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책읽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누구든 자신과 세상 사이 관계맺기를 튼실하게 만드는 소리이다. 해피데이고창은 고창책마을과 함께 책과 독서의 공간을 찾아, 책·사람·책읽는 공간의 이야기를 지상 중계한다.
<편집자> 책읽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누구든 자신과 세상 사이 관계맺기를 튼실하게 만드는 소리이다. 해피데이고창은 고창책마을과 함께 책과 독서의 공간을 찾아, 책·사람·책읽는 공간의 이야기를 지상 중계한다.
“동호바다는 선 몇 개가 가지런한 바다.” <닥터 노먼베쑨>(실천문학사)을 번역한 천희상 선생과 술자리에서 얻어들은 소리다. 그 한마디에 그와 마음을 틀 수 있었다. 서울대 사범대 1학년 여름, 무장면이 고향인 동기와 함께 무전여행 식으로 찾은 고창의 동호바다를, 그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선분 몇 개인 바다. 무릎을 쳤다. 나는 알고 있었다. 하늘과 낮게 맞닿은 한줄기 수평선과 먼 바다의 차갑고 맑은 푸른 선, 개펄 흙을 훑고 오느라 먹먹하게 몸이 불은 검은 선, 그것이 동호바다의 명징한 ‘선’이었다. 그 ‘몇 개의 선’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동호초등학교 학교도서관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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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연 교장 |
‘1940년 5월 22일 동호공립심상소학교 설립 인가’를 시작으로 학교의 역사가 쓰여졌다. 올해 재학생은 34명. 다음날 학교 운동회를 준비하느라 분위기가 살짝 ‘뜬’ 학교 운동장을 건너, 학교도서관은 교사(校舍) 끝 고즈넉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고창에 몇 안남은 리단위 학교의 위태(危殆)가 슬쩍 엿보였지만, 시원시원 선 굵은 도서관 담당 지연희 선생님을 만나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학교 장서는 통틀어 4000여권이에요. 가급적이면 학급문고로 쓸 수 있게 교실에 책을 많이 배치해두고 있구요. ‘사제동행 독서프로그램’ 같이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책을 권하고 읽는 프로그램을 열심히 운영하고 있어요.”
작은 학교, 적은 장서임에 틀림없다. 그 한계 안에서 최대한 학생들이 책과 만나는 시간을 늘려주려는 노력이 보인다. 선 굵은 그는 올해 스물일곱, 그러나 작년 9월 첫 발령 온 새내기 선생님이다. 철원군 갈말읍이 고향, 멀기도 멀어서 한달에 한번꼴로 고향을 찾는 신세니, 보통의 주말엔 학교도서관에서 바코드 정리, 장서 정리하며 책과 씨름하기 일쑤다. 무용담처럼 반듯한 목소리로 주말 도서관 이야기를 하는데, 말 끝에 아무도 모르는 고단함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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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담당 지연희 교사 |
“우리 동호초등학교의 세 개 역점사업은 ‘알찬 교과학력 다지기’ ‘실력과 인성을 갖춘 인재 양성 프로그램 운영’ ‘독서 생활화를 통한 자기주도적 학습력 향상’입니다.” 다부진 이정연 교장선생님 목소리다. 역점 사업 가운데 하나인 ‘독서 생활화’는, 학부모 간담회든 운영위원회든 틈만 나면 강조하는 ‘신조’같은 것이다. 그가 손에 꼽는 몇몇 위인들의 사례를 차치하고라도, 독서는 작은학교의 여러 가지 좋지 않은 학습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동호초등학교에서는 매일아침독서 시간과 함께 개인별 독서통장을 구입해 나눠주고 기록하고 있다. 또 작년부터 학교 홈페이지 안에 한줄독후감(어린이마당)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6학년을 대상으로 독서토론동아리 활동도 시작했다.
“아무래도 장서가 부족해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싶어하는 우리 친구들의 독서식탐을 다 만족시키지 못해서 안타까워요.”
할 일이 많은 지연희 선생님은 욕심도 많다. 그의 욕심이 다 채워지는 도서관이 되기를 바란다. 총 4000권 장서에서 느낀 어떤 위태가 그와 헤어지자 다시 엄습한다. 약효가 다한 것. 그 약효를 이어가는 것은 결국 지역의 교육 테두리에 있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작은학교의 힘은 그래도 독서’라는 교장선생님의 말씀, 여운이 길다.
ㅣ동호초등학교 건진 이 책 ㅣ
<마시멜로 이야기>(21세기북스) :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고사성어처럼 우리 어린이들에게 지금 조금 참고 기다리면 나중에 훨씬 멋진 기회와 결실이 온다는 이야기를 쉽게 풀어 전해주는 책, 이정연 교장선생님 추천.
<엄마를 부탁해>(창비) : ‘저도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니, 아무래도 엄마, 엄마 생각이 많이 나요.’ 말은 그렇게 나이 탓으로 돌리지만 늘 붙어살다시피 하다 천리길 이렇게 먼 전라도 땅에 떨어져 살고 있으니 자연 간절하게 되는 것. 아무렴 미국에서까지 베스트셀러를 구가중인 신경숙의 화제작, 도서관담당 지연희 선생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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