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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조형물이 작가의 동의 없이 철거되고, 훼손된 채 다른 장소로 옮겨졌다. 고창군은 국가사적 승격이라는 행정 목적을 앞세웠고, 작가는 작품의 본질이 짓밟혔다고 반발했다. 결국 법원은 작가의 손을 들어줬지만, 조형물은 여전히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했다. 설치미술의 생명은 공간과 맥락인데, 그것이 분리된 순간 작품은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조형물은 남았지만, 그 상징은 더 이상 울리지 않는다.
무장기포지와 함께 있었던 20년
김재삼 작가가 제작한 무장기포지 상징 조형물은 2002년 1월, 전북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무장기포지에 세워졌다. 고창군은 동학농민혁명 선양사업의 일환으로 이 조형물 제작에 1억2천만 원의 예산을 들였다. 높이 7.5미터, 폭 9.6미터의 석조 조형물로, 문양이 새겨진 하부 바닥 위에 무장기포의 혁명정신을 형상화한 본체가 세워졌고, 그 주위를 낮은 죽창들이 원형으로 둘러선 구조였다.
이는 공공장소에 고정 설치된 대형 조형물이자, ‘무장기포의 동학농민혁명 정신이 전국으로 퍼져나간다’는 의미를 시각화한 설치미술이었다. 단독 구조물이라기 보다는, 무장기포지라는 역사적 공간과 맞물려 작품으로 완성된 것이었다. 20년 동안 이 조형물은 무장기포지의 상징으로 기능했고, 고창군 역시 홍보물과 안내판, 각종 보도자료를 통해 이 조형물을 무장기포지의 얼굴처럼 활용해왔다.
원형성의 벽에 가로막힌 조형물
무장기포지가 국가사적으로 승격되는 과정에서, 부지 내 설치된 조형물은 ‘사적 지정의 핵심 조건’인 원형성 확보의 기준 앞에 설 자리를 잃었다. 이미 2014년 전북기념물로 지정될 당시부터 전북문화재위원회는 조형물 철거를 권고한 바 있다. 이후 2019년 6월, 국가사적 승격 심의가 보류됐을 때도 조형물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당시 이재운 문화재청 사적분과위원장(전북문화재위원장)은 “무장기포지 내 조형물 제거”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자문을 내놓았다.
2020년까지 이어진 관련 학술대회에서도 “현재 설치된 조형물이 무장기포의 상징성을 강하게 웅변하지 못하고, 오히려 왜곡·전달의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다”면서, “반드시 철거해서 원형성을 회복하기 위한 진정성을 가져야 사적 지정이 가능하다”며 조형물 철거를 강조했다. 고창군은 2021년 6월부터 8월까지 조형물 철거를 진행했고, 사적 지정을 위한 문화재위원회의 실사 직전, 조형물을 (구)신왕초등학교(고창동학농민혁명 홍보관)으로 이전했다. 그로부터 9개월 뒤인 2022년 5월2일, 무장기포지는 마침내 국가사적지로 승격됐다.
행정은 옮겼고, 예술은 분리되었다
조형물 이전은 최종적으로 작가의 동의 없이 이뤄졌다. 이전 사유와 계획은 작가에게 전달됐지만, 고창군에 따르면, 작가는 이전 설치 자체는 반대하지 않았으나, 단순 이전이 아닌 성토와 재설계가 포함된 보완안을 제안했다. 이를 위해 1억 원의 사업비를 요청했고, 직접 설치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고창군은 조형물을 재구성할 계획이 없었다(작가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창군은 단순 이전만을 원했고, 작가 개인이 조형물 이전을 할 수 없기에 일반조경업체를 통해 이전을 진행했다.
그 결과 조형물은 본체와 죽창은 (구)신왕초등학교에 재설치되었고, 문양이 새겨진 하부 바닥은 무장기포지에 남겨졌다. 공간과 맥락이 결합된 설치미술이 구조적으로 분리된 것이다. 작가는 원래 의도였던 ‘포고문의 정신이 만방으로 퍼진다’는 상징은 해체됐고, 예술적 통합성도 무너졌다고 주장했다.
조형물 이전과 저작인격권 침해
고창군은 “조형물 본체는 손상되지 않았고, 바닥은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원위치에 남겨두었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문화재위원회 등 철거 권고에 따라 불가피하게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작가는 2023년부터 저작인격권 등의 침해를 이유로 고창군을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2025년 3월13일, 법원은 작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고창군은 예술을 보호할 공공의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명시적 반대를 무시한 채 조형물을 일방적으로 이전했으며, 그 과정에서 전문가의 자문 등 신중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 작품을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고창군은 작가에게 15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고, 군청 홈페이지에 2주간 공식 사과문을 게시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사과문 말미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포함됐다. “고창군은 김재삼 작가에 대하여 명예를 회복시키고, 동시에 예술품 창작자에 대한 존중과 예우가 부족하였던 점을 반성함으로써, 이와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저작인격권 가운데 하나인 ‘동일성유지권’이다. 동일성유지권은 창작자의 의사에 반하여 작품의 형상이나 의미가 훼손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권리다. 고창군은 작가의 동의 없이 조형물을 이전했고, 이 과정에서 작품 일부가 훼손된 것으로 드러나 동일성유지권 침해 여부가 쟁점이 됐다. 법적으로는 고창군이 전문가 자문을 거치거나 전문업체를 통해 문양이 포함된 바닥까지 포함해 이전했어야 하며, 작품의 훼손을 방지할 책임이 있었다.
작가는 지금도 ‘원상복귀’만을 원하고 있다. 그는 고창군을 상대로 저작인격권 등 침해 혐의로 형사 고소를 진행 중이다. 저작자의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한 자는 저작권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조형물 훼손 및 무단 이전이라는 구체적인 실행행위를 기획·결정·집행한 당시 공무원들(주무관·팀장·과장 등)이 1차적 고소 대상이며, 당시 고창군수 또한 결재 및 인지 여부에 따라 공범 또는 관리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자리 잃은 상징, 덩그러니 남겨진 조형물
작품이 다시 무장기포지로 돌아가는 일은 어려워 보인다. 사안이 끝까지 이어질 경우, 조형물의 하부 바닥까지 (구)신왕초등학교로 함께 이전될 가능성이 높다. 조형물이 세워졌던 무장기포지는 국가사적으로 지정되며 역사적 공인을 받았지만, 그 자리를 지켜온 상징물은 끝내 함께하지 못했다. 한편, 조형물이 옮겨진 (구)신왕초등학교는 오는 5월, 고창동학농민혁명 홍보관이 고창군청 앞으로 이전되면서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그 이후 조형물은 폐교 운동장에 덩그러니 놓이게 될 처지가 됐다.
공공예술은 누구의 것인가
이번 사건은 공공 조형물의 ‘소유’와 ‘의미’가 누구에게 귀속되는지를 다시 묻는다. 조형물은 공공 예산으로 제작돼 공공 공간에 설치된 것이지만, 그것이 창작자의 동의 없이 옮겨지고, 해체되는 과정이 정당한가에 대한 질문이 여전히 남는다. 특히 저작인격권은 단순한 소유권과 달리 창작자의 정신적·예술적 권리를 보호하는 중요한 장치임에도, 이번 사례에서는 그 권리가 충분히 존중되지 못했다. 결국 20년간 무장기포를 상징해온 예술은 행정적 판단과 법정 쟁송 속에서, 결국 퇴장의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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