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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군 심원면 하전마을 갯벌은 국내 최대의 바지락 생산지로, 한때 전국 바지락 생산량의 약 50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양식어장이었다. 연간 1만~2만톤에 달하는 바지락을 생산하며 지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지만, 새만금 사업 진행 이후 이 지역 갯벌 환경이 급변하고 이상기후까지 겹치면서 바지락의 집단 폐사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바지락 집단폐사 발생 현황: 반복된 폐사, 생산량 급감과 피해 누적
새만금 방조제가 2006년 완공된 이후, 고창갯벌의 바지락 집단폐사는 반복적으로 보고되어 왔다. 2013년 겨울에는 고창 하전 갯벌에 입식한 바지락 종패 약 1만톤 중 절반가량(약 4500톤)이 폐사하는 사고가 처음 큰 이슈가 되었다. 당시 국산 종패보다 중국산 종패의 피해가 훨씬 커, 수입한 어린 바지락의 폐사율은 90퍼센트에 달한 반면 국산 종패 폐사율은 약 30퍼센트로 집계되기도 했다. 관계 기관들은 해당 폐사의 원인으로 “종패가 갯벌 깊숙이 잠입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록적인 한파로 동사(凍死)했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이후에도 고창 바지락 양식장에는 매해 봄·여름철 폐사가 산발적으로 일어났는데, 2014년 여름에는 폐사율 약 30퍼센트, 2015년에는 60퍼센트까지 급증하여 대량폐사가 반복됐다. 2018년 전후로도 심원면 일대 300헥타르 양식장에서 원인 미상의 질병으로 5천톤 넘는 바지락이 폐사해 20억원 이상의 피해가 발생한 사례가 있다. 2022~2023년에는 급기야 바지락 생산이 전멸 수준에 이르렀다. 2023년에는 전년 1만여톤 대비 2천톤 미만으로 80~90퍼센트 이상 감소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피해액만 2백억원 이상으로 추산됐다. 2024년에도 폐사율을 무려 60~70퍼센트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어민들 주장: “밀식이 아니다”
고창 어민들은 바지락 폐사의 원인을 두고 밀식 양식 때문이라는 지적에 반박하며, 근본적인 원인은 새만금 사업으로 인한 갯벌 환경 변화, 원전 온배수와 기후 변화에 의한 수온 상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일부 언론이나 연구기관이 폐사의 원인 중 하나로 밀식을 언급한 것에 대해 “과거에도 지금과 비슷한 밀도로 종패를 살포했지만 폐사가 거의 없었고, 오히려 매년 꾸준한 생산량을 유지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갯벌 특성상 밀식 여부와 무관하게 바지락은 스스로 퍼지고 자라는데, 최근에는 종패를 살포해도 정착하지 못하거나 사라지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갯벌 지형의 변화, 조류 흐름의 변화, 모래 유실 등 외부적인 환경 요인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새만금 방조제 완공 이후 조석(潮汐) 흐름이 달라지고 퇴적물이 이동하면서, 바지락이 서식하던 갯벌의 특성이 급격히 변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과거와 동일한 방식으로 양식해도 생산량이 줄어든 것은, 갯벌이 서식지로서 적합하지 않게 변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어민들은 이러한 현상이 고창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강조한다. 고창과 가까운 부안·군산 등 인근 지역에서도 유사한 바지락 폐사 피해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이는 특정 양식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광범위한 해양환경 변화에 따른 영향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전남이나 충남 일부 갯벌에서는 같은 방식으로 바지락 양식을 하고 있음에도 폐사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어, 만약 밀식이 원인이라면 전국적으로 동일한 문제가 나타나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현재까지 고창 바지락 어장에 대해 객관적으로 측정된 밀식 데이터도 부족하다. 연구기관에서 시행한 현장 조사에서 고창 어장의 밀도가 과도하게 높았다는 구체적인 수치가 공개된 적은 없다. 일부 연구기관이 밀식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이는 특정 어장에 한정된 것으로 보이며, 고창 전체 어장으로 일반화하기는 적절치 않다.
어민들은 밀식이 원인이 아니라 새만금 사업 이후의 갯벌 환경 변화가 핵심 요인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으며, 이를 입증할 구체적인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따라서 어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보다는, 정확한 연구를 통해 환경 변화의 영향을 면밀히 조사하고, 어민들의 피해를 보상하거나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갯벌의 변화: 새만금이 남긴 구조적 영향
어민들과 관계자들은 무엇보다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인한 해양환경 변화가 고창 바지락 폐사의 근본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새만금 방조제는 33킬로미터 길이로 2006년 완전히 물막이가 된 이후, 갯벌 생태계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새만금으로 400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광활한 갯벌이 사라지거나 담수호로 바뀌면서, 인근 지역의 조석 흐름과 퇴적물이 재편됐고, 전북 지역의 전통적인 패류 산란·서식지가 크게 축소됐다. 실제 1990년대 이후 이 지역 어민들의 조개 채취량은 급감했고, 새만금 사업으로 어획량이 10년새 35퍼센트 이상 감소한 통계도 있다.
이는 대형 간척으로 갯벌 생태계 파괴와 생산력 저하가 발생했음을 시사한다. 고창 하전 갯벌의 경우, 새만금 방조제 남쪽 인근에 위치해 간척 이후 간접적인 영향권에 들었다. 어민들은 최근 몇 년간 이어진 바지락 폐해의 1차 원인으로 “새만금사업과 새만금 신항만 공사로 바다 밑 지형이 교란됐기 때문”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대형 준설과 매립 공사가 인근 해저 지형을 바꾸면서, 고창 갯벌의 펄과 모래가 부안 쪽으로 이동하여 갯벌 상층의 부드러운 퇴적층이 씻겨 나가버렸다는 것이다. 그 결과 예전처럼 바지락이 살기 좋은 미세펄이 섞인 모래질 갯벌이 사라지고, 남은 갯벌은 경화되거나 빈껍데기 등으로 거칠어져 어린 바지락들이 정착·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변했다는 주장이다.
실제 하전 갯벌은 202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가치가 입증된 생태계이지만, 새만금 개발 이후 상대적으로 모래 비율이 높은 혼합갯벌로 변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는 바지락 서식에 최적인 “모래 60~80퍼센트에 펄이 약간 섞인 퇴적물” 조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뜻한다.
해수온 상승·기후변화…폐사 조건 악화
또 다른 환경 요인으로는 해수 온도 상승과 극한 기상현상이 있다. 지구온난화로 서해 연안의 수온은 꾸준히 오르고 있는데, 전북 연안 역시 지난 수십 년간 표층수온이 상승하는 추세를 보여왔다. 여기에 고창의 경우 한빛원전에서 방류되는 온배수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2018년·2022년 등 기록적인 여름 폭염이 있었던 해에는 갯벌 표면 수온이 치명적인 수준까지 올라 바지락 폐사가 광범위하게 발생했다.
2023년에도 이례적으로 이른 시기의 고수온 현상과 가뭄·폭우 등 극단적인 기후가 반복되면서 바지락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는 더욱 심화됐다. 전라북도는 최근 수년간 반복된 폐사 원인에 대해 “지속되는 수온 상승과 새만금 개발 등으로 인한 서식환경 악화”로 공식 평가한 바 있다.
이같은 평가는 어민들의 견해와도 맥을 같이 한다. 새만금 사업 등 인간 활동에 따른 환경 변화와 기후 변화로 인한 갯벌 생태계의 균형 붕괴가 바지락 집단 폐사의 주요 배경으로 지목되고 있다. 요컨대, 새만금 방조제 건설 이후 고창갯벌은 조석 흐름의 변화, 퇴적물 이동, 염분 및 수온 변화 등 복합적인 환경 변화를 겪었고, 이는 바지락 양식에 점차 불리하게 작용해 왔다. 결국 새만금 개발로 인한 생태계 변화는 고창 바지락 집단 폐사의 구조적·장기적 배경으로, 극한 기상은 폐사를 유발한 직접적 촉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복합 원인의 누적, 회복력 잃은 갯벌
고창지역 바지락 양식장 폐사는 단일 요인보다는 복합 요인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상 고온이나 한파 같은 자연환경 요인이 폐사의 방아쇠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그 배경에는 새만금 간척 이후 지속되어온 갯벌 생태계 변화가 자리잡고 있었다. 새만금 방조제 완공 이후 갯벌 면적은 감소하고 지형이 변화하면서, 바지락의 서식 여건은 점차 악화일로를 걸었다.
특히 새만금 간척 이후 극한 기상이 직접적 계기로 작용해 집단폐사를 유발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갯벌 환경 변화가 고착화되면서, 근래에는 극한 기상이 없어도 높은 폐사율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갯벌의 자정 능력과 회복 탄력성이 심각하게 저하됐으며, 이미 고창갯벌이 구조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예컨대 2013년 겨울 한파 당시에는 비교적 건강한 국산 종패보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수입 종패가 더 큰 피해를 입어 전체 폐사 규모가 커졌고, 2014~2015년 여름에도 같은 폭염 조건 아래에서 서해안 다른 지역보다 고창 하전 일대의 폐사율이 높게 나타난 바 있다. 이러한 사례는 기후 충격이 단독으로 작용했다기보다는, 이미 변화된 갯벌 환경과 맞물려 피해가 증폭되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새만금 개발로 촉발된 생태계 변화가 누적되고, 여기에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가 반복되며, 갯벌의 자연 정화력과 자원 재생산력은 뚜렷이 약화되었다. 최근 집단폐사는 그 복합적 상호작용의 결과이며, 향후 대응 역시 단편적 처방이 아닌 다각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회복과 대응을 위한 다각적 해법
고창갯벌의 바지락 자원을 회복하고 지속가능한 양식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환경적 접근과 관리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종패 품질 향상: 가능하면 스트레스에 강한 국내산 건강한 종묘를 사용하고, 수입 종묘에 의존하더라도 검역과 사전 적응 과정을 강화하여 초기 폐사를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종묘 생산과정에서 고온 내성과 질병 저항성 등 환경 적응력을 높인 품종 육종을 장기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
▲어장 환경 개선 및 상시 모니터링 체계 구축: 정기적인 갯벌 저질(土質) 개선 작업을 통해 퇴적물 내 유해가스(황화수소 등)를 제거하고 산소 공급을 원활히 해야 한다. 패각 등이 과다하게 쌓이지 않도록 경운 및 정화를 주기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국립수산과학원·지자체 등의 주도로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해, 갯벌 온도, 염분, 용존산소 등 주요 변수의 변화를 예측하고, 조기 경보 시스템을 운영함으로써 어민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
▲폭염·한파 대응 및 양식 재해보험 도입: 여름철 폭염기 전에 조기 출하를 유도하고, 산란 후 약한 성체가 한여름까지 어장에 남아있지 않도록 수확시기를 잘 조정해야 한다. 고온기까지 남아있지 않도록 수확 시기를 조정해야 한다. 반대로 겨울철 한파가 예상될 경우, 갯벌이 어는 것을 막기 위해 물대 조절이나 임시 수막(水膜) 유지 등의 조치를 연구해 볼 수 있다.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가 반복되므로, 농업 재해보험처럼 양식 재해보험을 도입해 어민 경영의 안정성을 높이는 제도 마련도 시급하다.
▲새만금 개발에 따른 환경 영향 저감: 새만금 내부 개발 및 항만공사 시 주변 해역의 퇴적물 이동을 최소화하는 공법을 적용하고, 부안~고창 연안의 조류 흐름을 복원하기 위한 추가 대책을 검토해야 한다. 방조제 수문 운영을 통해 일정 수준의 해수 유통을 확보하거나, 고창 연안에 인공 암초 등을 설치해 갯벌 유실을 완화하는 방안을 전문가들과 모색할 수 있다.
▲친환경 채취 기술 및 제도 개선: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면서도 갯벌 훼손을 줄일 수 있는 대안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현재 어민들이 요구하는 트랙터 부착 분사식 조개 채취기의 환경 영향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허용 기준을 마련하거나 개선형 장비를 보급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분사압을 조절하거나 모래를 재포설하는 장치를 추가하는 등의 수확 방법을 연구할 수 있다. 법·제도도 현실에 맞게 개정하여, 어촌계 단위로 채취 방법을 시험·관리할 수 있는 자율관리어업 제도를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지역 생태계와 정책의 전환점 마련해야
고창지역의 바지락 양식장 집단 폐사는 새만금 간척사업 이후 가속화된 갯벌 생태계 변화와 기후위기라는 복합적 조건 속에서 발생한 환경 재난으로 볼 수 있다. 최근 수년간 반복되고 심화된 바지락 집단 폐사는 어민 생계와 지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으며, 이는 단순한 자연재해나 어민 개별 책임으로 환원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새만금 간척 이후 한파나 폭염 같은 자연 요인이 폐사의 직접적 방아쇠 역할을 한 것이 분명하지만, 그 피해가 반복되고 확대된 근본적 배경에는 갯벌의 기능 저하와 정책 대응의 한계가 있었다. 특히 새만금으로 인한 갯벌 환경 변화가 장기화·고착화되면서 극한 기상이 없더라도 높은 폐사율이 상시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이다.
따라서 대응책 또한 단기적 재난 대응에 그쳐서는 안 되며, 자연환경의 복원과 양식 관리체계의 혁신이라는 두 축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전북도를 포함해 각 기관들이 문제의 복합성과 심각성을 공유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근본적 전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한때 “갯벌이 준 선물”이라 불렸던 고창 바지락은 이제 모두의 협력과 실천을 통해 지켜야 할 자산이 되었다. 비록 새만금 개발로 잃어버린 것을 완전히 되돌릴 수는 없지만, 남은 갯벌을 현명하게 관리하고 새로운 균형을 찾아간다면, 고창갯벌은 다시금 생명력 넘치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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