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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유적지, 문화재 등록 시급”
고창 21개 유적지 중 단 한 곳도 없어 / 전봉준 생가, 문화재적 가치 전혀 없다 / 정읍 5개소, 부안 1개소만 문화재 지정
김동훈 기자 / 입력 : 2014년 03월 17일(월)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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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2주갑(=120년)을 맞은 올해,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는 여전히 천대받고 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전국 365곳의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및 기념시설을 조사한 결과, 상당수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거나, 유적지라는 사실조차 안내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유적지가 제대로 관리되기 위해서는, 국가 또는 지자체의 문화재 지정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예산을 투입해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학혁명의 중심지였던 전북은 다른 지역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156개소(43%)의 유적지를 보유하고 있지만, 유적지의 문화재 지정 및 등록 숫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동학혁명이 아닌 다른 사유로 지정된 유적지를 빼면, 그 숫자는 더욱 줄어든다.
전북 내에서 국가지정문화재로 등록된 곳은 정읍 전봉준고택(사적 293호), 정읍 황토현전적지(사적 295호), 부안 백산성(사적 409호) 등 3개소다.
전라북도의 무관심도 마찬가지다. 전라북도지정문화재 또한 정읍 만석보터(전북기념물 33호), 정읍 말목장터와 감나무(전북기념물 110호), 정읍 고부관아터(전북기념물 122호) 등 3개소 뿐이 없다.
전북도내 시·군의 무관심은 더욱 참담하다. 단 한 곳도 시·군 향토문화유산으로 동학혁명 유적지를 지정하지 않았다.
종합해보면, 전북에서는 정읍 5개소, 부안 1개소만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김대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은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서는 정부와 자치단체의 관심이 중요하다”며 “유적이 더 훼손되기 전에 문화재 등록을 포함해 보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북도청 담당자는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지역 기념사업 단체, 자치단체, 전북도 관계자는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기념사업 일환으로 지역 기념사업 단체, 자치단체, 기념재단이 공조체계를 이뤄 올해 안으로 문화재 등록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고창의 동학농민혁명 관련 유적지
전문가들은 ‘무장기포지’ 만큼은 국가지정문화재가 돼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창군청 또한 ‘무장기포지’를 국가지정문화재로 추진하고 있고, 현재 문화재청 심사 중에 있다.
고창에는 동학혁명과 관련 21개의 유적지가 있다: ▲고창읍성 ▲전봉준 생가(고창읍 죽림리) ▲무장기포지(공음면 구암리) ▲동학농민군 훈련지(공음면 구암리) ▲여시뫼봉(공음면 신대리) ▲정백현 생가(공음면 예전리) ▲무장관아(무장면 성내리) ▲무장읍성(무장면 성내리) ▲굴치 농민군 진격로(부안면 상등리) ▲손화중 피체지(부안면 송현리) ▲손화중 괴치도소 터(성송면 괴치리) ▲손화중 양실도소 터(성송면 괴치리)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아산면 삼인리) ▲흥성관아(흥덕면 흥덕리) ▲<농학농민혁명발상지> 비(공음면 구암리) ▲고창주 추모비(공음면 구암리) ▲무장기포지 소나무 3그루(공음면 구암리) ▲무장기포지 당산나무(공음면 구암리) ▲동학농민혁명 기념탑(공음면 구암리) ▲전봉준 선령 묘(고창읍 죽림리) ▲전봉준장군 생활전시관(고창읍 죽림리).
위 동학혁명 유적지 중에서 5곳은 동학혁명이 아닌 다른 사유로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고창읍성·무장읍성·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은 국가지정문화재, 무장관아·흥성관아는 전라북도지정문화재). 따라서 동학농민혁명과 관련, 고창에서는 단 한 곳도 문화재로 지정된 곳이 없다.
심지어는 고창군에서 지정한 향토문화유산도 없다. 고창군 담당자는 “고창군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 군비를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섣불리 향토문화유산 지정을 추진할 수 없는 입장”이라며 솔직한 속내를 얘기했다. (고창군향토문화유산으로는 8개소가 지정돼 있다.) 하지만 향토사 연구자들은 “보존할 가치가 있는 유적지는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해) 군비를 투입해서라도 보존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고창군 담당자는 “무장기포지, 전봉준 생가, 손화중 도소 터, 손화중 피체지가 문화재로 지정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전했다.
‘손화중 도소 터’는 현재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먼저 부지를 매입해야 한다. 이미 공유재산관리계획은 군의회를 통과했으며, 군비가 확보되는 대로 토지소유주와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올해도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전봉준 생가는 더욱 문제가 산재해 있다. 전문가들은 “현 생가는 고증을 거치지 않고 너무 크고 화려하게 건립해, 역사적·문화재적 가치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문화재 지정 추진 당시, 문화재 위원들도 똑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이기화 고창지역학연구소장(전 고창문화원장)은 “5칸집으로 건축된 현 생가는 당시 지주계급들이 살던 집이었다”며 “전봉준 장군 경호원이었던 고 김흥섭 등의 증언에 의하면, 생가 규모는 2칸툇집이었고 부엌을 합해도 3칸집이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현 생가는 당촌리 61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나, 관련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당촌리 63번지가 생가터였다”며, 이에 대한 검증도 뒤따라야 한다. 준공 초기에는 동학혁명을 주도한 가난한 혁명가가 어떻게 지주계급이 살던 집에 살고 있느냐며, 관광객들이 민원을 잇따라 제기했다고 한다.
이기화 소장은 “관 주도의 관제문화가 만든 역사 왜곡행위”라며, 지금에라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봉준 생가가 준공된지 14년째를 맞고 있다. 당시에도 전면 재건축 등 대책이 논의됐지만, 아무런 실천없이 시간만 흘러보냈다. 동학농민혁명 2주갑을 맞은 올해도, 전봉준 생가는 여전히 전봉준 장군을 욕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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