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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은 예로부터 문향이 깊은 고장이다. 판소리 사설을 집대성한 동리 신재효 선생의 숨결이 서려 있고, 수많은 향토 예술인들이 이 땅에서 삶과 예술을 함께 해왔다. 그 중심에 문학이 있었다. 지난 3월14일, 한국문인협회 고창지부 제15대 김영환 회장이 공식 취임했다. 김 회장은 시와 시조, 지역문화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꾸준히 창작활동을 이어왔다. 공직에서 퇴직한 이후에도 글쓰기와 원목공예 등을 병행하며 지역에 뿌리내린 삶을 문학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는 취임사를 통해 “문학으로 군민의 마음을 치유하고, 세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소통의 장을 열겠다”며 고창 문학의 외연을 확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에 본지는 지난 3월28일 오후 2시, 심원면 월산마을 ‘허강공방’에서 김영환 회장을 만나 ‘지역문학의 현실과 가능성’, 그리고 협회 운영 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들어보았다.
공직과 문학, 공방과 함께해 온 삶
●회장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자기 소개를 부탁드린다: 1960년 고창군 심원면 월산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심원초등학교와 중학교, 해리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고창군청에서 30여년간 공직 생활을 했고, 2017년 부안면장을 끝으로 퇴직했습니다. 1996년부터 전원생활을 꿈꾸며 마을 외곽의 조용한 곳에 정착해, 산과 들, 바다의 풍경과 일상을 가까이 두고 살아왔습니다. 벼농사와 블루베리·고추 농사를 지으며, 공방과 글쓰기를 병행하는 바쁜 일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퇴직 후에는 ‘허강공방’을 열고 원목공예와 문학을 함께하며 인생 2막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아내는 직장에 다니고 있으며,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교내 동아리 활동과 교지 편집을 통해 문학과의 인연을 맺었고, 공직에 있으면서도 시와 시조를 꾸준히 써왔습니다. 2023년에 시집 ‘바람과 구름과 비’를 발간했으며, 전북문인협회 시조분과위원장, 국제펜클럽 전북위원회 이사, 전라시조 부회장을 역임했습니다. 제26회 전라시조문학상과 제24회 고창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현재는 고창문인협회 제15대 회장으로서 고창 문학의 외연을 넓히고, 지역 문학 생태계를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일에 주력하고자 합니다. 문학은 제 삶의 뿌리이자 버팀목이었고, 앞으로도 문학을 통해 지역과 깊이 연결된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고창문인협회 회장으로서의 각오
●고창문인협회장으로 취임한 소감을 부탁드린다: 고창문인협회 회장직을 맡게 된 것을 무척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한편, 책임감도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취임 전까지 주변에서 회장을 맡아보라는 권유를 여러 차례 받았지만, 개인적인 형편과 생업을 고려해 오랫동안 고민했고, 거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수락하게 됐고, 고창문인협회를 여느 문학단체보다 더욱 내실 있는 단체로 이끌어야겠다는 다짐으로 취임에 임했습니다. 고창은 신재효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예술인을 배출한 예향의 터전으로, 예술적 유산이 깊고 넓습니다. 이곳에서 문학단체를 이끈다는 것은 단지 조직 운영을 넘어 지역 문화의 정체성을 지키고 이어가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 자리가 단순한 명예직이 아닌, 실천의 자리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고창문인협회의 역사와 역할
●고창문인협회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고창문인협회의 뿌리는 1959년 창립된 모양문학회에서 시작됐습니다. 이후 1990년 3월, 한국문인협회 고창지부가 공식 창립됐고, 1998년 모양문학회와 통합되면서 현재의 형태로 자리 잡았습니다. 반세기를 넘는 시간 동안 지역 문학 발전에 힘써 온 대표적인 문학 단체입니다. 현재 100여 명의 회원들이 시, 시조, 수필, 소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상인 초대 회장을 시작으로 많은 지역 문인들이 고창 문학의 뿌리를 다져왔고, 지금도 ‘고창문학상’을 비롯해 ‘꽃무릇 시화전’과 ‘시 낭송회’, ‘고창문학’ 발간 등 다양한 문학 행사를 주관해 왔습니다. 단순한 문학 모임을 넘어, 지역의 정체성을 담아내고 문학으로 공동체를 잇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지역 내 다양한 문화·예술계와의 교류도 활발히 이어가며, 융합적 문학 활동도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협회는 고창의 문학 정신을 계승하고, 새로운 세대와 연결하는 문학 플랫폼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고창 문학의 뿌리와 미래를 함께 다지는 일이 저희의 사명입니다.
고창문학이 지닌 정체성과 과제
●그동안 고창 문학이 걸어온 길을 어떻게 평가하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싶은가? 소개하고 싶은 고창의 문학인이나, 고창 문학의 정체성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고창문인협회는 그 전신인 모양문학회를 포함해 65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지역 문학의 토대를 다져왔습니다. 고창 문학은 유려한 자연과 깊은 역사를 품은 땅에서, 사람과 생명을 존중하는 말들을 써왔습니다. 조용하지만 단단한 언어로, 이 땅의 문학은 오늘도 삶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협회가 항상 유쾌하고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운영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문학 공동체의 수레바퀴도 자연스럽게 잘 굴러갈 것이라 믿습니다. 둘째, 회원 각자의 생각과 방향은 다르겠지만, 함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면 분명 변화와 혁신도 이뤄질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갈수록 원로 문학인의 비율이 높아지고 젊은 신인들의 활동은 저조할 뿐입니다. 고창문인협회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신인 문학인 발굴 및 저변 확대는 무엇보다 절실하며, 이를 위한 신규 회원 모집에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앞으로는 문학 강좌와 토론 활성화를 통해 회원들의 창작 역량을 높이고자 합니다. 저는 고창의 역사와 정신을 한 평생 기록하고 지켜온 이기화 선생을 깊이 존경합니다. 선생께서 발굴하고 엮은 수많은 향토사 자료와 문학적 실천은 고창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묵묵히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협회를 ‘삶과 기억이 공존하는 문학 공동체’, ‘세대와 장르를 잇는 지역문화의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그 길에 지역사회와 회원 여러분의 연대와 참여가 함께하길 기대합니다
협회 운영의 현실과 공간의 부재
●협회를 운영함에 있어 어려운 점이 있다면? 앞으로 중점을 두거나 정비하고 싶은 부분은 있다면? 가장 아쉬운 점은 협회만의 독립된 활동 공간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현재는 회의나 모임이 있을 때마다 장소를 빌리거나 임시방편으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타 지역의 경우, 여러 예술단체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예술회관이 마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고창에도 그러한 공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 있어야 활동의 기반도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앞으로 고창문인협회는 문학활동을 위한 모든 것을 공개·공유하여 모든 회원들이 결집하는데 역점을 두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회장 한 사람이 아닌 전 회원이 임원으로서의 자격을 갖고 활동해야 한다는 지론입니다. 시급히 정비해야 할 것은 없지만, 특히 젊은 층의 문학 참여가 저조한 현실은 협회의 미래를 고민하게 합니다. 신규회원 모집과 연계하여 정회원의 숫자가 지금보다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문학이 군민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
●“문학으로 군민의 마음을 치유하고 화합의 장을 마련하겠다”고 취임사에서 밝혔다. 보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실천할 계획인가? 전국의 문학단체들을 살펴보면, 북콘서트 등 다양한 형태로 주민들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으며, 지자체 뿐만 아니라, 복지시설·종교기관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문학 활동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고창문인협회도 비슷한 취지로 ‘꽃무릇 시화전’을 열고 있습니다만, 다양한 활동을 위해서는 예산 확보가 필요합니다. 문학단체는 늘 빈곤하기만 합니다. 자체 회비를 충당하여 추진하기란 어려운 현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허강공방에서 나무와 시를 만나다
●공직 퇴직 이후 ‘허강공방’을 운영하며 목공예와 문학을 함께 이어오고 있다. 공방 활동이 문학에 어떤 영감을 주는지 궁금하다: 허강공방에서 나무를 다듬는 일은 시를 쓰는 일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손끝의 정성이 필요하고, 무언가를 깎아내며 형태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 언어를 다듬는 것과도 흡사합니다. 공방에 방문하는 분들은 나무에서 나는 향에 취하고, 그 결이 전하는 따뜻함을 경험하고 갑니다. 직선에서 곡선으로 가는 미적 감성이, 나무를 다루면서 표현하는 미학이 글로써 탄생됩니다. 여성 수강생이 많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희 허강공방에는 전국에서 오는 문인 예술가들이 끊임없이 찾아오곤 합니다. 목공예의 매력이란 차향을 음미하는 것처럼, 묵향에 빠지는 것처럼 목공예가 주는 매력에 시 한 수 금방 써진답니다. 특히 등공예나 현판 작업을 할 때, 문학적 문구나 시어를 새겨 넣으며, 언어의 물성을 다시 경험하게 됩니다. 공방은 단지 생업의 공간이 아니라, 제 문학적 사유의 거점이기도 합니다. 두 작업이 서로를 북돋아 좋은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정형 속에 자유를 담는 시조의 매력
●시조라는 장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현대 문학에서 시조의 매력과 가능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시조는 우리 고유의 정형시로, 전통 속에서 단아함과 절제미를 간직해온 문학 장르입니다. 저는 그 형식미와 운율 속에서 오히려 더 자유롭고 깊은 감정의 진폭을 느낍니다. 시조는 형식 안에 담긴 깊이와 여백의 미가 있어서 더욱 매력적입니다. 현대어로도 충분히 재해석이 가능하고, 다양한 주제와 감정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 저는 시조가 단지 옛 양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 창조적 장르라 믿습니다. 시조는 짧지만 농축된 언어로 큰 울림을 주는 특성이 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시조의 서정성과 단정한 감성이 새롭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행사의 의미와 변화의 방향
●협회의 활동 중에 보완할 부분이 있다면? 새롭게 구상 중인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가? 기존의 문학상과 시화전, 낭송회는 고창문학의 얼굴이자, 고창문학의 뿌리를 이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운영 측면에서 군민 참여를 조금 더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입니다. 예산이 넉넉하지 않다 보니 새롭고 큰 기획을 시도하기는 어렵지만, 외적으로는 다른 지역의 문학단체와 문학교류 행사를 추진하고 싶고, 내적으로는 회원상호간 릴레이 글짓기(시·시조)를 해보고 싶습니다. 전자는 예산이 많이 따르지만, 후자는 회원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중요합니다. 고창문학카페와 단체카톡방을 이용하겠습니다.
젊은 문학도를 기다리며
●새로운 회원이나 젊은 세대의 유입을 위해 구상 중인 것이 있다면? 고창문학카페에는 현재 약 400여 명의 회원이 등록돼 있으며, 이 가운데 실제로 적극 참여·활동하는 회원은 100여 명 정도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장년층으로 구성돼 있어, 젊은 세대의 유입은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제 임기 동안에는 신입 문학도 영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약속을 드린 바 있어, 노력 여하에 따라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아울러 고창으로 귀향하거나 귀촌한 문인들도 직접 찾아 나설 계획입니다. 매년 열리는 꽃무릇 시화전을 통해 젊은 신인들의 소모임 활동방을 마련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하겠습니다.
문학이 삶을 지탱해준 이유
●회장님 개인에게 문학이란 무엇인가? 저에게 문학은 삶을 견디게 하는 버팀목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창입니다. 공직 생활 중에도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시조 한 편이 하루를 지탱하게 해준 적이 많았습니다. 퇴직 후에도 문학은 저를 지탱해주는 친구 같은 존재였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풀어낼 수 있는 통로였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진심 어린 언어로 사람과 자연, 삶의 단면들을 시와 시조에 담아내고 싶습니다. 문학이 제게 준 위로를 다른 이에게도 건넬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문학은 결국 ‘마음을 나누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시조집을 발간하고, 그간 지어온 시도 퇴고를 거쳐 2집을 세상에 내놓고 싶습니다. 궁색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글쓰기를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제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 믿습니다.
군민에게 전하는 문학의 자리
●고창군민과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께 한 말씀 부탁드린다: 저는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상황에 있든 늘 시나 시조를 떠올리며 살아왔습니다. 즉 머릿속에는 항상 시를 짓는다는 개념이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한 편의 시를 읽고 음미해 볼 수 있다면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때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진실을 담아 적절한 단어로 표현하면, 누구나 작가입니다.
고창은 문화와 예술의 향기가 깊은 고장입니다. 그 중심에 문학이 있습니다. 문학은 우리 삶의 기록이며, 때로는 위로와 희망의 언어가 되어줍니다. 저는 문학이 군민 여러분의 삶 속에서 더욱 가까워지기를 바랍니다. 누구나 시를 읽고, 쓸 수 있고, 나눌 수 있다는 믿음으로 협회를 이끌겠습니다. 문학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말과 생각, 기억 속에 늘 존재해 왔습니다. 고창문인협회가 군민과 함께 호흡하며, 지역 문화를 지키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가 큰 힘이 됩니다. 언제든지 문을 두드려 주십시오. 문학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며, 문학이 따뜻한 위로이자 삶의 반려가 되는 순간들을 함께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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