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한빛원전 4호기 원자로 격납건물에서 벽두께에 불과 10센티미터 모자란 깊이 157센티미터의 구멍(빈틈=공극)이 발견되면서, 핵발전소 안전에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규제·감독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올해까지 예정된 ‘원전 구조물 특별점검 기간’을 내년말까지 연장하는 한편, 점검 대상을 전 원전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한빛4호기 157센티미터 빈틈에 대해서는 8월말까지 안전성(구조물 건전성)을 평가하고 결과에 따라 보수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한빛4호기(102개 구멍)·3호기(98개 구멍) 대해서는 구멍 발생 원인을 분석하기 위한 티에프팀을 구성·운영하고, 격납건물 143개 관통부 하부의 구멍을 전수조사하며, 일련의 과정에 대한 투명성 제고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는 과연 수많은 구멍을 떼우는 것을 주민의 입장에서 근본적으로 수용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안전마저 땜질한다며 원전을 폐쇄할 것을 촉구하고,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7월31일자 제이티비(JTV) 뉴스에 따르면, 2001년 미국 산디아 국립연구소가 한빛3·4호기와 동일한 ‘가압 경수로형’ 핵발전소 격납건물을 4분의1 크기로 축소한 뒤 수압 실험을 한 결과, 압력이 높아지자 멀쩡한 상태에서도 약한 부분이 갈라져 폭발했다. 전문가들은 이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한빛원전처럼 구멍이 숭숭한 콘크리트 벽을 완전히 메워봐야, 완전히 붙지않는 만큼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종운 교수(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도 “큰 구멍을 메워서 보수한 원전의 경우에는 지금 데이터가 없어요. 당연히 빨리 (파열이) 일어날 거라는 말이죠. 멀쩡한 거하고, 다시 메꾼 거하고 분명한 차이가 있을 건데, 그걸 분명히 구별할 수 있는 실험이 우리나라에는 없다는 건데, 무슨 근거로 안전성을 주장하느냐”며 과학적 부당함을 제기했다.
한수원 정재훈 사장은 7월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빛4호기 공극문제는 어제 최종적으로 확인된 수치를 오늘 지체없이 공개했으며, 모든 수단을 강구해서 주민분들과 규제기관의 협조를 얻어 구조안정성 평가를 할 것이며, 국내외 전문기관을 통해 필요한 조치를 할 예정”이라면서, “엔지니어링 측면에서는 한빛4호기의 안정성에 대해 설명하거나 보완·보강할 수 있지만, 지역주민분들에게는 또 한번 면목이 없게 되었다. 추가적으로 국내·외를 통틀어 현재의 기술로 할 수 있는 모든 안전조치를 다하겠다”고 전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7월26일 ‘제105회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열어, ‘전 원전 구조물 특별점검 현황 및 향후계획(안)’을 보고·논의했다. 또한 8월9일 ‘제106회 원안위’에서는 ‘한빛3·4호기 격납건물 콘크리트 공극 관련 안전성 확인 계획(안)’을 보고·논의했다.
앞서 원안위는 2017년 6월 정기검사에서 깊이 20㎝의 공극을 발견한 데 이어, 올해 말까지로 예정된 콘크리트 구조물에 대한 특별점검 과정에서 이 같은 대형 빈틈을 발견했다. 지난해 11월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에서 격납건물을 관통하도록 설계된 주증기배관의 관통부 아래에서 구멍이 발견된 이후, 한빛 3호기·4호기·6호기에 대해서도 같은 부위를 점검하던 도중 대형 빈틈을 발견한 것이다.
당초 빈틈의 깊이는 처음에는 38㎝로 알려졌다가 이후 90㎝, 최종 157㎝로 점점 커졌다. 일각에서는 구멍이 점점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원안위에 따르면, 지난 5월22일 격납건물 내부철판(CLP)을 절단해 내부 공극을 확인하면서 깊이를 38㎝로 측정했고, 이후 5월24일부터 7월23일까지 철판을 추가로 절단해 공극의 깊이를 최종적으로 확인했다. 빈틈에는 그리스(윤활유)가 채워지게 되는데, 이를 모두 빼내야 정확한 깊이가 파악된다고 한다. 원안위 관계자는 “90㎝의 경우 검사 중간에 측정돼 수치가 외부에 알려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핵발전소 격납건물에 이런 대형 빈틈이 나타난 원인으로 부실시공을 꼽고 있다. 핵발전소를 건설할 때 격납건물을 통과하는 대형 관통부가 있으면, 그 아래에 보강재를 세우고 콘크리트를 타설하게 된다. 콘크리트를 붓는 과정에서 보강재나 슬리브 아래로 콘크리트가 덜 채워질 수 있다. 콘크리트를 다져서 채우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나, 한빛4호기의 경우 이 과정에서 부실이 발생해 콘크리트가 채워지지 않아 빈틈으로 이어진 것이다. 장찬동 원안위 위원은 “공극이 아니라 부실시공에 의한 미채움이라고 해야 하지 않느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원안위는 한빛4호기의 157㎝ 깊이 구멍이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기 위해 구조물 건전성평가를 8월에 실시하기로 했다. 기존 구멍을 메우는데 사용했던 ‘그라우트 방식’, 즉 틈 사이에 충전재를 주입하는 방식의 안전성이 확인되면 이를 활용하고, 그렇지 않으면 콘크리트를 다시 타설하기로 했다. 한수원은 이 방식의 경우 7개월이 추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빛 3·4호기와 관련, 건설당시 사용전검사 과정 등을 되짚어 근본원인 및 문제점을 확안하기 위해, 빈틈 발생 원인을 분석하기 위한 티에프팀을 구성·운영해, 사업자 시공관리의 적절성, 규제기관 검토결과의 타당성, 검사 및 시정조치 체계의 적절성 등을 중점적으로 점검할 예정이다. 또한 격납건물 관통부 중에서 30인치 이상 12개, 20인치 이상 30개, 10인치 이상 101개 등 143개 관통부 하부에 내부철판(CLP) 절단을 통해 구멍을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한수원은 권위있는 해외설계사를 통해 구조건정성 평가결과 및 보수방안을 별도 검증하고, 원안위는 콘크리트학회 등에 의뢰에 객관적으로 검증할 예정이다. 희망하는 모든 지역주민·전문가 등에게 참관을 허용하고, 구멍 상태 및 보수공사 전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지역주민·전문가 등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전 원전에 대한 특별점검 기간도 올해 말에서 내년 말까지로 연장하기로 했다. 주증기배관 관통부 하부에 공극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 확인됨에 따라, 원안위는 호기별로 8~9개가 존재하는 대형 관통부 전체로 확대점검을 수행하기로 했다. 공극으로 인한 방사능 누출 등의 문제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원안위는 “한빛3호기와 4호기에서 가동기간 동안 환경방사능 측정값을 확인한 결과, 방사능 물질이 외부로 누출된 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한편, 고창군청은 한빛원전의 대형 구멍과 관련, 7월31일 고창원자력안전협의회에 참석해, “향후 보수계획 및 공극조사가 어려운 부위에 대한 안정성 확보방안이 중요하다”며 “공극을 모두 보수하고, 공극조사가 불가능한 구조물 부위에 대한 안전성 확보방안이 마련될 때까지, 계획예방정비 기간을 무기한 연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현재까지 미처 발견되지 않은 공극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공극을 그대로 둔 채 다시 원자로를 재가동할 경우 군민 모두가 불안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전남·전북·광주의 시민·사회·탈핵단체들은 7월29일과 8월1일 기자회견을 열고, “연일 한빛핵발전소에서 들려오는 사건·사고 소식에 호남지역 주민들은 깊은 우려와 걱정을 넘어 심각한 불안과 분노의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한수원 등은 ‘격납건물의 구조적 안전성에는 이상이 없다’고 반복해서 밝히고 있지만, 호남권 지역주민들은 그 말을 신뢰할 수 없다”며, “한수원·원안위·산업통상자원부는 노후화되고 심각한 문제들이 반복되는 한빛핵발전소 1·3·4호기 폐쇄를 요구하는 호남권 지역주민들과 국민들의 목소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북도의회 한빛원전대책특별위원회(위원장 성경찬)는 8월5일 도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부실 덩어리인 한빛원전 3·4호기의 가동 무기한 연기를 촉구했다. 특위는 “원안위와 한수원은 공극과 관련 구멍을 메우면 구조적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며, “콘크리트 공극을 채워 보강하면, 접합부위가 사고 시 압력을 견디지 못해 가장 먼저 피열되기 때문에, 이런 땜질식 처방은 아무런 보호책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3·4호기 부실공사와 관련, 건설업체·감리업체에 부실시공 책임을 묻고 처벌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며 “도민의 권리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한수원의 규제와 감시권한을 지자체와 민간환경감시센터에게도 부여하고 근본적 안전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지난 7월30일 구성된 정읍시의회 한빛원전대책위원회(조상중·이복형·정상섭·이상길·정상철·기시재·김중희·김은주 의원)는 지난 8월13일 “발전소 인근 주민들에게 최소한의 설명조차 하지 않고 한빛1호기를 재가동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은 정읍시민과 나아가 호남지역 주민들을 우롱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 시의회 대책위는 정읍시민을 포함해 발전소 인근지역주민의 동의없이 한빛1호기를 재가동하는 것은 절대 불가하며, 향후 원전사고 시 재가동할 경우 지역주민의 동의권에 대한 법제화를 위해 노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빛원전영광범군민대책위원회(영광범대위)는 7월29일 공동위원장 및 집행위원 긴급회의를 열고, 1호기 열출력 급등사건, 3호기 격납건물 종합누설률시험 실패와 격납건물 구멍, 4호기 격납건물 대형 구멍 등과 관련한 정부차원의 대책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영광범대위는 결의문을 통해 “한빛원전 가동 34년 동안 수많은 사고와 고장으로 지역주민들은 항상 불안 속에 생활하였고, 최근 각종 사건 및 사고로 단 하루도 편히 지낼 수 없으며, 생업에도 엄청난 지장을 주고 있다”면서, “특히, 한빛3·4호기 부실시공은 1990년부터 주민들이 제기한 문제를 무시한 채 공사를 완료해 25년이 지나 밝혀졌으며, 그동안 각종 사건으로 지역 농·축·수산물 및 특산품 등의 피해와 브랜드 가치가 하락했다”고 주장했다. 영광범대위는 ▲한빛4호기 구조물 건전성평가 즉시 중지를 비롯해, ▲한빛3·4호기 부실공사 진상조사 및 주설비 시공업체인 현대건설의 책임 ▲민관합동조사단 조사결과에 대한 이행계획서 제출 및 실행 등을 요구했다. 또한, 영광군민이 수용하는 안전성 확보 없이는 재가동 불가 및 3·4호기 조기 폐쇄를 주장했다. 영광범대위는 이 같은 내용을 국무총리실 등 정부와 국회 산업통상자원벤처위원회, 전남도 등 주요기관에 공문으로 발송했으며, 8월 중순경 국무총리·산업부장관·원안위원장 등을 면담해, 현안사항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을 요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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