다. 고창소방서의 경우 전라남도 영광군과 인접해 있어, 그간 지자체 각기 다른 지휘체계를 갖추고, 응원협정 체결 등을 별도로 구축해 재난에 대응하다 보니 효과적인 대응이 어려웠다. 하지만 국가직으로 전환되면서 이런 부분이 해소되어 1초라도 신속하게 출동 가능한 시스템으로, 인력·장비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초기 재난 대응으로 피해를 저감할 수 있게 됐다. 강원도 산불화재, 대구 코로나19 전국소방력 집중으로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던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재난으로부터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맨발로 운동장을 뛰어 다음 주자에게 바톤을 전달했다. 그렇다면 다음 주자는 어떻게 달려야 결승점에 도달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동안 소방조직은 시대 흐름에 따라 형태가 계속 변모하였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안전권을 보장하는 특성은 변함없었지만 튼튼한 뿌리를 내릴 수는 없었다. 뿌리가 튼튼하지 못한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기 마련이다. 국민의 안전이라는 결승점을 향해 1등으로 달리다 보면 맞바람을 피할 수 없겠지만 반 친구들에게 공책을 나눠주겠다는 어린 소년의 순수한 마음이 공중으로 흩어져서는 안 되는 것처럼, 소방조직도 그 구성원의 소속감이 결여된다면 원동력을 잃게 된다.
달리기에서 넘어지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바톤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바톤을 손에 움켜줬을 때 그 소중함을 깨닫고 전력질주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가 고도화됨에 따라 재난도 복잡해지고 대응하기에 어렵다. 꾸준히 연구하고 새로운 장비를 습득하여 재난과 맞설 싸울 진영을 갖춰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다. 국가직이라는 명찰을 가슴에 부착하였다고 안주해서는 안 된다. 그 이름이 빛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경계하고 자각하고 뛰어야 한다. 항상 소방은 재난에 맞서 등을 보인적은 없다. 등이 보이는 순간 소방의 명찰은 퇴색하고 국민들에 신뢰를 잃게 된다.
모래바람에 실눈으로라도 응원하던 친구들의 모습은 결국 국민들이 지켜보는 눈이다. 신뢰와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성숙한 자세로 국가직 소방관의 기상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소방조직이 강한 뿌리를 내리고 흔들리지 않는 조직이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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