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길섶 | 고창인문학강의 대표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의 박사학위 논문 등 4편의 논문이 다시 문제가 되고 있다. 국민대학교가 특히 박사학위 논문에 대해 “표절에 해당하거나, 학문 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날 정도의 연구 부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히면서다.
왜 이런 문제들이 불거졌을까. 국민대도 내용상 표절은 인정했다. 우희종 서울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국민대가 남이 특허를 낸 아이디어를 도용해 학위 논문을 쓴 것마저 다 괜찮다는 식의 논리를 만들어 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주장이 맞다면, 김건희 씨는 왜 남의 아이디어를 도용하고 표절하면서까지 학위논문을 받으려 했을까. 사실 학위논문들의 표절 관행은 한국사회의 곪은 문제다. 이는 학문적 도덕성의 문제라는 측면과 달리 ‘학위’라는 ‘자격증’ 문제, 즉 학위 혹은 학력능력주의가 낳은 사회적 병폐다. 학위능력주의는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시험능력주의의 또다른 얼굴이다.
그런데 더 웃기는 것은 학문적 기준을 엄격히 들이대야 할 국민대가 김건희 씨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점이다. 이는 누가 보아도 정치적 판단이며, 정치권력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행위이다. 작금의 정치현실에서 진실의 세계를 내팽겨치는 비굴함이 엿보인다. 무엇이 두려웠을까, 아니면 어떤 이득을 기대함이었을까. 한국사회의 정치현실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이루어내고 역사적 진보를 향하는 듯하면서도 퇴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이는 권력자 집단의 정치기술에서 비롯되는 일이기도 하나, 유권자의 지지기반과 선택에서 용인되는 일이기도 하다. 논문 표절과 면죄부 행위는 특정한 사례임에도 근본적으로는 한국사회의 지배체제와 깊게 연루된 일상적 현실 혹은 정치현실의 병폐 중 하나가 아닐까.
이와 관련하여 시험능력주의의 문제로 화두를 던지며, 한국사회 지배체제와 정치현실을 비판하는 교수가 있어 주목된다. 코로나19로 숨죽이던 ‘고창인문학강의’가 오랜만에 기지개를 켜고, 여름과 가을 사이 두 주제로 인문학 강의 특강을 연다. 그 첫 번째 특강은 성공회대학교 사회융합자율부에 재직 중인 김동춘 교수가 ‘한국사회의 지배체제와 정치현실’로 화두를 던진다. 두번째 특강은 인천대학교 경제학과에 재직 중인 양준호 교수가 ‘지방소멸론과 지역순환경제’로 화두를 던진다. 김동춘 교수는 8월17일 저녁 7시에 고창읍내 군립도서관 1층 문화강좌실에서, 양준호 교수는 9월1일(목) 저녁 7시 고창읍내 유교문화체험관에서 만날 수 있다.
김동춘 교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사회학자이자 시민운동가로 활동해 왔으며, 최근 ‘시험능력주의’라는 저서를 통해 한국사회 능력주의의 실상을 해부했다. 그는 그간 ‘전쟁정치’·‘기업사회’·‘가족개인’ 등의 독자적 개념으로 한국사회의 모순과 문제를 해명해 왔다. 이번 저작에서는 일평생 학생·교사·교수로 살아오면서 체득한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능력주의의 이름으로 불공정이 정당화되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조목조목 들여다본다.
재능이 있는 능력자가 우대받는 것이 당연할뿐더러 정치와 사회를 지배해야 한다는 ‘능력주의’는, 한국에서만 유행하는 현상이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 미국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확산된 논리다. 하지만 시험 합격의 이력에 따라 보상을 차등화하는 것이 공정함은 물론 정의롭기까지 하다는 생각은 이제 한국사회에서 일반화된 사고방식임을 김동춘 교수는 지적한다. 학력·학벌주의, 능력주의와 관련된 병리적인 사회현상은 교육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지위 배분과 권력 재생산, 노동시장의 문제로 직결되고 있다. 이에 바탕해 국가를 고장난 기계로 망가뜨리고 있는 오늘의 정치현실은 불공정이 공정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프레임으로 한국사회를 혼탁시키고 있다.
한국사회의 지배체제와 정치현실은 ‘입시지옥’으로 흑화되는 한국교육의 오늘을 걱정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회적 공정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관심을 가져볼 이야기거리다. 이 화두로 고창사회에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면, 공정해 보이나 공정하지 못한 지배체제 혹은 정치현실이 고창사회에서는 어떻게 작동되는지가 궁금하다면, 고창에서 살면서 평소 느끼던 이런 문제의식의 본질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이번 여름에 고창에서 김동춘 교수와 직접 만나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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