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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학교’, ‘학교가 마을’인 가평초등학교 학교 도서관
고창(高唱), 책읽는 소리를 찾아 ④
이대건(고창책마을 기자 / 입력 : 2012년 09월 17일(월)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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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누구든 자신과 세상 사이 관계맺기를 튼실하게 만드는 소리이다. 해피데이고창은 고창책마을과 함께 책과 독서의 공간을 찾아, 책·사람·책읽는 공간의 이야기를 지상 중계한다.

   
▲ 우리가 이 도서관의 주인이예요.

고창에서 제일 작은학교, 제일 큰 도서관 | 장마 예보가 말로만 한창이었다. 여전히 쨍한 하늘 아래 가평 뜰은, 긴 가뭄 끝 단비 맞을 채비로 분주하다. 그 뜰 한 켠, 아름드리 느티나무 몇 그루가 학교 운동장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1955년 4월 1일 신림국민학교 가평분교로 개교한 가평초등학교는 품 넓은 나무에 둘러싸여 푸르고 푸근하다. 학교 뒤편 세월이 켜켜로 쌓은 돌담길로 이어지는 마을이, 바로 고색창연마을이다. 돌에 묵은 이끼들도 한 방울 비 맛이 그리워 목이 탄다. 목이 타는 것은 비단 돌담 돌에 낀 이끼뿐이 아니다. 가평초등학교 열여덟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 고광욱 교장선생님
가평초는 고창에서 가장 작은 학교다. 그 탓인지 그 덕분인지 1989년에 벽지학교로 지정되었다. “그래서 오히려 좋은 선생님들이 오시는 학교죠.” 고광욱 교장의 논리다. 근무평점에 가산점이 주어지니, 경쟁에 통과한 선생님들이 오는 학교라는 것이다. 그렇게 의욕 있는 선생님들을 어떻게 학교에 집중하게 할까, 고 교장은 평점 얻기 위해 ‘찍고 가는’ 벽지학교가 아니라 뭔가 선생님들 스스로 성과를 만드는 학교가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해법은 학교의 여러 공모사업에 기획안을 만들어 응모하게 하는 것이다. 적중(適中). 그렇게 공식 학교 예산대신 외부에서 들여온 예산만 3900여만원. 1100여만원에 달하는 도서관 현대화사업도 그 가운데 하나다.

재미있는 학교, 재미있는 도서관, 재미있는… | 도서관 사업 기획부터 진행을 도맡은 이가 김수영 교무부장이다. 2학기부터 아이들과 만나게 될 새로운 도서관은 어떤가요? 말 떨어지기 무섭게 ‘우리 학생들이 재미있게 책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재미있게’다.

그래서 인테리어공사 세부 사항 안에 2층 침대 열람대를 넣었다. 일종의 독서놀이터다. “우리는 모두 2층 침대에 대한 환상이 있잖아요.” 맞다. 어른들에게 ‘어떤’ 로망이 있듯 어린이들에게도 로망이 있다. 침대다, 게다가 2층이면 금상첨화다. 2층 침대에서 읽는 책 맛이 기가 막힐 것이다.

김수영 부장은 지금은 사라진 고창 도산초등학교 출신이다. 지금 여기 ‘없는’ 학교라는 모교에 대한 아쉽고 서운한 감정이, ‘혹시’ 사라질지 모르는, 그래서 더욱 지금 여기 ‘있는’ 학교에 더 깊은 정을 쏟게 만들고 있다. 그 학교가 바로 가평초등학교다. 그의 고창고등학교 1학년 시절 이야기이다. 가끔씩 학교 도서관 대신, 교육청 뒤 공공도서관에서 공부하곤 했단다. 공부하는 짬에 우리나라 현대사를 소설로 지어낸 장편의 첫 권을 우연찮게 접하게 된다. 그리고 내처 열권짜리 장편의 전부를 읽고 만다. 그 뿐 아니었다. 우리 현대사에 대한 책을 여러 권 빌려 읽고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지평이 넓어지고 있었다. “재미있어서예요. 첫 권 첫머리에서 저를 확 잡아끌었죠. 우리나라에 대한 묘사, 당시 시대에 대한 접근이었어요.” 그 전까지 한 번도 그런 경험이 없었단다.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어떤 전환이었다. 그 전환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변하게 하는 것도, 아이들의 가정과 마을이 변하게 하는 것도 ‘재미’였다. 그 훌륭한 성과가 온 마을사람들이 함께하는 효도캠프다. 하룻밤을 학교에서 묵고 밥도 같이 지어먹는 캠프다. 졸업생까지 130여 명이 참여했으니, 그야말로 마을 잔치가 따로 없었다.

   
▲ 김수영 교무부장
작은학교를 넘는 딱 두 가지 대안, 책읽는 습관과 학교 밖 체험 |
“우리 학교 일과는 운동장에서 도서관으로, 그리고 나서야 교실로 이어져요.” 등교하던 꼴로 운동장에서 줄넘기, 이어서 도서관으로다. 수업시작 전까지 책을 읽기 위해서다. 고광욱 교장은 하루걸러 하루 꼴로는 도서관에서 같이 지낸다. 책을 진지하게 많이 읽는 친구들에게는 따로 점수를 매긴다. 그리고 이번 학기를 마무리하면서 작은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탁상용 선풍기다(아이들에게 밝히면 안 되는 내용인데, 세대별로 빠지지 않고 한 대씩은 돌아가도록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아이들 가까이에서 깊이 챙기는 이유는 ‘습관’ 때문이다. 아이들이 독서습관을 몸에 배게 도우려는 것이다. ‘내 유년기에 조금 더 많은 책이 내 주변에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 탓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가 책 읽어주기 자격증 수여다. 고학년을 대상으로 일정한 과정을 거치면 인증서를 주고, 저학년이나 유치원 동생들에게 책 읽어주게 하고 졸업에 맞춰 시상할 계획이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친구들이 도서관에서 책을 끼고 놀기에 여념 없다. 선생님 몇 분이 아이들을 달래 교실로 돌아간다. 수업 시작이다. 작은학교 무용론(無用論)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가평초에 가기를 권한다. 학교와 마을이 스스럼없이 한몸으로 부대끼며 재미 오지게 어울리는 ‘마을이 학교’인, ‘학교가 마을’인 그 곳에 말이다. 작은학교가 꼭 살아남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도 말이다.

   
▲ 도서관은 놀이터.

<가평초에서 만난 이 책>

<갈매기의 꿈>(리처드 바크, 현문미디어). :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좌절에도 굴하지 않고 노력하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의 이야기다. 고창에서 가장 작은 학교를 운영하는 고광욱 교장에게는 특별한 책이다. 주눅들지 않는 단단한 용기, 그가 가평초 어린이들에게 끊임없이 전하는 메시지다. 그 메시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책, 류시화의 번역이다. ‘읽은 학생은 한번더 읽기’를 권하는 친절한 교장선생님이 강력 추천하는 책.

<태백산맥>(조정래, 해냄) : 김수영 교무부장의 고교시절을 생동하게 한 바로 그 책이다. 해방과 분단, 한국전쟁의 소용돌이를 담담하게 그려낸 역작이다. 모두 10권인데, 그의 말대로 한번 빠져들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책이다. 굴곡 심한 우리 현대사를 고스란히 담은 탓에 아직까지 여러 가지 논쟁에 휩싸여 있다. 논쟁과는 상관없이 일단 재미있다. 인문학적인 배경을 단단하게 하는 역사인문소설, 책장 넘기기 아쉬워 아껴아껴 읽게 하는 책이다.

이대건(고창책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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