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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는 이제 남은 여생이 아니라 세 번째 삶이다. 고창군이 8월27일 오후 동리국악당에서 ‘군민 행복 고창포럼’을 열고 지역출신 오종남 서울대 명예주임교수를 초청해 ‘슬기로운 노후 독립’을 강의했다. 장 수시대라는 환경 변화 속에서 지역 주민의 삶을 지탱할 실천 해법을 짚는 자리로 마련됐다. 평균수명 증가의 현실과 노후 공백의 구조를 직시하고, 자녀·국가 의존을 넘어서는 ‘홀로 서기’ 전략을 제시했다.
한국인의 ‘슬기로운 노후 대비’를 고민하는 경제학도 오종남 교수는 1952년 3월 고창 아산면에서 출생하여, 석곡초등학교와 고창중학교, 광주고등학교를 거쳐 1975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공직에 입문했다. 이후 경제기획원 근무를 시작으로 4개 분야 대통령 비서관, 제7대 통계청장, 한국인 최초의 아이엠에프(IMF·국제통화기금) 상임이사 등으로 일하며 한국 경제 발전의 증인이 되었다. 2006년부터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 서울대학교 과학기술산업융합최고전략과정 명예주임교수, 서울대학교 에스엔유(SNU) 홀딩스 이사회 의장 등으로 여전히 활발하게 일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현명하고 지혜로운 노후 대비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날카로운 통찰과 행정가로서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슬기로운 노후 독립’의 방법을 제시한다. 강연은 최근 출간한 『슬기로운 노후 독립』(21세기북스)의 구성을 토대로 진행됐고, 『은퇴 후 30년을 준비하라』,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한국인 당신의 미래』 등 저작을 통해 축적된 문제의식과 사례가 함께 소개됐다.
장수시대, 축복인가 재앙인가
오종남 교수는 1960년 52세였던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2024년 84세로 늘어난 사실을 제시하며 포럼의 문을 열었다. 그는 “장수는 준비된 사람에게는 축복이지만, 준비되지 않은 이에게는 재앙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년이 60세 전후에 머무는 현실에서 ‘노후 공백기 30년’이 일상화되었고, 사전 대비가 부족하면 빈곤·고립·무력감 같은 문제로 밀려날 수 있다는 점을 수치와 함께 짚었다. 한국의 고령자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1위이며, 노인 빈곤율이 40퍼센트에 달한다는 지표를 함께 전한다. 그는 이러한 현실 진단을 바탕으로, 생애 후반부의 설계를 ‘누군가의 도움’이 아니라 ‘스스로의 실행’으로 채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세시대의 생애설계, 길고 슬기롭게
그는 인생을 성장기(교육·학습), 활동기(직업·성취), 성숙기(지혜·공헌), 완성기(성찰·의미)로 구분해 설명했다. 과거의 평생직장 공식은 디지털 플랫폼 기반의 단기 일자리 확산, 가족 개념의 변화, 일과 배움의 경계 약화로 실효성이 낮아졌다고 진단했다. 이에 ‘인생다모작’이 필수라는 결론을 제시하며, 후반 생애를 ‘끝’이 아닌 ‘완성’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노화를 피할 수는 없지만 노쇠는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영양과 운동에 더해 감정관리의 일상화를 제안했다. 긍정 정서를 유지하는 습관이 건강과 직결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파트너십과 프렌드십, 노후의 안전망
오 교수는 노후를 지탱하는 핵심으로 파트너십과 프렌드십을 들었다. 그는 자녀에게 의존하는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배우자를 “가장 오랜 친구이자 버팀목”으로, 지인과의 유대를 고립을 막는 장치로 규정했다. 그는 △자녀에게 미리 재산을 넘겨주는 노부부 △손주 돌봄으로 자신을 소진하는 노부부 등을 사례로 들어, 자녀 관련 선택에서 올인 대신 절반만 투자하는 ‘하프인’의 균형 감각을 제안했다. “늙을수록 더욱 기백이 넘쳐야 한다(노당익장)”는 문장을 통해, 분수에 맞는 소비와 품위 있는 삶을 노년의 기준으로 제시했다.
긍정의 태도와 ‘실천’의 힘
그는 삶에서 마주친 난관을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전환했던 경험을 소개했다. 대학 재수 시절 책상 앞에 “재수의 이름을 수재로 바꿔라!”라는 문장을 붙이고 버텼다는 사례는 그의 전환법을 상징한다. 스스로를 ‘흙수저’라고 표현한 그는,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전쟁 미망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던 유년을 회고하며, 처지를 원망하기보다 포지티브 씽킹(Positive Thinking·긍정적 사고)으로 해석하고 실행에 옮겼다고 말했다. 포럼은 “노후 대비는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전했다.
퇴직의 재정의: 리타이어가 아닌 리-타이어
그는 은퇴를 리타이어(retire·퇴직)가 아니라 리-타이어(re-tire·바퀴 재장착)로 이해하자고 제안했다. 이 비유는 “최고의 은퇴는 은퇴하지 않는 것”이라는 단정으로 이어진다. 즉, 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고, 필요하면 바퀴를 갈아 끼듯 역할과 방식을 바꿔 새로운 길을 달리라는 것이다. 이는 경제활동의 연장 자체보다, 삶의 주도권을 잃지 않는 태도를 강조하는 취지로 설명됐다.
‘30+30+30’ 공식, 여생이 아닌 세번째 30년
그는 삶의 공식을 ‘30+30+30’으로 정리했다. 자녀로 살던 앞의 30년, 부모 역할의 30년을 지나, 환갑 이후에도 또 다른 30년을 살아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현실 요약이다. 세번째 30년을 ‘여생’이 아닌 ‘새로운 생’으로 규정하고, 이 구간의 출발 요건을 두 가지로 압축했다. 하나는 최소한의 삶을 지탱할 경제적 독립, 다른 하나는 품위를 유지하며 행복을 체감하려는 다짐이다. 그는 “나이 든다는 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는 문장으로 이 구간의 핵심을 정리했다.
욕망 관리와 행복의 수식
오 교수는 노년의 행복과 욕망 관리가 정비례한다고 설명했다. ‘행복지수=가진 것/바라는 것’이라는 간명한 수식을 제시하며, 가진 것이 많아도 바램이 과도하면 체감 행복은 낮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예수의 산상수훈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를 인용하며, ‘마음이 가난한 자’를 ‘욕심을 다스리는 자’로 해석했다. 바램의 수준을 관리하는 일이 성취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를, 생활 감각의 언어로 설명한 대목이다.
지식·기술·일의 재설계: 긱 이코노미와 에이아이
그는 노년의 시간 운영을 위해 긱 이코노미(gig economy·플랫폼 기반 단기 일자리)와 에이아이(AI·인공지능) 교육, 온라인 학습을 유용한 도구로 제시했다. 긴 노년을 연금만으로 버티지 말고, 배움과 일의 경계를 허물어 작은 보탬과 자존을 함께 얻자는 맥락이다. 이는 변화 자체를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마주하는 태도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앞선 ‘리-타이어’의 비유와도 연결된다.
시와 함께 열린 강의, 시로 맺은 메시지
강연은 윤동주 시인의 「서시」로 시작해 조동화 시인의 「나 하나 꽃 피어」로 마무리됐다. 진행 방식은 통계와 제도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을 설명하고, 시 구절과 일상의 언어로 실천 메시지를 전달하는 흐름이었다. 이는 그가 경제기획원, 대통령 비서관, 통계청장, 아이엠에프 상임이사 등 다양한 공직 경험을 거치며 체득한 ‘사실의 언어’와, 일상을 바꾸는 ‘생활의 언어’가 결합된 방식으로 읽혔다.
저작과 메시지, 포럼의 핵심 문장들
최근 저서 『슬기로운 노후 독립』은 장수 시대의 노후 설계를 ‘자녀·국가 의존이 아닌 독립’이라는 축에 맞춰 재편하자고 제안한다. ‘은퇴 전 대비 시작’, ‘경제·심리·사회 전 영역의 입체적 준비’, ‘배우자와 지인과의 유대를 통한 고립 방지’, ‘에이아이(AI·인공지능) 등 과학기술의 생활 적용’ 등의 항목을 제시한다. 포럼 현장에서는 이 메시지들이 사례와 문장으로 반복·정리됐다. 그는 “노년에도 직업을 갖기 위한 노력이 바람직하다”, “끊임없는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실행으로 이어지는 작은 습관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배려회복운동, 세번째 30년의 과제
그는 세번째 30년의 후반부에 하고 싶은 일로 ‘배려회복운동’을 언급했다. 한국이 과거 결핍의 시대를 지나 ‘케이(K) 문화’가 세계에서 호응을 얻는 국면에 들어섰지만, 생활 현장에서 서로를 살피는 마음이 약해졌다는 문제의식이다. ‘배려(配慮)’를 “상대를 깊이 생각하며 조화롭게 나누는 마음”으로 정의하고, 이를 일상 규범으로 회복하자는 제안을 남겼다. 이는 지역 공동체의 생활 질과도 맞닿아 있는 과제라는 점에서, 포럼의 주제 ‘군민 행복’과 논리적으로 이어진다.
현실 진단에서 실행으로: 자립·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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