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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관광”을 넘어 “사는 예술”로
육백여 년 역사를 간직한 고창읍성 서문(진서루) 옆에 ‘전통예술체험마을’이 문을 열었다. 8월26일 개관식에서 한옥 일곱 채가 밝힌 불빛은 지역 무형유산과 명인·명장이 엮어내는 예술혼을 비추며, 고창군이 지향해 온 ‘문화로 성장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도시’ 비전을 입증했다. 군은 숙박 위주의 한옥단지를 창작·체험 중심 공간으로 과감히 전환했고, 이 선택은 전통예술을 일상 속 체험으로 끌어올려 관광과 지역문화의 흐름을 동시에 바꿀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숙박시설에서 전통예술공간으로…창의적 용도변경의 결실
전통예술체험마을은 애초 2021년부터 추진된 ‘고창읍성 대표관광지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한옥숙박체험시설로 설계가 진행됐다. 하지만 단순 숙박보다 지역의 무형유산과 장인 정신을 실시간으로 체험할 수 있는 ‘살아 있는 공간’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고창군은 2024년3월 군정조정위원회를 거쳐 전통예술체험 중심 공간으로 용도 전환을 결정했다. 2024년 7월에는 체험 기능을 반영한 설계 변경이 이뤄졌고, 12월 공사를 마무리한 뒤 2025년 6월 (재)고창문화관광재단과의 위·수탁 계약을 체결하며 본격 운영 기반을 확립했다.
재단은 보리재를 중심으로 전시·교육·체험 프로그램의 운영을 맡고, 마을운영위원회와 체험동 입주자가 협력하는 구조를 이룬다. 각 동의 명인·명장이 체험 품질을 이끌고, 재단은 일정·홍보·안내를 총괄하는 역할을 나눈 구성이 자료에 제시됐다.
이번 용도 전환은 기본적 시설 활용을 넘어 전통문화 자원의 창의적 재해석이라 점에서 주목된다. 심덕섭 군수는 “전통의 맥을 잇고 미래 가치를 만드는 공간이 드디어 문을 열었다”며 “예술가들과 함께 고창 대표 체험 프로그램을 완성하겠다”고 강조했다. 고창군은 체험마을을 “문화로 성장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도시 고창”이라는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다지는 문화전략의 실제 공간으로 구현하고 있다.
전통예술의 생동감, 7채 한옥에 담다
체험마을은 총 7동의 전통 한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공간에는 분야별 장인과 예술단체가 입주해 직접 체험을 운영한다. 이 외에도 관리사무소가 별도로 마련되어 방문객 문의와 편의 제공을 맡는다.
■흙과 불이 빚는 예술, 황토재―전통자기 유춘봉 명인이 상주하며 도예체험을 안내하는 공간이다. 기념품 수령에 그치는 체험이 아니라, 참여자가 스스로 빚고 굽는 과정을 통해 도공의 삶과 정신을 이해하도록 설계됐다.
■소리와 몸짓이 만나는 마당, 소리재―(사)동리문화사업회가 주도하는 판소리 체험 공간으로 마련됐다. 인류무형문화유산인 판소리를 듣고 배우는 프로그램을 통해 전통 소리의 깊이를 지역 현장에서 경험하도록 한다. 북과 소리의 울림이 한옥 마당을 채우는 구조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교육·체험의 역할을 수행한다.
■손끝의 집중과 전승, 풍요재―전북무형문화재 박미애 자수장의 전통자수와 매듭 체험이 열린다. 바느질과 매듭의 정교한 과정은 느림의 가치를 체감하게 하는 체험 동선으로 구성됐다. 참여자는 전수의 의미를 배우며 작품을 완성하는 시간 속에서 집중과 호흡을 익힌다.
■자연의 빛을 입히다, 솔향재―천연염색의 김영남 명장이 참여하는 체험공간이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바탕으로 색을 입히는 과정을 통해 친환경적 전통 염색의 장점을 확인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공정 하나하나가 재료의 물성과 손의 온도를 드러내는 교육적 체험이다.
■전시와 교육의 허브, 보리재―문화예술교육 및 전시 공간으로 고창문화관광재단이 관리한다. 현재 국가무형유산 윤도장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특별전시와 한복대여소 운영도 계획돼 있다. 전시·교육·체험을 결합한 운영이 예고됐다.
■초가의 개방성, 해뜰채―마을 내 유일한 초가로 공용체험실이다. 전통예술체험과 전시가 함께 이루어지는 구조로, 누구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개방형 공간으로 설계됐다.
개관식, 고창의 문화정체성을 보여준 자리
8월26일 오후, 체험마을 개관식은 풍요재 앞마당에서 열렸다. 행사에는 심덕섭 고창군수, 조민규 고창군의장, 운영위원회 위원, 입주 예술인, 지역 문화예술인 등이 참석했다. 정관채 국가무형유산(염색장) 보유자가 나주에서 먼 길을 찾아 참석했고, 고인돌농악단의 길놀이와 일렉트릭 클래식 공연 ‘클래트릭스’가 분위기를 띄웠다. 이후 진채선선양회가 참여한 전통음악 공연이 이어졌고, 현판식과 시설 관람으로 이어진 공식 일정은 차분하게 마무리됐다.
개관식에 맞춰 국가무형유산 윤도장 특별전시와 도 무형유산 자수장 공개시연회가 열렸다. 전시는 보리재를 중심으로 관람 동선을 구성하고, 시연은 제작 과정의 맥락을 현장에서 보여주는 형태다. 개관식의 성격은 단순한 준공행사가 아닌, 전통과 현대의 접점에서 고창 문화정책의 방향성을 드러낸 실천적 무대였다. 공간의 상징성뿐 아니라, 이 마을에 깃든 예술의 의미와 체험의 철학이 군민과 방문객에게 체감되는 계기였다.
관광에서 삶으로…새로운 지역문화 플랫폼 실험
고창전통예술체험마을은 ‘보는 관광’이 아니라 ‘참여하고 머무는 관광’으로의 전환을 지향한다. 일회성 방문이 아닌, 체험과 학습을 통해 전통을 일상의 경험으로 녹여내는 관광 모델로서 기능하게 된다. 지역주민과 예술인이 함께 이끌어가는 이 공간은 예술향유와 창작, 교육이 동시에 일어나는 살아 있는 문화공간이다.
고창문화관광재단은 ‘문화살롱’ 원데이 클래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가족단위 방문객을 위한 체험형 프로그램, 청년세대의 감각을 반영한 소셜미디어(SNS·에스엔에스) 인증형 콘텐츠, 외국인을 위한 집중형 한국문화체험, 시니어층 대상의 맞춤형 프로그램까지 연령·국적별로 특화한 운영 전략이 제시되고 있다. 체험스탬프 투어, 에스엔에스(SNS) 챌린지, 체험 브이로그(Vlog·영상 블로그) 공모전, 인플루언서 협업, 야간 프로그램 운영, 분기별 테마행사 등 콘텐츠와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강화도 함께 검토되고 있다.
가족 단위 고객에게는 맞춤형 전통공예 코스를, 시니어층에게는 치유형 천연염색·자수 과정을, 외국인 방문객에게는 집중 판소리·한복 체험 패키지를 제공해 체류 시간을 늘린다. 이러한 세분화 전략은 ‘관광객 지출 증가→지역경제 활성화→문화예술 생태계 확장’이라는 선순환을 구축할 잠재력을 지닌다. 체험마을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면 ▲한옥 자체의 공간미학을 살린 야간 프로그램 ▲계절별 테마 축제 ▲명인·명장 협업 굿즈 개발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한옥 일곱 채에 담긴 예술의 철학
고창 전통예술체험마을은 이제 막 문을 열었다. 하지만 600년 고창읍성과 나란히 호흡하며, 수백 년을 이어온 전통예술의 정신을 현대인의 삶으로 불러들이는 고창군의 문화 실험은 이미 시작됐다. 무형유산·명인·명장이 한 공간에서 숨 쉬며, 군민과 여행자가 함께 예술을 창조하는 과정 자체가 지역문화의 미래를 견인하는 자산이 된다. 이제 과제는 다양성 있는 프로그램, 지속 가능한 운영 재원, 관광산업 전반과의 유기적 연계를 통해 ‘머무르는 문화도시’로 자리매김하는 일이다.
고창군은 전통예술체험마을을 통해 체험의 일상화와 전승의 생활화를 병행함으로써 ‘문화로 성장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도시 고창’이라는 방향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화는 누군가에 의해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경험하고 스스로 의미를 발견할 때 진정한 힘을 가진다. 전통예술체험마을은 바로 그 출발점에 있다. 무형유산과 명인·명장이 머무는 이 마을은 지금, 고창이 품은 전통의 철학과 현대적 감각이 공존하는 새로운 무대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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