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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갑장터에 얽힌 교육정신과 그 계승에 관한 소고
연정 기자 / 입력 : 2010년 09월 06일(월) 11:12
공유 :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요즘에

   

연정 김경식
연정교육문화
연구소장

 지난 8월 27일 고창문화연구회가 <순교자 최여겸과 개갑장터>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주최했다. 4가지 논문 발표가 있었는데, 백원철 교수, 김진소 신부, 그리고 최영준 교수의 발표를 들으면서 필자는 안개가 막 걷힌 후의 청산을 보는 듯 했다.

 다만 순교지 개갑장터를 개발의 대상으로 보며, 관광개발과 연계시켜 관광활성화 방안을 제시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대하는 의견들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본질을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 퍽 아쉽게 생각한다.

 요즘 세태를 보면 정신사적인 것의 발굴마저도 산업이라든지 물질적인 개발의 대상과 같이 보고 있다. 그리고 개발하면 의례 관광개발을, 관광개발하면 체험이니 체험학습을 이야기하고, 관광산업을 통해 결국 지역경제 활성화로 수입만을 생각하는 경우가 일반화되어 있으니 참으로 딱할 노릇이다. 일에는 본말이 있고, 선후가 있는 법이다. 개갑장터는 성지화의 문제이지 관광산업 개발은 아니다. 필자는 정신·교육사적 의미에서 개갑장터에 접근해, 몇 가지 제언코자 한다.

 한국 근세·근대사에 있어, 우리 고장은 근세인 5백년 전 김질의 12년간 시묘와 근대인 2백년 전 최여겸의 순교라는 하나의 획을 긋는 사건이 있었다. 이것은 우리고장 공음면 갑촌 출신의 양반계층에서 있었던 일로, 개갑장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것은 개갑장터가 김질의 효행에 감탄한 당시 무장현감이 효행의 편의를 위해 개설한 장터이며, 최여겸은 그 장터에서 순교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개갑장터에 얽힌 정신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김질의 경우와 최여겸의 경우로 나눠 접근하고자 한다.

 김질(金質, 서기 1496~1561년)은 출천지효(出天之孝)로 이름난 분이다. 그 효행과 관련해, 어머니 3년 시묘살이에 감탄한 동네사람들은 시묘하던 산을 제청산(祭廳山), 그 분의 집을 영모(永慕)라 부르는 등의 많은 설화가 있다. 이 설화의 공통점은 상제(喪祭)에 대한 그 분의 정신적 자세이다. 왜 유독 사후 조·부모의 상제에 대한 설화만이 행장과 묘표에서 강조되고 있을까.

 그것은 당시 성리학적 질서가 지배적이던 사회에서 통과의례 중 제일 중요시했던 것이 상제(喪祭)였고, 상(喪)의 문제로 송시열도 결국 사약을 받았다는 사례가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김질의 효행은 중국 청나라 왕도 감탄했음은 공음면 소재 김질을 배향한 도암사(道巖祠)를 방문해보면 금새 알 수 있다.

 김질의 효행은 그 당시 어떤 위치에 있었을까. 동양 유교권에서 효(孝)는 백행지본(百行之本)으로 윤리사상의 기본으로 보았다. 이점은 유교(儒敎)를 이념으로 하는 조선조에 있어서는 당연한 논리였고 또한 그것은 당시의 기본적인 시대정신이었다. 따라서 그 분은 효라는 시대정신의 구현에 철저했다고 할 수 있다. 인격체인 나를 낳아준 부모에게 효를 행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 아닌가. 김질의 실천은 당시 기본윤리이자 시대정신으로서의 모범으로, 교화(敎化)의 모델이었고 그 교화의 범위는 인근에서부터 당시 현감에게까지 이르렀음을 이해할 수 있다.

 순교자 최여겸(崔汝謙, 서기 1767~1801년)은 25세 때 유항검(柳恒儉)에게 세례를 받고, 윤지충(尹持忠)을 찾아가 부족한 교리를 배웠다. 이후 무장, 영광, 함평, 흥덕 등지에서 활발히 복음을 전했고, 신유박해 때 관아에 잡혀 갖은 고문 속에서도 천주교의 교리를 굽히지 않았다. 더욱이 판관의 취조과정에서 당시 양반과 관직에 오른 자들의 수탈행위와 호색(好色)에 빠진 축첩 행위를 거침없이 비판했다. 결국 서기 1801년 7월 19일 개갑장터에서 장꾼들이 보는 가운데 참수형으로 순교하니, 그 때 나이 39세였다. 우리는 그 분의 교육정신을 귀납하기 위해 당시의 사상사적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최여겸이 생존한 시대는 우선 성리학(性理學) 일변도의 사상흐름에 변화가 일어나 성리학의 공리공담성, 민생문제와의 무관성, 그리고 주자가례(朱子家禮)적인 허위허식에 대한 비판이 지식인들 사이에 상당히 전개되던 때였다. 그 대안으로 실학(實學)이 제시되었는데, 이것은 성리학의 세계관을 부정하고 원시유학(原始儒學)으로 돌아가자는 것으로 경세치용(經世致用),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용학문을 말한다. 당시 실학자들이 서학(西學), 즉 천주교의 교리에 접근하고, 천주교에 귀의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천주교의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롭다는 사상과 그에 터한 사회제도의 개혁에 동의했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당시 천주교를 신앙하고, 스스로의 종교를 위해 순교한 것은 그 당시로는 전통에 대한 도전이며, 인간존엄에 터한 자유와 평등, 사회변혁을 위한 사상의 전파요 실천이라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최여겸은 당시 성리학 일변도의 상황에서, 천주교를 통해 인간의 평등과 자유에 터한 인간의 존엄사상을 서해안 지역에 뿌리를 내리게 한 각성의 인도자이며, 위대한 민중교육실천가로 재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김질의 효행과 연유해서 개설되고, 최여겸이 순교한 고창군 향토문화유산 제1호인 개갑장터를 최근 고창군은 전국적인 성지로 개발하기 위해 개발 타당성 조사와 기본 정비계획을 완료하고, 본격적인 성지개발을 위해 실시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학술발표회 격려사를 통해 밝히고 있다. 나아가 탐방객 편익제공을 위한 주차장 조성 등 기반시설과 년차별 정비계획에 의거해 복원할 계획이며, 무장읍성과 동학농민혁명 발상지, 청보리 밭을 연계하는 역사·문화 관광권으로 형성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고창군의 성지개발과 문화유산 연계 계획을 알 수 있는데, 우선 문화유산 개발에 관심을 갖고 있는 고창군에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개갑장터를 성지화해 다른 문화유적과 연계한 역사·문화 관광권을 형성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자는 것은, 문화유적 개발을 지역경제 활성화의 종속 변수로 보는 것은 잘못 본 것 같다. 또 1년에 많아야 1개월 남짓 볼 수 있는 청보리 밭과 같은 경관농업을 연계하자는 발상은 본질을 떠난 접근인 것 같다. 또한 학술 발표 때 나종우 교수의 논문 ‘순교지 개갑장터 개발과 고창지역 관광활성화 방향’에서 개갑장터의 개발방향과 그 전략이 소략하게 언급돼, 제목에서처럼 개발의 방향과 개발전략을 기대했던 필자로서는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컸다.

 필자는 개갑장터의 개발 방향은 무엇보다도 정신·문화적 배경하에 성역화하는데 그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광객 유치와 편의시설물 등도 염두에 두어야겠지만, 후차적·부수적이며,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성역화의 기초하에서 다음과 같은 2개의 개발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첫째는 18세기 사상적·사회적 변혁의 과도기에, 인간존엄·자유평등 사상을 천주교 신앙을 통해 민중에게 계몽했던 최여겸 순교자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창성당 주도하에 수녀 수련원, 신부 수련원 같은 기구를 개갑장터에 설치해 천주교 관계자들의 수련을 유인하고, 나아가 전국 천주교와 연계해 성지순례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둘째는 개갑장터의 설치를 연유했던 김질의 효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가칭 수련원을 설치해 우선 관내 초·중·고생은 교육청과 연계하고, 일반인은 각종단체와 연계해 효를 중심으로 한 윤리적인 사회교육을 진행해 김질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다.

 문화유적은 유적끼리, 관광산업은 관광산업끼리 연계해야 한다. 개갑장터의 성역화는 예를 들어 선운사와 연계한다든지, 또는 백관수의 사상을 계승하는 어떤 연구소를 그분의 생가에 설립해 활용하는 것도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논외이기는 하지만, 백관수를 거론하는 것은 생가만 겨우 도문화재로 지정했지 그분의 사상을 계승할 장치하나 못 챙기고 있는 것이 우리 고창의 상황이지 않나. 백관수는 동경 유학생 ‘2·8 독립선언서’를 기초해 독립선언을 주도했음은 물론, 그가 기초한 독립선언서는 최남선이 ‘3·1 독립선언서’를 기초할 때 기초적인 참고자료가 되었다.

 성리학 세계에서 김질의 효의 실천, 최여겸의 인간존엄·자유·평등의 민중교육, 백관수의 자주독립을 위한 노력, 모두가 각각 당시의 시대정신을 실현하려 했던 인물임을 재인식해야 할 것이다.

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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