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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의 박미애 선생(1959년생)이 8월19일 자수장(민수)으로 전북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전통자수에는 궁에서 하는 궁수와 평민들의 자수인 민수가 있다. 선생은 궁수에도 정통하지만 전북에서는 민수에 방점을 두었다.
고창읍성 한옥마을 고창공예품전시관(고창전통자수)에서 만난 선생은 “어머니는 2000년 8월 전북무형문화재 지정을 앞두고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나 제가 전북무형문화재에 지정되었다니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한다. ‘자수를 그만해야 하나’, 여러 복잡한 심정이 뜰 때도 있었지만, 고비고비마다 어머니가 저를 일으켜 세우신 것 같다”고 말했다.
전북무형문화재로서 앞으로의 계획
“무형문화재가 되니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어깨가 무겁다. 작품 하나를 하더라도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유물로 남을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 그리고 전통자수가 무엇인지 후세에 남기고, 제자들에게도 전통자수를 잘 전하고 싶다.”
선생은 열정과 아이디어도 넘치고, 꿈과 계획도 많았다. 현재는 고창군 고지도를 자수로 재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여러 준비작업을 거쳐 2021년 5월경 수를 시작해 고창현·무장현·흥덕현 작업을 이어가도 있다.
그리고 세 권의 책도 준비하고 있었다. 하나는 전통자수에 대한 전문서적, 다른 하나는 고창전통자수의 역사와 의미, 마지막으로 자서전을 쓸 예정이다. 이를 통해 자신의 삶과 고창전통자수의 의미를 정초하는 동시에 복원하는 것이다.
또한 “박물관·체험관·전시관이 포함된 고창전통자수 전수관을 만들고 싶다. 폐교를 불하받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전수관은 고창전통자수의 꿈이다. 박 선생의 어머니도 후계 양성 위한 전수관이 소망이었다고 한다.
선생은 국가무형문화재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국가무형문화재는 궁수에 방점을 두기 때문에, 궁수 기술을 단련하며 앞으로 궁수 작품에 전념할 예정이다.
고창전통자수와 어머니
고창전통자수는 3대째 맥을 이어오고 있다. 1대 강지산 외할머니를 시작으로, 2대 어머니 최인순 선생, 3대째 딸들(박봉희·성희·미애·성애)과 며느리(이복남)가 이어받았고, 현재는 고창에서 박미애·이복남 선생이 작품을 만들고 있다.
“외할머니에 이어 어머니, 또 저희 5자매의 ‘전통자수’ 이야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업에 대한 이야기다. 예전 1900년대의 할머니 때는 생활용품을 직접 만들어 쓰던 모두가 장인이자 문화재였던 시절이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유달리 자수 놓은 것을 좋아해서, 1940년 보통학교 시절부터 자수 수업을 시작으로, 결혼 후에는 취미로 하는 것을 넘어 1965년부터 공방을 운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우리 자매들도 다 같이 그 길을 걷게 되었다.”
어머니는 1965년 서울시 마포구 이대 앞에 공방을 차리고 고창·순창에서 재원들을 채용해 사업을 했다. 아버지의 사업이 순조롭지 못하자 1972년 고창으로 귀향해, 본가의 6칸 한옥을 개조하고 고창·순창의 재원들을 채용해 다시 기틀을 잡았다.
당시 중학교에 다니던 선생은 방학 때면 어머니를 도와 수를 놓았고, 언니 봉희·성희는 학교에 다니느라 1975년에 내려와 같이 공방을 운영했다. 1977년 3월 선생과 동생 성애는 어머니의 공방에서 정식으로 전통자수에 입문했다. 하지만 전통자수는 값싼 기계자수와 중국자수에 밀려 하락세에 접어들었고, 알바를 하러 온 올케언니와 가족들만이 작품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
‘천직과 장인’…45년 한길을 걸어오며
선생은 1990년 어머니로부터 고창자수를 물려받았다. 그때 어머니의 유일한 처녀작 ‘까치족자’도 물려받았다. 이후 고창전통자수를 운영하며, 언니 봉희와 고창자수박물관도 운영하며 지금까지 왔다.
“우리 다섯 남매 또한 저와 올케언니만이 남았다. 그리고 현재 전남·북에 강의를 많이 다니다 보니 제자들이 해마다 수상을 하고 각 지역에서 공방도 운영하고 있다. 취미반으로 하는 회원들과도 작품을 하며 고창전통자수의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들이 어머니의 뒤를 잇는 진정한 고창자수의 후계자들인 것이다.”
2000년 8월 문화재 승인을 앞두고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선생은 무덤 앞에서 ‘이제는 내가 하겠노라’고, ‘그 뒤를 이어가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20여년이 흐르는 동안 갈등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선생은 2019년 회갑전을 끝으로 그만두려다가, 또다시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다시 장인의 길로, 고창미술협회 지부장도 맡으며 쓰나미에 밀리듯 여기까지 왔다.
“‘장인과 천직’, 이 말은 저에게는 천형과 같다. 이 고단하고 힘겨운 길을 벗어나고자 여러 번 시도를 했고, 그때마다 도리없이 다시 돌아설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저는 ‘천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일반 전통자수 장인들과는 다르게, 저는 다양한 작품들을 연구하고 시도하게 되었다. 그것은 저희 고창자수의 특징이자 자부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떠한 작품을 주문하더라도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솜씨, 그것을 저는 ‘장인’이라 생각하며, 45년 한땀한땀 장인의 길을 잇고 있으며, 앞으로도 장인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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