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주(고창 부안면 귀농인·농부)
고창군을 오래오래 먹여살리시려고 명품 닭도축가공공장을 일반산업단지에 유치하는데 진력하시는 유기상 군수님과 상생경제과 공무원님들께 심심한 위로와 격려를 드립니다. 군행정의 결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가니 군민을 위한 충심에서 시작한 일 때문에 마음고생이 크시겠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 모두는 치열하고 치사한 정치판 아수라장에 살고 있습니다. 정치란 원래 그런 것이니 누가 누구를 비난하고 욕할 계제가 아닙니다. 민주주의 정치판에서 누구에게 순수성을 기대하고, 성인군자를 원하겠습니까? 대통령과 동맹하자고 했는데 거절당하자, 검찰 옷을 벗고 바로, 감사원장직을 때려치고 바로, 경제부총리였던 자도 바로, 정당생활 1개월도 안 해 보고 대통령후보로 뛰어드는 진정 민주주의 발광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독재 시절엔 브이아이피(VIP)의 뜻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니, 나라 전체가 얼마나 깔끔하고 질서 있게 보여 좋았습니까?
군수님은 고위급 지방공무원직을 그만 두고 정치인이 되셨습니다. 저는 아마 그때쯤 정치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국회의원, 군수, 농협 조합장 선거 때 말로만 듣던 돈봉투가 실제로 돌아다니는 것을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모든 시·군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관습이 바로 고창에서! 이것이 주먹밥 나눠먹으며 피흘려 싸웠던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이란 말인가? 아니 그렇게 돈을 뿌리면 그보다 더 많은 돈을 거두어야 할 터인데, 선출직 공직에서 어떻게 그런 돈을 벌 수 있을까? 참 궁금했습니다. 돈을 만드는 수 백가지 방법을 모르는 순진한 인생이었죠.
저는 이제야 정당 생활을 하는데, 통장에서 당비가 출금만 되지 참여할 어떤 정당 활동도 없더군요. 선거 때만 반짝 움직이는 것이지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정당들입니다. 유럽과 같이 자전거 타고 출퇴근하며 일하는 의원들을 길러내는 풀뿌리 정당의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선거에서 출신배경과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수준이어서 정말 시민을 위한, 준비되고 세련된 정치를 구경하지 못합니다. 모두 그럴 듯하게 유세는 해도 결국은 자리 차지하고 밥벌이 하려는 생계형 출세형 새들입니다. 이것은 정치권 모두를 폄하하는 것이지, 딱히 누구를 가리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치사하지만 선거는 이겨야 되기 때문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야지요. 든든한 정당 조직과 돈도 없는 군수님이 지난 선거에서 이기신 것은 민주당 텃밭에서 기적과 같은 일이었지요. 그 불리함 가운데서 참신함이 돋보였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손가락도 한 몫했고, 나름대로 열심히 지지하고 선전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제 고만고만한 군수 후보들 사이에서, 군수라는 기득권을 가지고도 상대 세력들이 워낙 강력하기 때문인지, 재선을 위해서 결정적인 강력한 한방을 준비하셨는데, 그것이 저를 결정적으로 군수님께 정치적으로는 등을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닭 84만 수를 도축하여 고기는 고기대로 가공해서 팔고 부산물은 사료로 가공해서 파는 오염물질 다량배출업체를, 고창의 일반산업단지로 유치하려고 애쓰고 계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플랭카드에 적힌 대로 고창군에 1000개(?)의 일자리와 600억(?)이 떨어지는 대박 사건을 고창 정치판에 던졌습니다. 첫째는 최대 규모라는 것으로 압도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것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버렸습니다. 정치는 무엇으로든 이슈를 선점하고 승부를 걸어야 하니까 잘하신 것입니다. 그 기업체와 체결한 계약이 실제로 성사가 되든 안 되든, 이제는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뭐라도 해보려 애쓴 군수였다는 것을 확실하게 각인은 시켰으니까요. 그것이 신기루이든 진짜 희망이든 별 상관이 없습니다. 돈 봉투 돌리는 것과 가짜 희망을 가득 담은 풍선을 돌리는 것과 뭐 다를 게 있을까요? 이런 점에서 군수님은 정치를 일찍 통달하셨고 이미 지방선거에서 이기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양쪽(고창군-동우팜)이 제한업종 규정에 위반되는지 알고서도, 산단계획 변경을 조건부로 해서 계약까지 진즉 해치우고, 이미 은행으로부터 공사를 위한 대출까지 받았는데도, 최근에 “군민이 반대하면 안 하겠다”는 군수님의 말씀을 전해 듣고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제가 들어 본, 유권자들을 향한 가장 도발적인 발언이었습니다. “글쎄 니들이 이 좋은 걸 반대하잖아? 나도 하고싶어 한 거 아니었거든? 그거 언제든지 그만할 수 있어. 그때 그만할거야!” 이런 뜻이었을까요? “니들이 최대 규모의 최신 닭공장 맛을 알아? 뭘 제대로 알고나 반대하는거야? 군민 전체가 반대해도 난 할거야! 고창을 위해서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구!” 이런 뜻이었을까요? 그 말씀이 아니었다면 저 같은 정치인도 아닌 겨우 정당인 애송이가 무엇을 눈치챘겠습니까?
다만 고창군에서는 무슨 후보든 군민이든 더 이상 동학혁명을 거론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국회의원과 군수와 농협조합장 선거에 돈 봉투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는. 그러니 선거용 돈 봉투를 돌릴 돈이 없는(?) 군수님과는 인간적으로는 더욱 가까워질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정치판은 비인간적이고 비이성적인 이합집산(離合集散)이 빈번한 곳이니까, 또 어떤 변화가 몰아쳐서 함께하게 될지 모르니까요. 더불어민주당 안에 개혁을 결코 원치 않고, 검찰·언론과 손잡고 집권만 연장하고 싶은 수박들이 그리 많고, 그들이 외톨이 문 대통령을 포위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애송이니, 군수님의 신의 한수를 읽는 데도 애송이였죠. 저도 나중에 어떻게 변할지 누가 압니까? 아예 돈 봉투 가득한 돈 가방을 들고 다닐지, 큰 애드벌룬 띄우며 다닐지. 정치판은 아수라장이더군요. 그러나 그렇게 득세한 자들이 있어도 결국 깨어있는 한 두 사람의 진실과 희생이 정치판을 몰고갑니다. 어쨌든 군수님의 충심어린 결정을 정치적인 수로 해석하려 한 무례를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군수님께 들었던 두 번째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마치 장기집권의 신호탄처럼 들렸습니다. 불과 1년 후에, 아니면 6년 후에 그만 두실 수도 있는 분이, 물론 재선도 3선도 충분히 하실 수 있습니다만. 공무원들은 순환보직으로 늘 이동하는 법인데, 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책임을 진다는 것인지…. 그리고 반대를 무릅쓰고 강력한 행정력으로 밀어부쳐서 닭도축가공공장을 건축할 수는 있습니다. 반대로 문제가 심각해서 공장 문을 닫게 하는 것도 그렇게 강력하게 할 수 있을까요?
성내면의 작은 퇴비공장 하나가 주변 외일리·외토리 마을을 악취로 오염시켜서, 주민들을 암으로 죽도록 내몰았습니다. 가동을 임시중단하기까지 16년이 걸렸고, 그 동안에 가정들과 마을들은 망가질대로 다 망가졌습니다. 일단 공장이 세워지면, 재산권은 법의 보호를 받기 때문이고, 군청과 피해를 입은 민원인이 기업의 막강한 법무팀을 이겨낼 재간이 없습니다. 민원이 발생할 때마다 전문기관에서 시료 채취하고 분석하고 평가해서 조사 보고서 만드는 데 몇 개월, 사건이 법원 드나들면서 몇 년씩 걸리면 지속적인 피해를 주민이 보게 됩니다. 군청 공무원들이 민원인의 피해를 못 본 체하거나 늑장부리는 것이 결코 아닌데도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서로 인정해야 합니다.
폭우가 쏟아지면 대개의 공장들이 오폐수 직통 배출구를 열어버립니다. 정화되지 않은 오폐수가 그대로 하천으로 흘러갑니다. 심지어 군청에서 책임지는 하수종말처리장에서도 그렇게 한다고 들었습니다만…. 뭐, 이런 정도의 오염은 불가피하다고 말하면 어쩔 수 없지요. 매일매일 닭 84만수를 도축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오염폐수가 완벽하게 처리되니, 1등급 생태하천과 습지 갯벌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도 책임지겠다고요. 누군가는 악취는 견딜 만하고, 일자리 천개의 대가로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도 말씀하십니다. 물론 일자리 천개가 가져오는 경제의 상승효과는 그 규모를 상상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기루이지 희망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부안군과 정읍시의 악취 고통과 불행의 몇 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찬성측이나 반대측에서 어떤 데이터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누구도 확정지어 말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과학 이전에 상식으로도 판단할 수 있는 일입니다.
행정 경험이 풍부한 군수님과 엘리트 관료들은 완벽한 악취감소 기술, 오폐수 정화기술과 장비에 고창의 모든 미래를 다 걸어버렸습니다. 기업이 제시하는 대로 오염을 완벽하게 제거하는 기계도 잘 알고 기술에 대한 이해가 빠릅니다. 그러나 배움이 짧은 나 같은 농부는 고창의 개천들을 보면서 비릿한 내음이 가득한 악몽을 꿉니다. 종돈사업소에서 나는 분뇨·악취는 문제가 끝났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오래 전에 양식장 인근 바다에서 등이 굽은 숭어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오염시설이 가장 적은 고창 바다도 이렇게 위태위태합니다. 언젠가는 장어도 바지락도 김도 안녕할 때가 올까요? 인근 원전 때문에 항상 불안한 고창은 이제 완벽한 ‘삼종 오염 세트 지역’이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나는 기계와 기술을, 이제는 기후를 믿지 않습니다. 집중폭우와 장기간의 가뭄이 예기치 않게 우리를 덮칩니다. 예고 없는 기후 재앙에 살아남을 기술도 이겨낼 기계장치도 없습니다. 챔피언 복서 마이크 타이슨이 말했습니다. ‘주둥이를 세게 얻어터지기 전까지는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을 말하는 법이다’라고….
하루 84만 마리 닭도축장은 적어도 10년은 넘게 오랜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계획되어야 했습니다. 타 시군의 공장의 3배 정도일 뿐이고, 그런 정도는 회사가 얼마든지 다룰 수 있는 기술이고 규모라고 속단한 것은 아닙니까? 기관마다 다르니까 여러 기관들의 환경평가도 받고, 여러 축소모형 실험도 해보고, 실무자들이 신기술로 무장한 외국 도축 공장도 가보고…. 선진 외국에 생활권과 이렇게 딱붙은 도축 공장이 버젓이 세워진 도시가 하나라도 있는지요? 도축공장에서 실제 일하는 노동자들을 객관적으로 설문조사한 자료가 있는지요? 닭도축 공장들의 인근 주민들을 광범위하게 객관적으로 설문조사한 자료가 있는지요? 무엇보다 이런 최대 규모의 닭도축가공공장을 계획하는데, 테스크포스 팀이라도 만들어 충분한 시간과 돈을 들여 연구하고 조사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두고두고 황금알을 낳는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200억 정도는 쓰면서 준비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이렇게 졸속으로 결정하고 위법사항들을 밀어부치는 것은, 어떤 정치적인 요인이 작용했으리라고 합리적인 의심을 품게 합니다.
나는 이런 비판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고창을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하게 된 귀농인이니까요. 그리고 내가 존경하고 지지해서 선거에서 찍었기 때문에. 지금은 생애 최초로 권리당원이 되어서 민주당 군의원들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군민들 눈물·땀 밴 혈세를 받으면서 어떻게 시민단체보다도 못하는 행태를 보인단 말입니까? 군 행정을 감시해야 하는 자리에서 일년이 넘도록 도축공장에 대해서 아무런 할 일을 찾지 못한단 말입니까? 무슨 자료 하나 조사해서 만든 것이 있습니까? 군민들만 추위와 더위를 무릅쓰고 숨겨진 자료들을 찾아다니고 또 반대 시위하고…. 물론 시민단체가 아무리 몸부림쳐봐야 막강한 군 행정력에 달걀로 바위 치기임을 압니다. 그래서 군의회의 역할이 중요한데…. 뭣들 하고 계십니까? 이 시기의 여러분의 발언과 행적은 모두 기록되고 차곡차곡 저장되어 다음 선거에서 참고될 것입니다. 누가 군민들을 위해 몸바쳐 용감하게 일했는지. 이제는 힘 없는 깨시민의 집단지성이 소속정당과 인맥과 돈 선거를 무산시킬 것입니다. 찬성하든지 반대하든지, 구체적 최근사치의 자료를 가지고 자기 주장을 하고 토론합시다. 이것이 민주주의 사회를 한 걸음 진전시킬 것입니다.
나는 군수님의 고창군에 대한 변치 않는 충심과 진심을 믿고 싶습니다. 일자리 천개와 명품 도축공장으로 고창을 살기 좋은 명품 도시로 승격시키고 싶은 원대한 꿈과 비전을 믿고 싶습니다. 그러면 그 백분의 일이라도 그런 가능성이 있는 현장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부안군은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군민의 혈세로 닭 도축공장의 악취를 저감하는 트럭까지 운영해 준답니다. 기존의 법을 무시하고 신속하게 전격적으로 계약을 먼저 체결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행정의 달인의 기술이지 원칙과 바른 길이 아닙니다. 그 공장이 어디로 도망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채가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서둘러서 계약을 체결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임기내에 보여줘야 할 어떤 성과가 필요했을까요? 내가 시작했으니 내가 마무리까지 책임질 생각이신가요?
나는 평생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피 흘린 적 없고 눈물 흘린 적이 딱 한번뿐입니다. 내가 가꾸지 않고 누군가의 피눈물로 열린 민주와 자유라는 과실들을 오래 잘 먹고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늙어가면서 뭐 할 일도 별로 없습니다. 정기적으로 닭도축공장 반대 촛불집회에 발 하나 보태고 있습니다. 매일 상복 입고 피켓 시위하는 군민들에 비하면 조족지혈입니다. 농촌인구 감소, 지역경제 위축 등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신의 한수, 명품공장과 청정고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 애쓰시는 군수님과 상생경제과 공무원님들께, 순환보직 때문에 일년만 잘 버티면 되니까, 기죽지 말고 지치지 마시라고 위로를 보냅니다. 인구 감소와 소득 감소라는 절박한 문제에 대해서 뚜렷한 대안을 내지도 못하면서, 일 잘하고 계신 분들을 걱정만 하는 어리석음을 용서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