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농협의 상임이사 선출 과정이 마무리되면서, 논란의 중심이었던 ‘오명환 후보자 신임투표’가 통과됐다. 그러나 정작 더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은 유덕근 조합장의 갑작스러운 사퇴 선언이었다. 상임이사 선출 과정에서 불거진 내부 갈등이 조합장직까지 번지면서, 고창농협은 또 한 번의 중대한 변곡점을 맞이했다.
극적인 반전—부결에서 가결로
지난 2월20일 열린 고창농협 대의원 정기총회에서 오명환 후보자는 찬반투표 결과 43:52로 부결됐다. 그러나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은 3월14일 대의원 임시총회에서 다시 진행된 신임투표에서는 106명의 대의원 중 100명이 투표에 참여했고, 54:46으로 가결되면서 오 후보자는 상임이사로 선출됐다.
이로써 오명환 당선자는 오는 3월21일부터 2년간 농협 신용사업을 담당하는 상임이사직을 수행하게 된다. 그는 투표 전 대의원들에게 소견 발표를 하며, “농협에서 32년간 기획·총무·여수신·유통업무와 하나로마트 점장 등 다양한 업무를 통해 관리능력을 쌓았다”며, “신용사업은 농협의 가장 중요한 사업 기반으로, 안정적인 수익 창출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더 많은 배당과 교육지원사업 혜택을 제공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상임이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유덕근 조합장이 갑작스럽게 사퇴 의사를 밝히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조합 안팎에서는 “상임이사 선출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결국 조합장직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유덕근 조합장의 사퇴—내부 갈등과 논란의 중심에서
유 조합장은 입장문을 통해 “오는 3월25일 이사회를 마지막으로 주재하고, 고창농협 조합장직을 사직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 같은 발표는 조합 내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사퇴의 배경에는 상임이사 선출 과정에서 발생한 논란과 내부 갈등이 자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입장문에서 가장 먼저, 조합장 친인척 직원 채용 논란에 대해 해명했다. “고창농협 조합장 친인척으로 근무하는 직원은 총 3명이 있으며, 이들 모두 정당한 절차를 거쳐 채용됐다”고 강조했다. 또한 “조합장의 친인척이라는 부분이 누가 될까봐 더 성실하고 착실하게 근무하고 있다”면서, “단지 조합장의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부적절하다는 유언비어가 난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특히 상임이사 선출 과정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도록 대의원에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유 조합장은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대의원에게 전화해 특정 후보자에 대해 찬성 또는 반대표를 찍으라고 말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지난 정기총회 끝나고 K대의원과 전화통화를 했는데, 누구 찍으라는 얘기를 한 마디 안 하고, 한 번의 부결이 고창농협에 정말로 크나큰 타격이 오기 때문에,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어야 된다. 현명한 판단을 해 달라고 했지, 누구 후보자를 지칭한 사실은 없다”면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소문을 넘어 비방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유감이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지난 19년 동안 조합장직을 수행하면서 정말로 고창농협에 누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고 노력했고, 또 우리 가족들한테도 신신당부했고, 또 우리 조합원들한테도 정말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사람은 실수도 할 수 있다. 이번 선거를 보면서 정말 저는 비애감마저 느꼈고, 더 이상 조합장직을 수행할 능력을 잃었다. 저도 건강이 많이 망가졌다. 그래서 저는 이달 25일 고창농협 마지막 이사회를 주재하고 고창농협 조합장직을 사직하겠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많은 대의원들 앞에서 해버려야 나중에 제가 다른 마음을 못 먹는다. 그래서 오늘 발표했다는 말씀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단독후보 신임투표’ 대 ‘복수후보 경합투표’—농협 상임이사 선출 제도의 허점
이번 상임이사 선출을 두고 농협의 ‘단독후보 찬반투표’ 방식이 과연 적절한가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현행 지역농협 표준정관에 따르면, 상임이사는 인사추천위원회에서 추천된 단독 후보를 총회에서 찬반투표로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약 단독후보에 대해 두 차례 이상 총회에서 부결될 경우, 기존에는 계속 단독후보에 대한 찬반투표가 진행돼야 했으나, 2024년 정관례 개정을 통해, 차기 총회에서는 복수후보를 추천하여 경합투표를 할 수 있도록 변경됐다. 하지만 정관은 강제적인 법적 효력을 가지지만, 정관례는 법적 강제성이 없으며 실무 지침에 불과하다. 따라서, ‘복수후보 경합투표’를 제도적으로 인정하려면 중앙회 차원의 정관 개정이 필요하다.
농협이 ‘복수후보 경합투표’를 하지 않고, ‘단독후보 신임투표’를 유지하는 이유는 내부에서 조율된 단독후보를 추천하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처음부터 경합투표를 하면 후보자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조직 내 분열과 갈등이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식이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단독 후보가 부결될 경우 다시 총회를 여는 비용이 발생하고, 경합투표보다 더 큰 혼란과 갈등이 초래될 수 있으며, 조합의 의사 결정 과정이 지연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농협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총회의 권위를 무력화하는 결과가 초래된다. 따라서, “상임이사 선출 시 단독후보 추천을 원칙으로 하되, 인사추천위원회의 판단에 따라 복수후보를 추천할 수 있다”는 식으로 정관을 개정하면 보다 유연한 방식이 가능해진다.
고창농협,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번 고창농협 상임이사 선출 과정은 단순한 인사 문제가 아니라, 조합 운영의 구조적 문제와 내부 갈등이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떠오른 사건이었다. 결국 유덕근 조합장의 사퇴로 이어지면서 조합 운영의 불안감과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그의 사퇴 이후, 고창농협은 새로운 리더십을 어떻게 구축하고, 조합원들의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로 남게 되었다. 이제 고창농협은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내부 갈등을 극복하고 다시 도약할 것인가, 아니면 혼란을 반복할 것인가. 그 선택은 고창농협 조합원들과 새로운 리더십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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