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주간해피데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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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곳곳에서 버려지던 폐비닐이 다시 자원으로 돌아오고 있다. 정읍을 포함한 전국 영농폐비닐 재활용시설들이 기술 개선과 수거체계 개편을 통해 성과를 내면서, 그동안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던 농촌 폐비닐 문제가 조금씩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다. 한국환경공단은 지난 3월24일 정읍의 영농폐비닐 처리시설은 공정 효율화를 통해 연간 처리량을 두 배 가까이 끌어올리며 농촌 자원순환 모델의 대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고 밝혔다. 환경공단은 전국에서 영농폐비닐 처리시설 8곳을 운영하고 있다.
재활용의 출발점, 농촌의 폐비닐
영농폐비닐은 농업활동 후 버려지는 필름류로, 하우스나 노지 재배에 사용된 비닐이 대부분이다. 그 양은 방대하지만, 오염도와 분리의 어려움, 수익성 부족 등의 문제로 수거와 재활용이 꾸준히 지체돼 왔다.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은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영농폐비닐 수거 및 재활용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농가에서 배출된 폐비닐은 마을 공동집하장으로 모이고, 일정 기준에 따라 분류돼 지자체가 수거와 보상을 진행한 뒤, 재활용시설로 옮겨진다. 여기서 이물질 제거, 세척, 압축 등의 공정을 거쳐 정화조, 하수관, 파레트 등 다양한 플라스틱 제품의 원료로 다시 태어난다.
정읍, 재활용의 효율을 높이다
정읍시에 위치한 영농폐비닐 재활용시설은 전북특별자치도 14개 시·군에서 수거된 폐비닐을 집중 처리하는 핵심 기지다. 2004년 설립 당시만 해도 연간 처리량은 1만톤 수준에 그쳤지만, 최근 처리공정의 획기적인 개선으로 2024년에는 2만톤에 이르는 재활용 실적을 기록했다.
주요 변화는 기존 압착 위주의 공정을 원심분리 중심으로 전환한 점이다. 이 방식은 세척과 탈수 효율을 높여 공정 시간을 단축하고, 품질 높은 재생원료를 보다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했다. 실제로 정읍과 함께 이 방식을 도입한 담양 시설은 처리량이 기존 대비 78퍼센트 증가했고, 비닐 내 불순물 제거율도 눈에 띄게 향상됐다.
정읍 시설은 환경공단이 설립했지만 민간위탁 방식으로 운영되며, 현장에는 총 17명의 인력이 교대 근무를 하며 폐비닐의 입고부터 출하까지를 관리하고 있다. 시설에서 생산된 재생 플라스틱은 전량 민간 업체에 판매되며, 판매 단가 또한 최근 수년 사이 꾸준히 상승 추세다.
수거부터 정리가 필요하다
재활용의 성패는 수거 단계에서 이미 절반이 갈린다는 것이 현장의 공통된 인식이다. 농촌의 폐비닐 수거는 보상금 지급 방식으로 운영되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폐기물에 흙, 돌, 농약 포장지 등이 함께 섞여 들어오는 일이 빈번하다. 오염된 비닐은 세척과 선별 과정에서 시간이 더 들고, 최종 재생원료의 품질도 낮아지게 된다.
이에 따라 환경공단은 지난해부터 ‘자율수거 책임제’를 시범 도입했다. 폐비닐 발생 농가에 더 큰 책임을 부여하고, 마을 단위 수거 체계를 개선하는 방식이다. 이 제도는 정읍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 시행돼 긍정적 성과를 거뒀고, 올해부터는 전국 확대 적용이 검토되고 있다. 정읍 자원순환사업부 관계자는 “영농폐비닐은 농민의 손에서 시작돼 공공의 노력으로 순환된다”며, “수거 단계부터의 정리가 재활용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복합재질과의 싸움, 기술이 해답이다
재활용을 어렵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은 소재 다양화다. 과거에는 단순한 폴리에틸렌(PE) 비닐이 주류였지만, 최근에는 은박 필름이나 폴리올레핀(PO) 계열의 복합재질 비닐 사용이 늘고 있다. 이들은 기존 재활용 설비로는 처리하기 어려워 소각이나 매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환경공단은 일부 신소재 비닐에 대한 시험 재활용을 진행 중이며, 향후 전용 공정 개발로 재활용률을 높일 계획이다. 특히 안동·의령 등 일부 시설에는 세척-탈수 강화 공정이 도입돼 복합재질의 전처리 성능을 향상시키고 있다. 이는 비닐의 수분 함량을 줄이고, 단위 생산물의 품질을 높여 판매가를 끌어올리는 효과로도 이어졌다.
2024년 기준, 폐비닐 1킬로그램당 평균 단가는 250원으로, 이는 불과 몇 년 전의 150원 대비 약 67퍼센트 상승한 수치다. 품질 개선과 수요 증가가 맞물린 결과다.
수익성과 환경성, 두 마리 토끼를 잡다
지난해 한국환경공단이 운영한 전국 영농폐비닐 재활용시설의 총 처리량은 13만2천톤에 이르렀고, 수거량은 21만2천여톤으로 모두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단순히 처리량 증가에 그치지 않고, 실제 재활용 제품 생산과 매출 증가로도 이어졌다.
특히 정읍을 포함한 일부 선진 시설은 생산된 재생원료를 보다 경쟁력 있게 판매하며 연간 수익 89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공공시설이 환경 보호뿐만 아니라 자립적 운영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자원순환의 고리, 지역이 이어야
농촌 폐비닐의 자원순환은 단순한 처리 문제가 아니다. 이는 농업의 지속가능성과 환경 보전, 나아가 공공성과 시장성을 결합한 복합과제다. 정읍 영농폐비닐 처리시설이 보여주는 변화는 그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는 중요한 단서다. 그러나 제도와 기술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 수거 단계의 정돈, 농민 참여 확대, 재활용 제품의 시장 확충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려야 한다. 환경공단 관계자는 “처리시설은 수단일 뿐, 자원순환의 주체는 지역”이라며, “지역 농민과 행정, 공단이 함께 만들어가는 구조가 되어야 지속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속가능한 농촌의 조건, 폐기물에서 시작된다
영농폐비닐은 더 이상 농촌의 골칫덩이가 아니다. 제대로 된 수거와 공정, 재활용 체계를 갖춘다면, 그것은 오히려 농촌의 지속가능성과 순환경제의 상징이 될 수 있다. 정읍의 사례는 폐기물 처리라는 작고 낡은 문제를, 기술과 제도로 해결해가는 하나의 이정표다. 농촌 환경을 지키는 일은 결국 삶의 터전을 가꾸는 일이며, 그 출발점은 우리가 무엇을 버리고, 어떻게 되살릴지를 결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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