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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동학농민혁명과 영학당사건
이병렬 기자 / 입력 : 2012년 02월 07일(화)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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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열 
(고창문화연구회 사무국장)

고창동학농민혁명과 영학당사건
한국 근대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을 말하라면 동학농민혁명이라 할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은 조선조 말 중세적인 체제 모순을 개혁하고, 조선조 수취 체제의 문란으로 핍박받고 있던 힘없는 백성들이, 수탈의 폐해를 혁파하고 신분 차별을 타파하여 안정된 삶을 얻고자 일어났다. 한편으로는 조선에 대한 일본의 간섭과 침략에 맞서 저지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19세기 후반 조선이 처한 체제 모순과 외압의 시대적 조건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의 변혁 운동 가운데 당시의 시대적 역사 과제를 가장 올바르게 인식하였던 변혁 운동이었다.

이러한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 11월초 공주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거의 끝났으나, 전봉준을 비롯한 농민군 지도부가 체포된 이후에도 수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항전이 이듬해 1월까지 계속되었고 1895년 7월까지도 산발적인 항전은 진행되었다. 그 후 동학농민혁명의 불이 꺼지자 우리 고창사람들은 1895년 이후의 농민혁명의 역사는 기억하기조차 싫었나 보다.


동학농민혁명의 꿈을 꾸며
1894년 동학혁명의 좌절된 꿈을 다시 꾸기 시작한 무리가 있었다. 이들은 호남의 고창, 무장, 흥덕, 고부, 장성, 영광, 함평 등지에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들은 정부의 탄압을 피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종교인 동학의 이름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정체불명의 영국 종교로 위장한다. 위장한 이 조직의 이름을 그들은 영학당(英學党)이라 하였으며, 영국인 선교사를 초빙하여 설교집회를 가지기도 하였다. 우리가 1895년 이후 동학을 잊고 있을 때, 그 후예들인 영학당은 동학농민혁명의 맥을 이어나갔다.

그들은 1898년 가을부터 일본에 대한 미곡 수출을 반대하는 등 현실문제에 관심을 표명하였다. 이 영학당의 조직 중 가장 먼저 봉기한 곳은 흥덕이었다. 흥덕의 영학당 두령 이화삼(李化三)은 1898년 12월 300여 명의 농민들을 이끌고 관아에 들어가, 민회(民會) 형식으로 농민들의 의사를 모아 군수를 내쫓았다. 흥덕에서의 영학당 봉기는 흥덕군수의 탐학에 그 원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봉기는 사흘 뒤 광주(光州)에서 파견된 관군에 의해 진압되고, 두령 이화삼 등은 체포되었다. 이화삼이 붙잡힌 뒤 영학당은 1899년 5월 4일 흥덕에서 호남공동대회(湖南共同大會)를 열고 이화삼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화삼은 석방되지 않고, 5월 27일 광주로 극비리에 이송되었다.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된 영학당 농민 400여 명은 그날 밤 고부에서 봉기하여 고부군아를 점령하고 무기를 탈취하였다. 그런 다음 그들은 ‘보국안민(輔國安民)’과 ‘척왜양(斥倭洋)’을 위하여 봉기하였음을 방문을 통하여 천명하였다. 이들은 이어 흥덕과 무장의 관아를 습격하여 점령하였다.


영학당들, 부안 알뫼장터에서 몰살당하다
영학당은 고창읍성을 점령하고 난 후 영암의 민란을 지원하고자 하였다. 그 후 광주와 전주를 돌아 호남의 각지를 돌며 세를 불려 서울로 올라갈 계획이었다. 이들의 꿈은 5월 31일 고창관아 점령 실패로 무너지고 말았다. 영학당은 고창읍성을 새벽3시까지 치열하게 공격하였다. 그러나 비가 억수같이 내리자 이들은 주무기인 화승총을 쏠 수가 없어 고창읍성 점령을 포기하고, 알뫼장터(부안 난산)로 도망갔다. 이들은 알뫼장에서 재정비하려고 했으나, 일본군이 끝까지 따라와 포위한 뒤 공격하였다. 영학당은 재정비할 틈도 없이 알뫼장터에서 거의 몰살당하였다. 이 전투의 패배로 잔존 세력은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영학당의 봉기는 1894년의 동학농민군 봉기를 계승한 농민들의 반침략·반봉건운동이었다. 영학당은 5월 31일 고창읍성 공격에 실패하자 해산되고 말았다.


흥덕장터과 알뫼장터에 영학당 기념비를 군민의 이름으로 세우자
고창군은 지금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하여 많은 사업들을 하고 있다. 고창사람들은 동학이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으나 이야기꺼리가 없다고 말한다. 정말로 그럴까? 없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내 자신이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동학혁명의 꿈이 무너지고, 그 후예들이 흥덕장터에서 이화삼을 중심으로 다시 꿈을 꾸며 봉기를 하였으며, 알뫼장터은 이들의 꿈이 좌절되었던 곳이다. 영학당 사건의 시작이 흥덕이고, 그 끝은 알뫼장터였다. 고창은 알면 알수록 서글픈 곳이다. 고창의 힘없는 백성들은 늘 부조리와 타협하지 않고 맞서 자신의 목숨을 과감히 버렸다. 지금이라도 이곳에 이들을 기리는 기념비라도 세우고, 동학혁명의 후예로서 당당히 자랑하고 드러내 놓았으면 좋겠다.

이병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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