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농협 조합장의 사퇴 번복 시도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 3월14일 대의원총회에서 유덕근 조합장은 “이달 25일 마지막 이사회를 주재하고 조합장직을 사퇴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후 3월18일 ‘고창읍 조합원 좌담회’ 등에서 사퇴 철회를 시도하면서, 법적으로 철회가 가능한지에 대한 해석이 주목받고 있다.
유 조합장은 백여 명의 대의원 앞에서 의혹에 대한 결백을 주장하며 사직을 표명했다. 그리고 나흘 뒤 번복했다. 그렇다면 그날 대의원총회에서 외쳤던 ‘진심’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조합장의 진심어린 호소를 대의원들이 신뢰하고 공감하기를 바랬던게 아닌가?
법적 판단을 떠나, 대의원총회에서 사퇴를 발표한 조합장이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자기 스스로 ‘능력도 잃었고 건강도 망가졌다’며 사직을 밝히고, 또 스스로 변심 안 한다고 못 박아놓고, 또 며칠도 안 지나 변심하더니, 사퇴를 이행하라는 쪽에 도리어 가타부타 말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조합장 편에서 옹호하고 싶어도, 이런 행태를 무슨 근거로 감쌀 수 있겠는가?
사퇴 의사표시, 철회·번복·취소할 수 없다.
대법원에 따르면 “사임의 의사표시는 상대방에게 도달하는 즉시 그 효력이 발생하며, 일단 도달된 후에는 철회할 수 없다(대법원 2009. 5. 14. 선고, 2008도11040 판결).”
유 조합장이 한 발언이 사퇴 의사표시라면 철회·번복·취소할 수 없다. 이것은 확립된 판례의 태도이다. 구두로 하나 사직서로 하나 모두 유효하다. 사퇴 발언 즉시 사표는 수리된 것이다. 대의원총회 이후 일부 이사들이 철회를 요청했는데, 모든 이사들이 동의한다고 해도 되돌릴 수 없다.
오는 3월25일 사직할 예정이라고 했어도, 3월25일 전에 철회할 수 없다. 3월25일은 사퇴할 시점을 지정한 것이며, 사퇴 의사표시는 3월14일에 이미 확정된 것이다. 법적으론 그렇다. 즉, 유 조합장의 발언이 사퇴 의사표시라면, 3월14일에 사표는 수리된 것이고, 3월25일 이사회를 주재하고 사퇴해야 한다.
조합장이 변심하여 사퇴를 안 해도 되는 경우는, 대의원총회 시 조합장의 발언이 사퇴 의사표시가 아닌 경우일 뿐이다.
3월14일 대의원총회에서 조합장이 발표한 내용
“(조합장 친인척 채용을 통한 조합 사유화 논란, 상임이사 선출 과정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도록 대의원에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에 대해 해명한 후) 지금까지 19년 동안 조합장직을 하면서 정말로 고창농협에 누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고 노력했고 또 우리 가족들한테도 신신당부했고 또 우리 조합원님들한테도 정말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사람은 실수도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상임이사) 선거를 보면서 정말 저는 이번에 비애감마저 느꼈고 더 이상 조합장직을 수행할 능력이 잃었습니다. 저도 건강도 많이 망가졌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입장을 저는 오늘로서 사퇴가 아니라, 이달 25일날 고창농협 마지막 제가 이사회를 주재하고 고창농협 조합장직을 사직할까 합니다. (…)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많은 대의원님들하고 해버려야 나중에 제가 다른 마음을 못 먹습니다. 그래서 오늘 발표했다는 말씀을 좀 이해를 해 주시고요.”
‘단순한 사퇴 고려’와 ‘확정된 사퇴 의사표시’
‘확정된 사퇴 의사표시’란 “일정한 시점(즉시 또는 미래의 특정일자)에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표시한 것”이다. 총회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 “나는 오는 25일 자로 조합장직을 사직하겠습니다”, “사퇴를 발표합니다”처럼 명확하게 발표한 경우다.
‘단순한 사퇴 고려’란 “향후 사퇴를 고려하고 있다는 의사를 명확하지 않게 표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사퇴를 고려하면서 구체적인 날짜를 특정하지 않은 경우, “사퇴할까 고민 중입니다”, “사퇴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25일 즈음에 결단을 내리겠습니다”와 같은 발언이다.
조합장의 발언을 ‘단순한 사퇴 고려’로 보는 경우
상기 발언이 단순한 사퇴 고려인지, 확정된 사퇴 의사표시인지에 대한 해석이 쟁점이다. 조합장이 변심하여 법적으로 3월25일 사퇴하지 않으려면 상기 발언이 ‘단순한 사퇴 고려’여야 한다. 그래서 일부 이사들은 조합장의 발언이 ‘단순한 사퇴 고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전체 발언의 의미보다는 한 단어의 쓰임새에 집중한다. 조합장이 말한 ‘사직할까 합니다’에서 ‘할까’라는 단어가 ‘사직할 수도 안 할 수 있다’는 뜻이므로, ‘확정된 사퇴 의사표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변심하여 25일 사퇴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것이다.
유 조합장의 유임을 바라는 한 인사는 “조합장의 발언은 감정이 격앙되어 흥분 속에 일어난 해프닝이며, 단순한 사퇴 고려를 격정적으로 표현한 것 뿐”이라고 주장했다.
조합장의 발언을 ‘확정된 사퇴 의사표시’로 보는 경우
‘확정된 사퇴 의사표시’로 보는 이들은 전체 맥락을 중시한다. ▲“더 이상 조합장직을 수행할 능력이 잃었습니다. 저도 건강도 많이 망가졌습니다”라며 사퇴의 사유와 함께 조합장직을 지속할 수 없다는 의사를 강하게 표현했다. ▲“저는 오늘로서 사퇴가 아니라 이달 25일날 고창농협 마지막 제가 이사회를 주재하고 고창농협 조합장직을 사직할까 합니다”에서 “사직할까 합니다”는 단순한 말투로 보이며, 당일 즉시 사퇴하는 것은 아니지만, 단순한 사퇴 고려가 아니라 사퇴 시점을 25일로 특정하고 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많은 대의원님들하고 해버려야 나중에 제가 다른 마음을 못 먹습니다”는 사퇴 결정을 번복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하면서, 스스로 사퇴 의사를 확정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발표했다는 말씀을 좀 이해를 해 주시고요”는 사퇴 의사표시를 오늘 공식적으로 전달했음을 의미한다. 즉, 조합장이 직접 사퇴 결정을 확정하는 자리였음을 강조한 대목이다.
이렇듯 조합장의 발언은 단순한 “사퇴할 수도 있다” 또는 “사퇴를 고려하겠다”는 수준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명확한 사퇴 의사와 시점을 특정한 ‘확정된 의사표시’라는 것이며, 대의원들에게 이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또한 법적인 판단을 떠나, 상식적으로도 조합장의 전체 발언의 의미는 “3월25일 이사회에서 사퇴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농협 관계자는 “사퇴 의사표시가 대의원총회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된 이상, 법적으로 철회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며 “조합 운영의 안정성을 위해 신속한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5일 이사회에서 사퇴할 경우
‘단순한 사퇴 고려’든 ‘확정적 사퇴 의사표시’든 조합장이 “3월25일 이사회 사퇴”라고 말한 것은 분명하므로, 조합장은 사퇴 이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3월25일 이사회에서 사퇴를 이행할 경우, 농협은 사임을 공고하고 후속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25일 이사회에서 사퇴하지 않을 경우
3월25일 이사회에서, 조합장이 사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농협은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밖에 없다. 법적·상식적으로 조합장이 사임했다고 보는 이사·대의원·조합원들은 유덕근 조합장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조합장에 대한 신뢰와 리더십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으며, 농협 운영의 혼란이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도 조합장에게 사퇴를 이행하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게시돼 있다. 대의원들은 조합장의 해임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전개하여, 대의원총회를 통해 해임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부결될 경우, 조합의 명예와 신뢰를 실추시킨 점을 들어 추가적인 해임안을 다시 상정할 수도 있다. 이사회가 조합장의 사퇴 번복을 묵인하고 조합 운영을 불안정하게 만든 책임을 물어, 이사들을 해임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또한 조합장을 상대로 직무정지 가처분이나 조합장직 무효 소송 등을 검토할 수 있다. 조합의 내부 통제 기능이 상실된 경우, 농협 중앙회 또는 농림축산식품부 등 감독기관에 공식적인 조치를 요청할 수도 있다.
고창농협, 더 큰 혼란이 아닌 새로운 신뢰로 나아가길
고창에서 농협 조합장의 사퇴 발표도 초유의 사태며, 사퇴 번복도 초유의 사태다. 하지만 이 사태를 통해 가장 중요한 교훈은 단 한 가지다. 조합 운영의 중심에 서야 할 조합장의 말과 행동은 조합원 모두의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하며, 그 무게는 어떤 변명으로도 가볍게 여겨져선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 고창농협이 맞이한 혼란은 단지 한 사람의 진퇴 문제가 아니라, 지역 리더십에 대한 신뢰는 조합의 미래는 물론, 지역 공동체 전체의 안정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다. 갈등과 혼란의 골이 깊어지기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더 건강한 논의와 투명한 운영이 자리 잡기를 바란다. 조합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상처 입은 신뢰를 회복하는 길만이 고창농협이 다시 일어서는 유일한 해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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