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이 기간제 근로자를 채용할 경우, 면접 시 (근로자 스스로 밝히지 않는 한) 임신 여부를 확인해서도 안 되며, 근로자가 임신 여부를 고지할 의무도 없으며, 임신과 관련하여 채용·근로조건·사직 등에 어떠한 불이익이 있다면, 이는 차별행위에 해당한다는 결정이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임신을 이유로 한 고용차별 사건과 관련, 정읍시선거관리위원회(이하 ‘정읍선관위’)에게 향후 유사한 사례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여 시행하고, 업무 관계자(지도계장)에 대한 필요한 인사조치와 소속직원을 대상으로 성인지 감수성 향상 및 차별 예방을 위한 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고 8월8일(월) 밝혔다.
인권위에 진정한 A씨는 임산부로, 정읍선관위가 공모한 ‘공정선거지원단’(이하 ‘선거지원단’)에 6개월 계약직으로 합격해 22년 1월3일부터 출근했다. 임신 4개월차(22년 6월말 출산예정)였던 A씨는 외근직인 ‘지역단속반’에 배정됐다. ‘지역단속반’은 ▲각종 행사 선거법 안내 및 예방활동 ▲관내 지역 순회 및 선거 관련 여론동향 및 정황 파악 ▲위반행위 현장 감시·단속, 선거비용 및 정치자금 자료수집 등을 담당한다. A씨는 임신 중이기도 하고, ‘법규운용반’(내근직) 선거지원단 단원 중 ‘지역단속반’ 근무를 희망하는 이가 있어 서로 업무를 바꾸기로 하고, 이를 지도주무관에게 이야기했다.
A씨에 따르면, “이후 지도계장이 A씨와 면담하던 중 출산일 등을 묻더니 임신 중이라는 이유로 사직서를 쓰라고 강요했으며, A씨는 출산 전까지 근무할 수 있다고 했으나, 지도계장은 안 된다며 사직서를 쓰게 하여, A씨는 출근 첫날 사직서를 작성해 제출했고, 출근 첫날 채용이 종료되었다”며, 이는 임신을 이유로 한 불합리한 차별이므로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지도계장은 “21년 12월24일 합격통지를 받은 A씨와의 통화에서 임신사실을 처음 알게 됐으나, 별도의 조치 없이 선거지원단에 편성한 사실에 비추어 보면 계속근로의 기회를 제공할 의사였음을 알 수 있다”면서, “A씨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임신 중 지역단속반 근무가 어렵다고 본 것이 아니며, A씨 스스로 근무 첫날 법규운용반 전환 요구를 통해 지역단속반 업무수행의 곤란함을 주장하여, 계속근로 가능성에 대해 재검토한 결과이지 차별적 의도를 가지고 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하면, 지도계장은 A씨가 채용면접 당시 임신 사실을 밝히지 않았고, 합격 후 통화에서 A씨가 임신 중이라고 하여 임신 초기로 예상했으며, 주의를 하면 선거지원단 근무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했으나, 첫 출근일에 A씨가 임신 4개월임을 확인하였고, “▲임신 중 선거지원단의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점, ▲6월 지방선거 임박 시점이 진정인의 출산 예정일과 겹쳐 근로계약기간 충족이 어려운 점, ▲배정된 선거지원단의 근무형태를 임의로 변경하기 곤란한 점, ▲A씨의 코로나19 백신 미접종(1차만 접종)으로 인해 근무 중 감염위험성이 높은 점 등을 설명했으며, 이에 A씨가 자의로 사직서에 서명한바 사직강요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정읍선관위의 행위에 합리적 이유가 있는가?
이에 대해 인권위는 차별금지 사유 및 영역에 해당하는지 여부, 정읍선관위의 행위에 합리적 이유가 있는 지 여부 등을 살폈다. ‘임신’을 이유로 ‘고용영역’에서 차별 주장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른 차별행위 조사대상에 해당한다. ‘차별행위’ 여부에 대한 인권위의 판단의 다음과 같다:
첫째, 정읍선관위가 선거지원단 지역단속반 업무강도와 법규운영반의 업무 스트레스 등을 고려할 때 임신 중인 A씨가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은 정읍선관위의 주관적 판단에 의한 것이다. 이와 관련, 중앙선관위는 임신 중이라고 하여 선거지원단 모집이 제한되거나 선거지원단 근무가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며, 정읍선관위 또한 A씨가 임신 초기일 경우에는 채용을 유지하려고 했으며, 선거지원단 근무가 임신을 사유로 현저히 수행하기 곤란하다고 보기 어렵다.
둘째, A씨가 22년 6월말 출산 예정이므로 근로기간 지속이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도 정읍선관위의 예단에 불과하다. 설령 A씨가 출산으로 근로기간 유지가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그에 따른 근로 공백은 임신중인 A씨를 그만두게 함으로써 해결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읍선관위가 사용주이자 모성보호 책임이 있는 정부기관으로서 대체인력 마련 등 적극적인 보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셋째, 정읍선관위는 선거지원단 모집공고 시 지역단속반과 법규운용반을 구분하거나 별도의 지원자격을 두지 않았고, 면접내용과 근무경력, 자질 등에 따라 선거지원단을 편성했다. 교육 또한 법규운영반의 경우, 선거여론조사에 대한 수시교육을 제외하면 지역단속반과 동일한 교육을 동시에 진행하므로, 법규운용반 업무가 특별한 전문성을 요한다고 보이지 않는다. 특히 A씨가 다른 선거지원단원으로부터 임신한 경우 지역단속반 근무가 어렵다는 의견을 듣고, 법규운용반 전환을 요청한 시점은 공통교육 첫날로 업무전환이 전혀 불가능했던 것이 아니므로, 정읍선관위가 임신 중인 A씨의 근로환경 보호를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했다고 볼 수 없다.
넷째, 지도계장은 A씨의 코로나19 백신 미접종 상황 등을 볼 때, A씨는 면접 당시 임신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야기하지 않아, 오히려 A씨가 선거지원단 활동을 위해 그 사실을 숨겼다고 하나, 근로자는 모집채용 과정에서 자신의 임신 사실을 고지할 의무가 없으며, 임신과 출산은 사회의 인력을 재생산하는 중요한 사회적 기능으로서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바, 임신 여부가 채용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될 수 없다. 이와 같이 임신한 경우 근무가능성에 대한 정읍선관위의 잘못된 인식은 선거지원단 면접과정에서도 드러난다. 선거지원단 업무특성상 휴일 및 야간 근무가 불가피하고, 근로여건이 열악하다면 업무환경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거나, 수행업무에 맞게 (휴일·야간 근무가 없도록) 적정한 인원을 채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정읍선관위는 도리어 근로조건을 빌미로 면접 시 결혼 여부와 자녀 유무 등을 질문한 바, 이는 결혼한 여성이나 자녀가 있는 여성의 경우 선거지원단 업무수행이 곤란할 수 있다는 차별적 인식이 반영됐다고 할 것이다.
다섯째, 백신 미접종에 따른 선거지원단 근무 제한 등의 중앙선관위 방침은 없었다. 당시 정부는 백신접종 대상에서 임산부를 제외했다가, 21년 10월8일부터 접종을 시작했으며, 21년 백신을 미접종한 임산부 비율은 90.2퍼센트로 임산부들은 적극적인 접종을 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정읍선관위는 A씨에게 방역수칙 준수 등 대안을 모색·안내하기보다는, A씨와 태아의 코로나19 감염위험성을 설명함으로써, A씨로 하여금 근로를 지속하기 어렵겠다고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이를 종합하면, 인권위는 “선거지원단 업무가 임산부가 수행하기에 불가능한 업무가 아닌 점, 향후 출산에 따른 근로계약 미준수 가능성은 중앙선관위의 예단에 불과한 점, 내근직인 법규운용반 전환이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었던 점 등을 고려할 때 정읍선관위의 주장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정읍선관위는 선거지원단 업무특성상 근로환경이 임산부에게 우호적이지 않더라도, A씨가 근무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보호를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열악한 근로환경 등 부정적인 인식을 제공함으로써, A씨는 사직을 종용 또는 강요받는 것으로 느끼기에 충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임신 등을 이유로 한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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