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주간해피데이 | |
|
|
행상을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가요 '정읍사(井邑詞·악학궤범 5권)'의 주인공인 '망부석'의 위치가 정확히 표시돼 있는 고지도가 발견돼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읍시의회 이도형 의원은 정읍지역 향토사학자 곽형주씨와 함께 400년 전 제작된 ‘동여비고’와 ‘지나조선고지도’ 2종의 조선시대 고지도에서, 정읍사 여인의 모델인 망부석의 위치를 고부면 두승산 부근인 것으로 모두 확인했다고 3월7일 밝혔다.
그간 정읍에서는 망부석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역사적 고증이 없어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했다. ‘고려사 악지(高麗史 樂志)’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에 망부석의 위치를 ‘현북십리(縣北十里)’라고 표기하고 있어 당시의 정읍현을 중심으로 북서에서 북동 방향으로 대략 4킬로미터 지점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이에 정읍지역 향토사학계에서는 정읍사 망부석의 위치에 대해, 구전 전설을 바탕으로 망제동, 북면 승부리, 괴바라기 등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이도형 의원은 두 가지 고지도를 향토사학자인 곽형주 씨와 함께 공개했다. 망부석의 위치를 정확이 표시하고 있는 고지도는 보물 제1596호 ‘동여비고(東輿備攷)’와 ‘지나조선고지도(支那朝鮮古地圖)’로 두 지도의 제작 연도는 각각 1682년과 1623년이다.
동여비고는 함경도에서 제주도까지의 전국 도별도 및 군현도 등 32종의 지도를 수록한 지도책으로 지난 2008년 보물로 지정됐다. 동여비고보다 60년 앞서 제작된 지나조선고지도(국립중앙도서관 소장)는 1책 248장으로 구성됐으며, 중국과 조선의 역사적 사실을 지도로 숙종 8년에 제작한 역사지도책이다.
조선 중기시대의 두 지도에는 망부석의 위치가 모두 고부 두승산 부근인 것으로 정확하게 표기돼 있다. 이 의원은 향토사학자인 곽형주 씨와 고지도 검색을 통해, 망부석의 위치가 지역별 군현지도에는 좀더 자세한 내용이 있을 것으로 보고, 지난 2월부터 1개월 동안 조사했다. 이도형 의원은 “이번 망부석이 구체적으로 표시된 고지도 발견에 동기부여를 해준 곽형주 향토사학자에게 감사드리며, 앞으로 향토사학계와 지역사회에서 정읍사 망부석 위치 연구에 더 많은 관심과 연구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김재영 정읍역사문화연구소 이사장은 “두승산에 망부석이 있을 수 없다. 삼국사기에 정촌은 대산군(지금 정읍·태인·칠보)과 고부군으로 행정구역이 명백하게 나눠져 있으며, 지금이야 정읍의 역사지만 당시 정읍역사가 고부역사가 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즉 망부석이 있었다는 두승산은 분명 정읍땅이 아닌 고부지역이며, 지명표시 하나를 가지고 망부석이 그곳에 있었다고 주장하기엔 그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동여비고는 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된 200년 뒤에 정경흠이라는 사람이 동국여지승람을 참고·비교해서 만든 사찬(개인제작) 지도로, 망부석을 두승산 아래쪽에 표기한 것은 제작자인 정경흠이 망제봉에 있는 석불을 잘못 인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동여비고에 유독 전국 각지의 사찰명이 많이 보이는 것도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하는 것이며, 두승산에 있는 망월사와 관련된 어떤 설화로 추정된다”고도 했다.
김 이사장은 “신증동국여지승람 고부편 열녀조에 금이라는 여인이 남편에게 쫓겨났으나 개가하지 않고 있다가, 남편이 죽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상복을 벗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다”며, “이러한 설화나 이야기는 현존하는 유일의 백제가요 정읍사와의 내용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동여비고보다 200년 앞선 관찬기록인 동국여지승람의 ‘재현북십리’라는 기록을 뛰어넘을 수 있는 사료는 없다”고 단정하며, “백제가요 정읍사 여인과 관련된 이야기는 고부가 아닌 정읍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