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서 이어온 여성들의 규범과 행동을 모두 막연하게 보수적이라는 굴레만 씌우지 말고, 정당한 비판을 통해 오늘날의 여성교육에 이바지할 수 있는 점을 계승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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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정 김경식 연정교육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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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나 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우선 가정 속에서의 어머니의 눈은 곧 바로 보는 눈이요, 그리고 그 자녀의 성장을 바르게 지켜보는 눈이어야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성장하여 사회화 과정에 들어갔을 때, 사회를 보는 눈도 자신의 눈이 아닌 그 가정의 눈을 통해 이해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자녀의 교육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어머니의 정성된 힘이 더 크다.
실학자 이덕무(李德懋: 서기 1741~1791)의 「사소절」에는 출생 후의 육아법에 대해 “부인의 음덕은 자녀들이 잘 자라게 하는데 있다”고 하고는 “바늘을 옷깃에 꽂지 말며, 젖꼭지를 물어 아이를 재우지 말고, 눕힐 때는 반드시 베개를 바로 하고, 음식 먹일 때에 소리질러 웃지 말고, 아침 먹기 전에 낯을 씻어 주라”고 타이르고 있다. 「예기」내칙(內則)편에는 유아 및 아동기의 교육방침에 대해 정자(程子)의 말을 인용하기를 “자식을 낳아서 그가 능히 스스로 밥을 먹을 줄 알거나, 능히 말할 줄 알게 되면, 곧 그를 교육시키되 「소학」의 법도를 가르치고 선인(先人)들의 어렸을 때 일을 미리 알도록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녀가 공부 잘하고, 또 남에게 뒤지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보다는 전통사회의 우리 어머니들이 자녀들에게 행한 교육처럼 ‘인간적인’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들의 자녀에 대한 교육적인 신념은 “꽃이 되기보다는 꽃을 키우는 일을 하겠다”는 자애로운 사랑 그것이었다.
자녀교육에 임하는 어머니의 태도에 대해 「사소절」은 “옛부터 부인으로서 현숙한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정자(程子)의 어머니 모후부인(母侯夫人)은 배울 만하다. 정자가 말하기를, 선공(先公)께서는 그 내조예경(內助禮敬)이 이 부인에게 있어 지극하다고 보았다고 한다. 겸손하고 어린이를 키우는데 있어 사랑으로 하여 조금도 차별을 두지 않았다. 회초리로 때리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어린 종을 보기를 어린 딸이나 자식과 같이 여겼던 것이다. 혹 책망을 하고 타이를 때는 네가 이렇게 큰데도 이 일을 해내지 못 하느냐고 말하였다”고 한다.
또한 자녀를 가르칠 몸가짐 태도로 “말을 수다하게 하지 말고, 실없는 농담을 하지 말고, 좋고 그른 것을 밝히어 물들지 않게 하고, 다른 일 때문에 생긴 화를 자녀에게 풀지 말고, 둔한 아이일수록 십분 참고 용서하라”고 하였다.
조선시대 여성들이 그 어려운 유교적 도덕과 가정환경 속에서도, 일단 어머니가 되는 순간부터 현모로서의 몸가짐을 바로 잡으며, 자녀 교육에 헌신한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이를테면 이퇴계, 이율곡, 한석봉, 이항복 등의 어머니는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들은 모두 자녀를 기르는데 전심전력하여, 그야말로 현모로서의 할 일을 다 했던 것이다.
그런데 20여년 전의 일이지만 조선시대 여성교육이 지금도 필요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성신여대 가정관리학과 이영미 교수가 발표한 박사학위 논문 「조선조 여성의 가정교육에 대한 현대적 재조명」이 그것이다. 이 논문에 따르면 서울에 거주하고 자녀가 있는 주부 43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대의 가정에서도 조선조 여성교육 내용의 실천정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영미 교수는 조선조의 교육내용을 ‘수신(守身), 부부의 도, 효친(孝親), 형제· 친척간의 돈목, 자녀교육, 가사, 봉제사(奉祭祀: 조상의 제사를 받들어 모심), 가계 운영, 손님 접대’ 등 9개 항목으로 나눠, 각 항목당 25점 만점으로 의식과 실천정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의식구조의 계승에 있어 ‘자녀교육’이 22.2점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다음은 형제·친척간의 돈목(22점), 가사(21점), 가계 운영(20점)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자녀교육’에 대한 점수가 높은데서 보듯, 부모는 자녀가 좋은 교육을 받아 훌륭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며, 자녀교육에 대한 어머니의 구실이 강조되는 것도 시대를 초월하여 변함이 없다. 사실 그들이 부덕(婦德)·부용(婦容)·부언(婦言)·부공(婦工)을 중심으로 전개한 가정의 이상과 가풍, 온화한 지조와 성실성, 몸가짐과 말씨에 대한 태도, 그리고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의 부도(婦道)를 길러나간 점, 또 그들의 정조관, 가사 기술과 근검·절약의 생활 태도 등은 현대적인 개념에서 재음미되어야 할 것이다.
간혹 우리들 주변에서 이러한 전통적 관행에 대하여 화살을 겨눈다는 것은, 이는 우리나라 여성들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개념을 잘못 대칭시킨 것에서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전통사회의 여성들은 대가족을 거느리면서 가정의 종부(宗婦)로서 중심적 역할을 다 했다. 그럼에도 오늘의 핵가족 혹은 도시가족의 경우, 여성들이 해야 할 조그마한 일조차 거의 가정부가 대행하고 있으니, 사실상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전통적 여성에 비해 현대 여성은 핵가족이라는 좁은 범위 내에서 점차 왜소화되어 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오늘의 우리는 과거에서 이어온 여성들의 규범과 행동을 모두 막연하게 보수적이라는 굴레를 씌우지 말고 정당한 비판을 통해, 오늘날의 여성교육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점을 계승해야 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여성이면 누구나 ‘부도(婦道)’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길도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한 집안의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세 가지 짐을 짊어지고, 그것을 잘 해결해 나갈 때, 부덕 있는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부도의 실체이고, 그 대표적 여성이 신사임당 등이다.
현대적인 개념에서 부도(婦道)는 우선 편안하고 번창해 나가는 가정을 이끄는 것과 더불어, 사회의 여러 면에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사회참여의 면까지 고려하여 정립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여성의 인간화 문제와 한국여성이 지니는 이름다운 개성과 특성을 살리면서, 사회참여와 더불어 세계화의 시대를 살기 위한 인간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여성들의 방과 그 뜰은 넓어졌다. 거울 앞에서만 자신의 얼굴을 보고 행복을 찾던 시대는 지나갔다. 앉아 있던 여성들은 서고, 서 있던 여성들은 걷는다. 열려진 사회가 온 까닭이다. 열려진 사회일수록 한국여성이 지닌 아름다운 개성과 특성을 살려야 할 것이다. 물론 조선시대는 남자 중심의 사회였다. 그러나 우리는 기나긴 역사를 이끌어 나온 훌륭한 인물 뒤에는 반드시 훌륭한 어머니 혹은 아내들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음을 발견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여성들이 간접적으로 이끌어 왔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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