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경찰서가 집주인 허락 없이 이웃집에 들어간 80대 할머니를 주거침입 혐의로 체포했다. 이 과정에서 할머니 등 뒤로 수갑을 채워 ‘공권력 남용’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에 신고한 집주인이 현직 경찰관이어서 과잉 대응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해당 경찰관들은 할머니가 난동을 부려 이른바 ‘뒷수갑’ 사용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한다. 경찰은 ‘뒷수갑’ 사용에 대해 감찰에 나섰다.
정읍경찰서에 따르면, 7월19일 낮 12시28분께 “외출했던 아내가 집에 오니 이웃집 할머니가 거실에 드러누운 채 나가지 않는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12시34분경 현장에 출동한 고부파출소 소속 A경위 등 경찰관 2명은 거실에 있던 B씨(82·여)에게 “나가 달라”고 요구했다. 경찰에 신고한 집 주인은 고부파출소 인근 치안센터에서 근무하는 C경위였다.
A경위 등이 설득했지만, B씨는 “못 나간다” “날 잡아 가라” “맘대로 하라” 등 고성을 지르며 집에서 나가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실랑이가 길어지자, A경위 등은 “계속 버티면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밖에 없다”고 고지했다. 그래도 퇴거 명령에 응하지 않자, 오후 1시쯤 할머니 두 팔을 등 뒤로 젖혀 ‘뒷수갑’을 채운 뒤 고부파출소로 이송했다. 할머니는 ‘뒷수갑’을 약 20분간 차고 있었으며, 자녀가 온 뒤 석방됐다고 경찰은 전했다. 정읍경찰서는 주거침입 혐의로 할머니를 불구속 입건했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경찰관 2명이 80대 할머니에게 뒷수갑을 채운 건 인권 침해”라는 지적이 나왔다. 경찰의 ‘수갑 등 장구류 사용 지침’에 따르면, 피의자가 도주·자해·위해를 가할 우려가 적으면, 양손을 내민 상태에서 결박하는 ‘앞수갑’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뒷수갑’을 채우거나 목덜미를 누르는 방식의 제압은 헌법상 신체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전북지부 소속 변호사는 “과거에는 흉악범 등을 체포할 때 도주와 위해를 막기 위해 뒷수갑을 채웠지만, ‘헌법이 보장한 신체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속적 권고와 뒷수갑으로 인한 손목장애 사례가 속출하면서, 최근엔 경찰 지침상으로도 뒷수갑을 가급적 채우지 않는 것으로 안다”며, “공무집행방해도 아닌 주거침입 혐의로 여든이 넘은 노인에게 뒷수갑을 채운 건 공권력 남용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A경위 등은 “적법한 절차를 따랐다”는 입장이라고 알려졌다. “할머니(B씨)가 난동을 부려, 다른 변수가 생길 여지가 있어, 안전하게 그 상황을 중단시키고 격리 조치하기 위해 뒷수갑을 채웠다”는 것이다.
경찰조사 결과, A경위 등이 현장에 도착한 뒤에도 할머니와 C경위는 언쟁을 멈추지 않았다. B씨는 C경위를 향해 “저놈이 나쁜 놈이다, 저놈을 처벌해야 한다”고 소리를 질렀고, C경위는 A경위 등에게 “남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한 사람을 왜 안 데려가냐”고 따졌다고 한다.
A경위 등은 감찰 조사에서 “거실에 드러누운 할머니를 일으켜 세우려고 어깨를 잡으면, 소리를 지르며 손을 뿌리치고 다시 누우려고 했다. 할머니가 잘못해서 넘어지면 더 큰 문제가 된다고 보고 부득이 수갑을 사용했다”면서, “할머니의 팔을 강제로 꺾지 않았다. 본인이 먼저 팔을 내밀면서 ‘나를 수갑 채워 데려가라’고 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80대 노인에게 경찰이 뒷수갑을 채우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후 사정도 살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경찰에 따르면 C경위와 할머니는 수십 년간 한동네에 살며 서로 ‘누나’·‘동생’이라 부르며 가깝게 지내던 사이로 알려졌다. 하지만 올해 초 ‘토지 등기 이전’ 문제로 법적 다툼을 하며, 두 사람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한다. 과거 할머니 남편으로부터 땅(109제곱미터)을 산 C경위 부친이 해당 토지를 등기부에 올리지 않은 채 숨지자, 땅을 물려받은 C경위가 지난 1월 본인 앞으로 소유권을 옮기면서 갈등이 불거졌다는 것이다.
뒤늦게 토지 매매 사실을 안 할머니가 “땅을 샀으면 돈을 달라”고 항의했고, C경위는 “아버지 때 이미 땅값 계산은 끝났다”고 맞섰다고 한다. 이에 할머니는 “내 남편을 속이고 땅을 가로챘다”며 경찰에 사기 혐의로 C경위를 고소했다. 전주지검 정읍지청은 지난달 C경위에게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할머니는 “남편이 C경위 부친에게 받은 건 땅값이 아니라 임대료”라고 주장하며, 최근 C경위를 상대로 토지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할머니는 이번 사건 전에도 C경위 집을 세 차례 찾아가 항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두 차례는 C경위가 동네 주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B씨를 집 밖으로 내보냈고, 한 번은 할머니가 집 대문을 발로 차며 돌아갔다고 한다. C경위 부인은 할머니가 땅 문제로 남편과 계속 마찰을 빚자 신경쇠약으로 병원에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C경위 부부가 경찰을 부른 건, 그동안 할머니의 도 넘는 행동에도 현직 공무원 신분 때문에 참았던 분노가 폭발했다”는 게 주위 반응이다.
할머니가 ‘뒷수갑 사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경찰은 감찰에 착수했다. 정읍경찰서 청문감사관실 관계자는 “현장에 나간 A경위 등 2명을 대상으로 뒷수갑 사용이 적절했는지 등을 세밀히 살펴보고 있다”며, “문제가 확인된다면 조처할 것”이라고 전했다. 신고자(C경위)는 주거침입의 피해자로 감찰 대상은 아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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