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공포됐음에도 여전히 위상의 혼란을 겪고 있는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잇따라 열렸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과 한국근현대사학회는 지난 11월 21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역사교과서의 동학농민혁명 서술,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박맹수 원광대 교수는, 특별법이 공포되면서 ‘혁명’으로 인정받았지만, 아직도 역사교과서 서술에는 ‘동학농민운동’으로 기술돼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박 교수는 “동학농민혁명은 한국근대사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근현대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혁명”이라고 밝혔다. 이어 “혁명은 고대 시기부터 존재했던 개념이며 그 기준은 안민(安民)을 근간으로 하늘의 명을 이행하는 민본주의적 사상에 있다”면서 “동학농민혁명은 폐정개혁으로 정치혁명을, 토지균분 등으로 경제혁명을, 신분제 해체로 사회혁명을 하고자 했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양식 충북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역사 교과서의 기술이 상당 부분 오류가 있음을 밝히면서 전반적으로 동학농민혁명의 혁명성을 서술하는 부분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김 소장은 “중·고교 국사교과서를 비롯한 14종의 교과서 내용 중 혁명 전개과정, 동학군과 정부 간 전주화약 내용, 전봉준 장군 사진 등이 잘못됐고 혁명에 관한 자료·사료를 교과서에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김개남·손화중·최시형 등이 항일연합전선을 구축해 전국적으로 격전을 벌인 만큼, 혁명이 전라·충청뿐 아니라 경상·강원·황해도까지 확장됐다고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교과서 대부분에 실린 ‘전봉준 사진’은 압송 장면이 아니라, 1895년 촬영된 ‘수감사진’이며, 전주화약 내용에 신분제 폐지와 외국군대 철병 요구는 없다고 지적했다.
전북사학회도 지난 11월 1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동학농민혁명 성격규명과 기념사업’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특별법 제정 이후에도, 동학농민혁명의 국가기념일 제정이, 혁명의 의의에 관한 학문적 대립과 관계 지방자치단체들 간의 미묘한 갈등으로 표류하는 현실에서,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하는 자리였다.
참가자들은 각각 고부기포, 무장기포, 백산대회, 황토현전투 등 동학농민혁명 전개 과정에서 중요하게 벌어진 사건의 역사적 의의를 살펴보고, 각각이 기념일로 제정돼야 하는 이유를 밝혔다. 전북대 이용재 교수는 “프랑스혁명 기념일도 혁명 한 세기가 지나서야 바스티유 요새 함락일인 7월14일로 결정됐다”며 “숱한 논쟁이 벌어지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합의된 역사상이 도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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