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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간의 다리 윤달세 씨
<나카무라 상의 고창살이>
나카무라 기자 / 입력 : 2012년 05월 21일(월) 10:40
공유 :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요즘에
윤달세 씨는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한국인이다. 신문사 지국장을 오래 한 사람으로, 원래 대학의 전문역사연구가는 아니었다. 윤달세 씨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조선인 포로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여, 일본 각지를 방문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의 일이다. <4백년의 긴 길>에 수록된 기행문을 처음으로 썼던 해는 1983년의 일이라고 한다. 그 후 20년 이상 윤달세 씨는 일본 전국을 돌아다니며 조선인 포로에 관한 현지조사를 해왔다.

본인이 신문사에 있었던 시절에는 그 내용을 신문지면에 올렸다. 신문사를 퇴직한 후에는 지면에 계속 싣자는 미디어가 나타났기 때문에, 윤달세 씨의 조선인 포로기행문은 계속 세상에 소개되었다. <4백년의 긴 길>에서는 일본 서쪽의 조선인 포로를 중심으로, <속 4백년의 긴 길>에서는 효고현(兵庫県)의 동쪽인 일본 동부를 중심으로, 윤달세 씨는 조선인 포로들의 흔적을 쫓아 조사하고 기록했다.

2003년에 출판된 <4백년의 긴 길>의 후기에서 윤달세 씨가 쓴 글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는 죄 없는 많은 조선인이 일본에 잡혀왔다. 이건 바로 ‘근세의 강제연행’이지만, 포로들은 일본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만 안고 멍하게 보냈던 것이 아니다. 생각하지 못했던 운명에 시달리면서도 포로들은 일본에 정착하고, 일본의 산업·문화·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것이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사실은 확실히 존재한다. 포로들은 넓은 분야에서 일본이란 나라에 공헌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대표적인 조선인 포로 연구자로서 ‘나이토 순포’(内藤雋輔)가 있다. 그는 일본에 연행된 수만명의 포로들이 일본 각지에서 어떠한 운명을 살았는지 현장조사한 연구자이다. 그것을 정리한 것으로 <문녹·게이쵸역(文禄·慶長役)에 있어서의 포로의 연구>(1976)가 있다. 또 종군승려 경생(慶念)이 정유재란을 기록한 <조선일일기>(朝鮮日日記)를 나이토가 현대어로 번역해 세상에 널리 소개했다. 이 연구의 공적으로 그때까지 몰랐던 정유재란에 관한 애매한 부분이 많이 밝혀졌다. 나이토는 벌써 고인이지만, 윤달세 씨는 생전의 나이토와 교류했었다. 포로 연구에 관해 나이토는 더 이상 바랄 수 없는 후계자를 만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윤달세 씨가 일본 각지를 돌아 포로연구의 깊이가 깊어지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윤달세 씨가 중간역할을 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관계도 생겼다. 예를 들어 도쿄의 다카하시고레키요공원(高橋是清公園)에는 조선에서 유래된 비석이 있었다. 사라지기 직전의 글씨를 윤달세 씨가 읽어보고, 이것은 심씨의 무덤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의 심씨 족보를 조사해보니, 이 무덤의 주인은 조선 9대왕 성종(1469~1494년)의 측실(側室)인 숙용심씨(淑容沈氏)인 것으로 밝혀졌다. 2000년 6월, 이 무덤은 한국의 전주이씨 이성군파(利城君派)·영산군파(寧山君派)의 묘지에 옮겨졌다.

또한 가고시마현 타네가시마시 시장이었던 ‘이모토 마스루’(井元正流) 씨의 선조는, 정유재란 때 남원에서 잡혀온 조선인 료잠(了潜)이라고 한다. 료잠은 남원부사인 임현(任鉉)의 아이로, 시녀 두 명과 함께 일본에 잡혀왔다고 한다. 이모토 씨의 집에는 그 유래서가 남아 있었다. 이모토 씨는 죽기 전에 남원성과 조상의 묘를 방문하여 모시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윤달세 씨는 서울의 ‘풍천임씨 종친회’(豊川任氏宗親会)에 연락해서, 임현 직계 후손과 이모토 씨 식구를 만나게 했다. 이모토 씨는 남원성터도 방문하고, 긴 세월 품었던 소원을 이루었다. 이모토 씨도 지금은 돌아가셨다.

윤달세 씨는 조선인 포로의 후손과 한반도를 연결했던 것 뿐만이 아니었다. 윤달세 씨는 효고현 내의 금강사(金剛寺)라는 절에 조선의 불화(仏画)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직접 절을 방문했다. 조선 불화라고 해도 전문지식이 없는 한 당화(唐画)·송화(宋画) 등 중국 유래의 불교화와 혼동되는 것이다. 그런데 윤달세 씨가 본 그 큰 불화 밑에는 만력(萬暦) 11년(1582년) 경상도 서산사(西山寺)라고 쓰여 있었다. 주지스님에 의하면 이 불화는 아마 ‘오오무라 유코’(大村由己)라는 히데요시의 극히 가까운 부하가 절에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오오무라는 젊은 시기 이 절의 승려였다.

윤달세 씨는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스타일의 불화가 금강사에 있다는 것을 지방 신문사에 알렸다. 신문사에서는 전문학예원을 동반해서 조사했으므로 이 그림의 존재는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와 같이 윤달세 씨의 조선인 포로 조사는 개인 취미의 차원을 훨씬 넘어 버렸던 것이다.

일본에서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얼마나 조선과 일본에 큰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말해지는 것이 별로 없다. 일본인의 양심 속에 ‘히데요시는 매우 나쁜 짓을 했다’는 개념은 있어도,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나빴던 것일까에 관한 구체성이 없는 것이 보통이다. 윤달세 씨가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며, 조선인 포로들의 삶의 흔적을 밝혀내는 여행은 책을 통해 소개되었다. 이 여행기를 통해 독자에게는 지금까지 안 보였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국인들이 큰 소리로 외치는 ‘문화 약탈’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노동력으로 일본에 이주당한 조선인은 일본에서 어떻게 살았는가? 현재의 일본과 한국의 모습만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400년 전의 세계정세와 일본 및 한국의 그 당시의 모습도 보게 된다. 수만 명의 조선인 포로들이 일본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그 몰랐던 사실에 놀랐다. 열정적으로 현장을 찾는 윤달세 씨의 연구 스타일은 현재도 계속 진행 중이다. 앞으로도 윤달세 씨는 파묻힌 역사적 사실을 찾아내서 우리에게 보여주게 될 것이다. 이번 한국여행 코스에는 원래 고창이 포함되지 않았다. 윤달세 씨가 잠깐 고창에 들려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윤달세 약력> ▲1945년 일본 에히메현(愛媛県) 출생 ▲현재 효고현 코베시 거주(兵庫県神戸市) ▲도시샤 대학(同志社大学) 문학부 사회학과 졸업 ▲통일일보 코베지국장 ▲전 히메지 독쿄대학(姫路独協大学) 강사 ▲오사카경제법과대학(大阪経済法科大学) 객원연구원 ▲효고츠(兵庫津)·조선통신사를 아는 모임 대표간사.

<윤달세 저서> ▲4백년의 긴 길(리불출판) ▲속4백년의 긴 길(리틀걸리버사) ▲효고 안의 조선(공저·아카시출판) ▲행기와 도래인 문화(공저·타루출판) ▲근대의 조선과 효고(공저·아카시출판) ▲데칸쇼의 거리의 아리랑(공저·코베신문종합출판센터) ▲일본의 신문이 보도한 제주도(자료집·공역·제주사정립사업추진협의회 씀).

<편집자 주> 오는 5월18일(토) 오전 10시30분 군립도서관에서 재일한국인 윤달세 씨의 강의가 진행된다. 윤달세 씨와 연을 맺게 된 것은 나카무라 씨가 일본 고베에 있는 윤달세 씨에게 “이러한 훌륭한 책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전화를 한 것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5월 중순에 윤달세 씨는 가토기요마사 친략 코스를 따라 한국을 여행할 계획이었는데, 이런 연유로 고창에서 강연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잡을 수 있었다.


韓日の架け橋・尹達世氏 

尹達世氏は日本生まれの在日韓国人である。新聞社支局長としての経歴が長い方であり、元々大学の歴史研究家ではない。尹達世氏が秀吉の朝鮮侵略による朝鮮人捕虜に関心を持ち始め、日本各地を訪れはじめたのは1980年代のことで、「四百年の長い道」収録の紀行文を初めて書いたのも1983年のことだという。その後20年以上尹達世氏は日本全国を巡り現地を調査している。ご本人が新聞社にいる時代にはその新聞紙面に、退職後は紙面を提供したいという雑誌社の依頼が続き、途切れることなく尹達世氏の被虜人を巡る旅は続き、紀行文は世に送りだされた。「四百年の長い道」では、尹達世氏は西日本の被虜人を中心に、「続・四百年の長い道」では兵庫県以東の東日本を中心とした被虜人たちの痕跡を追っている。

 以下、2003年に出版された「四百年の長い道」のあとがきにある尹達世氏の言葉である。
朝鮮の役では多くの罪なき朝鮮人が日本に連れてこられた。まさに「近世の強制連行」であるが、かれら被虜人が漠然と異国である日本で望郷の思いを抱きつつ過ごしたのでなく、慮外の運命に翻弄されながらも定着して、日本の産業・文化・社会の発展に寄与したという知られざる史実があり、広範囲な分野で貢献した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う。

日本での代表的被虜人研究者として内藤雋輔がいる。彼は日本に連行された数万人の被擄人たちが、その後日本の各地でどのような運命を辿ったかを、実地に調査した研究者である。それをまとめたものとして「文禄・慶長役における被虜人の研究(1977)」がある。また、「朝鮮日日記」という慶長の役時の従軍僧である慶念による記録を内藤雋輔は現代語訳し広く世の中に紹介した。その研究の功績でそれまで埋もれていた慶長の役に関する不確かな部分が明らかになった。内藤雋輔はすでに故人であるが、尹達世氏は生前の内藤雋輔とも交流があった、被虜人研究において内藤雋輔はこれ以上望めないほどの後継者に出会ったのではないかと思う。

 尹達世氏が日本各地を回り被虜人研究を深めて行く過程で様々な出会いがあったようだ。尹達世氏が両者を取りもつことがなければ、築くことが出来なかった関係がいくつもできた。たとえば、東京の高橋是清公園に朝鮮由来の碑があった。薄くなった刻字を読み取り、これが沈氏の墓であるらしいと認識した尹達世氏は、韓国の族譜を調査し、この墓の主が朝鮮9代王成宗(1469~94)の側室の淑容沈氏であることを明らかにした。2000年6月、この墓は韓国の全州李氏利城君派、寧山君派の墓地に移された。

 また、鹿児島県種子島の市長であった井元正流氏の先祖は慶長の役で南原から連れてこられた朝鮮人の了潜であることが分かっている。了潜は城主任鉉の子であったが侍女二人と共に日本に連れてこられたという。井元家にはその由来書が残っている。井元氏は生きているうちに南原城を訪れたい先祖の墓に行ってみたいと願っていた。尹達世氏は韓国ソウルの豊川任氏宗親会に連絡を取り、任鉉直系の子孫と井元氏の家族を対面させる役割を担った。井元氏は南原城址も訪ね長年の念願を果たした。井元氏も今は故人である。

 尹達世氏は朝鮮捕虜の子孫と韓半島を繋いだだけではない。たとえば、兵庫県内の金剛寺というところに朝鮮の仏画があるらしいという噂を聞いた尹達世氏は直接足を運んだ。朝鮮仏画といっても専門知識のないものにとっては唐画、宋画として中国由来の仏教画とひとくくりにされるらしい。ところが尹達世氏が見た大きなその仏画の下には、萬暦11年(1582年)慶尚道西山寺と書かれていたという。住職によると、この絵はおそらく大村由己という秀吉のごく近い側近からの寄贈であるという。大村由己は若い時期この寺の僧だったそうだ。このような日本では見られないスタイルの仏画が眠っていることを地元の新聞社に一方したところ、学芸員同伴で再び調査がなされ、この絵の存在は世に広く知られるところとなった。このように尹達世氏の朝鮮捕虜調査は個人の趣味の次元を遥かに越えてしまった。

日本で「文禄・慶長の役」がどれだけ当時の朝鮮に、また日本に大きな影響を及ぼしたかについて語られることは余りない。日本人の良心の中に「秀吉は非常に悪いことをした」という観念はあっても、一体何がどう悪かったのかに関する具体性がないのが常である。朝鮮捕虜たちの生きた痕跡を洗い出す尹達世氏の旅に同乗することで、今まで見えなかったものが私たちの目に見え始める。韓国人たちが声高に叫ぶ文化略奪というのは一体なんのことなのか。労働力とし日本に移住させられた朝鮮人は日本でどう生きたのか。現在の日本と韓国の姿からはとうてい想像できない400年前の世界情勢と日本の様子も見えてくる。数万人の朝鮮人捕虜たちがその後の日本にどれだけ影響を与えたのかに関して目を開かれる思いであった。精力的に実地に赴く尹達世氏の研究スタイルは現在も継続中のようである。これからも尹達世氏の調査はどれだけ埋もれた新事実を引っ張り出して見せてくれるのか。今回の旅行コースにはもともと含まれていなかったこの高敞に尹達世氏が寄り道してくれたことを心から感謝するものである。  
 
尹達世
1945年 日本愛媛県生まれ 現在、兵庫県神戸市在住
同志社大学文学部社会学科卒
統一日報神戸支局長
元姫路独協大学非常勤講師
大阪経済法科大学客員研究員
兵庫津・朝鮮通信使を知る会 代表幹事

나카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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