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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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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에서만 40년을 살다가 고창 부안면으로 이사 와서 농부로 직업을 바꿔서 산 지 6년째입니다. 처음 해보는 농사일이라 힘들고 아파도 참아내면 힘도 붙고 근육도 튼튼해지리라 생각했는데 손목, 허리, 무릎들을 다쳤어요. 농사가 많은 것도 아닌데, 30년은 이 몸 가지고 농부로 살아야 하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도시에서의 산다는 게 이렇게 나약한 몸뚱이를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농촌에서 산다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연고도 없는 이곳 고창으로 갑작스럽게 이사 온 첫날 밤 혼자 밖에 나와 올려다 본 겨울 밤하늘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섣달그믐날 까만 하늘 은하수를 신기하게 쳐다보며 경험 못해본 농촌에서 농부로 산다는 것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 결심을 실천했다는 자부심, 가족들에 대한 걱정들이 차가우면서도 시원하게 느껴졌던 그 겨울 밤공기와 함께 각인된 듯합니다.
경쟁에서 쳐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며 때론 비겁하게, 때론 가면도 쓰고 위선도 떨며 나와 가족만을 챙기는데 급급해 하며 그렇게 사는 제가 창피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성공한 사람으로서 살고 싶었던 마음이, 그 생활들이 어느 순간 저와 가족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본주의 구조 틀 안에서 한 구성원으로서 충성하며 산다는 게 즐겁지도 않았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과 여유를 다 뺏어 간다고 느꼈거든요.
그러면서 나와 가족들이 맘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 하게 됐었는데요,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귀농을 생각해냈기 때문이지요. 자연과 함께 농부로 산다면 가족과 항상 먹고 자고 일 할 수도 있고 아이들은 가장 빛나고 예쁜 시절을 공부에 시달리지 않고 살아도 되니 이보다 더 좋은 대안이 없겠다 싶었어요. 수입이 적으면 생활비를 줄이면 될 것이고요. 그렇게 마음먹고 귀농학교도 다니며 이사 갈 곳을 찾다가 우연하게 고창으로 이사 오게 됐어요.
농사는 벼와 복분자, 오디, 고추, 감자 등이 주 작목이고 대부분을 직거래로 팔고 있으니 수확량이 적어도 수익은 괜찮은 편인데 그래도 간신히 생활비정도 버는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맨 처음 어떻게 먹고살까 걱정할 때와 비교하면 대만족인데요, 그런데 자꾸 욕심이 생기더군요. 더 많은 수확을 얻고 싶고, 더 좋은 값을 받고 싶고, 몸은 더 편해지고 싶은 거예요.
귀농해서 처음 몇 해는 농사교육도 열심히 받으면서 친환경농사를 지으려고 애 썼지만 요즘에는 밭에 농약도 조금 합니다. 제초제는 아직도 못하는데요, 앞으로도 안 하려고요. 먹고 사는 문제는 별개 아닌 것 같은데 아이들이 앞으로 제법 공부를 잘 해서 대학을 가겠다고 한다면 돈을 아주 많이 벌어야겠는데 지금처럼 농사지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게다가 매년 이상기온으로 농사는 점점 더 어려워지기만 하구요. 사람 사는 게 어디나 다 좋은 것만 있을 수는 없다 해도 부담스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거지요.
마을에 젊은 사람이 부족하다보니 등 떠밀려 이장 직을 3년째 하고 있어요. 어떤 분이 이장 하고나면 사람 속을 다 보게 되는데 상처받지 말라고 조언을 해 줬어요. 여지껏 마을에 들어와 살면서 무수히 도움 받고 살아온지라 항상 좋은 마음으로 마을 일을 해야지 다짐을 해 봅니다만 때론 섭섭하고 귀찮아하고 짜증 날 때도 생기네요.
그렇게 이장 일로, 작목반 총무 일로, 학교운영위원 일로 고창의 여러 모습들을 볼 기회가 생기는데요, 특히 선거와 관련해서는 어떤 선거든 제 마음이 불편 한 거예요. 도시 살 때는 우리식구 챙기느라 주위에 관심도 없이 살았지만 여기서는 정치가 곧 생활처럼 너무 가까워요. 농촌이 다양한 생활모습이나 자조자립 능력이 부족하다보니 더 힘을 가진 쪽으로 해바라기를 하게 되는 것이란 생각도 하게 됩니다만 이제 농촌도 도시처럼 돈과 권력을 찾아가느라 윤리의식이나 자연과 함께하는 여유로움, 공동체의 즐거움들을 많이 잃어버린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들로 마음이 복잡할 때 사람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해피데이고창’신문사에서 부탁도 있었지만 저처럼 도시를 떠나 고창으로 귀농한 이웃들을 만나서 같이 고민하며 생활나누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귀농이라는 것은 단순히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사 와서 농사로 경제적인 부를 거두리란 마음이 아닌 정신적인 풍요로움과 건강을 얻고자 자연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거든요. 그런 마음이라면 굳이 농부가 아니어도 귀농이라 할 수 있겠고요.
앞으로 격주로 고창으로 이주해서 ‘다시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을 만나는 글을 쓰게 됩니다. 이 분들의 사는 모습을 통해 귀농인들의 현재와 다양한 삶의 태도, 이주민의 시선으로 본 고창의 모습들, 더 행복하게 사는 방법들을 독자분들과 같이 공감하고 고민하는 꼭지가 되기를 희망해봅니다.
멋진 분들 소개도 해 주시고 제가 뵙자고 청할 때는 흔쾌히 허락해 주시길 바래봅니다.
김동환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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