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고 정인학 일등중사 유해와 함께 발굴된 유품. [출처=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 ⓒ 주간해피데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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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휴전을 이틀 앞두고 전사한 정읍 출신 고(故) 정인학 일등중사(현 계급 하사)가 72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3월19일 충청남도 천안시 유가족 자택에서 고인의 신원확인 통지서와 ‘호국영웅 귀환 패’,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전달하며 그의 귀환을 공식화했다.
정읍 태생의 청년, 조국을 위해 헌신하다
정인학 하사는 정읍시에서 4남6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친이 운영하는 농산물 소매업을 도우며 생활하던 그는 1951년, 18세의 어린 나이에 조국을 지키기 위해 군에 입대했다. 이후 2년간 수많은 전투에 참전했으며, 1953년 7월 강원도 철원군 원남면 주파리에서 벌어진 ‘적근산-삼현지구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그의 희생은 휴전 이틀을 앞둔 결정적 순간이었다.
72년 만의 귀환, 가족의 한을 풀다
정인학 하사의 유해는 지난해 11월 강원도 철원에서 진행된 유해발굴 작업 중 발견됐다. 당시 함께 발굴된 19구의 유해 중 그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결정적 단서는 ‘인식표’였다. 국유단은 인식표를 바탕으로 병적부를 조회하고 유가족을 찾아 나섰다. 이후 그의 여동생 정병숙(69) 씨와 유전자 감식을 진행한 결과, 형제 관계가 최종 확인됐다.
정병숙 씨는 “오빠가 전사한 이후 태어나 직접 본 기억은 없지만, 매년 현충일마다 정읍시 충무공원에서 열리는 추모 행사에 부모님과 함께 참석하며 오빠를 그리워했다”며 “국유단이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러 오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가 꿈에 나타났고, 유해를 찾았다는 소식을 듣기 전날에는 아버지가 꿈에 나왔다. 마치 오빠를 내가 받아야 한다는 계시 같았다”고 감격을 전했다.
기억해야 할 우리의 역사, 국민의 동참 절실
국유단은 “6·25 전쟁 후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참전용사와 유가족의 고령화로 인해 유가족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전사자 신원 확인을 위한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6·25 전사자의 유해를 찾지 못한 유가족(친·외가 8촌 이내)은 전국 보건소, 보훈병원, 병무청, 예비군동대, 국유단을 통해 유전자 시료 채취를 신청할 수 있다. 신원이 확인될 경우 1천만원의 포상금도 지급된다.
한 사람의 희생이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낸 역사 속에서, 72년 만에 돌아온 정인학 하사의 귀환은 단순한 유해 발굴이 아닌 국가가 국민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제 남은 이들도 더 이상 긴 세월을 떠도는 이름 없는 희생자가 아닌,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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