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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의 여성 국창(國唱)’ 진채선. 그녀의 삶과 예술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경계를 넘는 용기와 문화적 책임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지난 9월1일 고창군 심원면 사등마을에서는 진채선을 기리는 제5회 ‘진채선의 날’ 기념행사가 열렸다. 진채선기념사업회(회장 라남근)와 진채선선양회(회장 최혜진)가 공동 주관한 이 행사는, 진채선의 예술 정신을 오늘의 문화적 실천으로 되살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후 본지는 진채선 선양사업의 방향과 의미, 그리고 지역문화의 가능성에 대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라남근 기념사업회장을 직접 만났다. 인터뷰는 9월12일 오후 3시, 고창군 무장면사무소 인근 카페에서 진행됐다.
회장 취임 동기 및 진채선의 상징성―지역이 품은 ‘시대의 목소리’
심원면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저는 지역의 숨은 인물을 발굴하는 ‘심원다움’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특히 ‘조선 최초의 여성 국창’ 진채선 선양사업에 면민들과 함께 뜻을 모았고, 기념사업회 구성 당시에는 공동준비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정년퇴직 이후에도 이 일은 제 삶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면민들께서 “이제는 책임지고 이 일을 맡아야 한다”고 등 떠밀듯 권하셨고, 올해 1월부터 회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본질적으로는 ‘문화가 사람을 살린다’는 저의 오랜 신념이 이 일과 맞닿아 있기에 기꺼이 수락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선양사업이 다른 면지역에서도 하나씩 진행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진채선은 단순히 ‘조선 최초의 여성 명창’이라는 타이틀을 넘어, 당대 사회의 편견과 제약을 뚫고 자기 목소리로 예술의 길을 개척해낸 인물입니다. 그녀의 삶은 한 여성 개인의 성공담에 그치지 않습니다. 한 여성의 삶이 어떻게 한 시대의 예술사, 사회사, 여성사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입니다. 고창이라는 지역이 이런 인물을 품고 있다는 사실은, 단지 지역의 자랑을 넘어 지역이 지닌 고유한 ‘정신적 자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채선의 예술적 가치는 판소리의 전통을 계승하고 새롭게 확장시켰다는 데에서 단연 빛납니다. 구술 전승 중심의 판소리 세계에 진채선은 ‘여성의 목소리’로 참여함으로써 판소리 서사의 지평을 확장했고, 이는 이후 수많은 여성 소리꾼들이 예술의 무대에 설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술만으로는 진채선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조선 말기, 신분과 성별의 이중 장벽을 뛰어넘어 스스로 삶을 선택했던 인물이고, 그 선택의 용기는 지금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고창에서 진채선이 갖는 의미는 더욱 특별합니다.이곳은 동리 신재효 선생이 판소리를 이론화하고 체계화한 고장이며, 진채선은 그의 제자이자 그 이론을 무대에서 실현한 실천자였습니다. 단지 사제 관계를 넘어, 고창에서 완성된 판소리의 역사 속에 진채선이라는 여성 예술가가 중심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또한 고창이 한국 판소리 문화의 ‘정신적 발원지’라는 위상을 가지는데 핵심적인 기반이 됩니다.
진채선 선양사업은 고창이라는 지역이 스스로의 문화적 정체성을 어떻게 재발견하고, 다음 세대에게 어떤 문화자산을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기도 합니다. 진채선을 통해 고창은 단지 ‘전통을 보존하는 곳’이 아니라, 여성 예술가의 삶과 목소리를 기억하고 오늘의 예술로 재해석해내는 ‘문화 실천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진채선을 기억하는 일은 결국, 고창이 문화의 주체로서 스스로를 선언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진채선의 날’ 추진 내용과 성과―‘진채선상’ 제정…예술가의 용기에 바치는 응원
‘진채선의 날’이 올해로 다섯 번째를 맞았습니다. 처음 이 기념일을 제정하고 행사를 기획할 때부터 우리가 가장 중점을 둔 목표는, 진채선을 단순히 ‘조선 최초의 여성 명창’이라는 상징으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정신과 삶의 궤적을 오늘의 예술과 공동체 문화 속에서 구체적으로 되살리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기념을 위한 기념이 아니라, 실천으로 이어지는 기념을 지향했습니다.
지역 주민, 예술인, 소리꾼들이 함께 참여하는 문화적 공론장이자 실천의 장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올해 처음 제정된 ‘진채선상’ 역시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습니다. ‘진채선상’은 우리 시대의 ‘예술적 용기’와 ‘문화적 개척정신’을 실천하는 이에게 드리는 상입니다. 진채선처럼 자신의 목소리로 경계를 넘고, 예술의 길을 묵묵히 개척해가는 분을 응원하고자 했습니다. 첫 수상자는 지역 문화예술계 내부 추천과 검토 절차를 거쳐, 진채선 정신과 가장 맞닿아 있다고 판단되는 분을 선정했습니다. ‘진채선상’ 제정의 배경에는 분명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진채선을 기념한다는 것은 곧 그 정신을 오늘 우리 시대 속으로 되살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뜻을 잇는 예술인을 해마다 한 사람씩 발굴하고 응원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진정성 있는 기념사업이라 생각했습니다.
초상화·자료화 등 향후 사업 방향―영정 제작에서 사단법인 설립까지…진채선 선양사업의 구체적 로드맵
이번 제5회 진채선의 날 행사에서 고창군에 제안드린 ‘진채선 국창 초상화 영정 모시기’는 단지 하나의 조형물 설치에 그치지 않습니다. 진채선이라는 실존 인물에 대한 문화사적 복원과 상징적 재현, 그리고 후대의 기림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조선 최초의 여성 국창이자 역사기록 속 실존인물임에도 아직까지 위상을 반영한 공적 영정조차 없는 현실은 분명 아쉬운 지점이며, 이는 단지 기념사업회의 몫을 넘어 지역사회와 공공이 함께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구체적인 실현을 위해, 먼저 고창군 차원에서 ‘진채선 초상화 제작 및 봉안사업’을 공식 문화기념사업으로 추진하기 위한 행정적 절차가 필요합니다. 이어서 전문가 자문단을 구성해 ▲기록에 기반한 고증 ▲도상학적 해석 ▲작가 선정 ▲제작 방식 결정 등의 과정을 공정하고 신중하게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완성된 초상화 영정은 고창 내 적절한 장소(예: 진채선 사적지 복원 공간 등)에 봉안하여, 지역 주민과 방문객 모두가 함께 기억하고 기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념사업회 차원의 중장기 계획으로는, 먼저 내년에 진채선기념사업회와 진채선선양회를 통합해 사단법인을 전환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지역 주민, 예술인, 연구자 등 다양한 주체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기반이 형성될 것이며, 진채선 선양사업의 체계적 도약을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현재 기념사업회는 ‘진채선의 날’ 개최 외에도 진채선 관련 유무형 자료의 수집과 정리, 지역 문화자원과 연계한 기획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향후 중점적으로 계획하고 있는 사업은 다음과 같습니다. ▲진채선 관련 자료의 체계적 수집 및 구술 채록 ▲사적지 공간의 재구성 및 리모델링 ▲학술연구 연계 및 출판 ▲디지털 아카이브와 영상 콘텐츠 제작 ▲국내외 문화예술 교류 프로그램 구상 등입니다. 결국 진채선 선양사업은 한 명의 예술가를 기리는 동시에, 고창의 정체성과 예술적 저력을 재발견하고, 동시대 문화공동체의 삶과 맞닿는 방식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 문화정책과 연계한 비전―‘판소리의 고장’을 넘어 ‘여성예술 서사의 중심지’로
현재 고창군이 ‘진채선 선양 발전방향 및 생가조사 연구용역’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이번 용역은 동리문화사업회가 맡아 수행하고 있으며, 진채선선양회장인 최혜진 교수가 총괄을 맡고 있습니다. 이 연구의 성과는 향후 진채선 선양사업이 한 단계 도약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진채선은 조선 후기 예술계의 유리천장을 깨고 국창의 반열에 오른 여성 명창이자, 고창에서 태어나고 자란 지역 여성이라는 점에서 역사적·문화적 상징성이 큽니다. 우리는 진채선을 통해 고창이 단순히 ‘판소리의 고장’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여성 서사의 중심지’, ‘공공예술 기억의 실천지’로 자리매김하길 희망합니다. 더 나아가, 고창이 ‘동리 신재효’와 더불어 ‘진채선’이라는 이원적 구도를 통해, 한국 판소리 생태계의 기점이자 중심축으로서 정책적·문화적 확장을 도모하겠습니다. 진채선 기념사업은 단지 과거를 기리는 일이 아닙니다. 고창이 예술로 미래를 기획하고, 여성서사와 지역문화의 결을 연결하는 문화정책의 살아있는 현장이 되도록 하는 일입니다. 이제 그 출발선에 지역사회가 함께 서자는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개인적 포부와 진채선의 정신―예술로 경계를 넘어선 고창의 이름
기념사업회장으로서 개인적으로 남기고 싶은 가장 큰 성과는, ‘진채선’이라는 이름이 한 인물의 기념을 넘어, 고창이라는 지역이 지닌 이야기의 힘, 문화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자리잡는 것입니다. 진채선은 조선 최초의 여성 명창이라는 상징을 넘어, 수많은 편견과 경계를 넘어 예술로 생애를 일궈낸 인물입니다. 저는 그 정신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며, 우리가 품어야 할 가치라고 믿습니다.
군민 여러분께 꼭 전하고 싶은 진채선의 정신은 “경계를 넘어선 용기, 예술로 역사를 바꾼 품격”입니다. 고창은 과거를 기억할 줄 아는 고장이자, 그 기억을 다음 세대에게 품격 있게 전할 줄 아는 지역입니다. 진채선은 남성 중심 판소리 계보에서 자신의 이름을 또렷이 새긴 예술가입니다. 우리가 그 이름을 불러주고 기리는 일은 단지 한 명의 예술인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 고창이 지닌 문화적 용기와 책임을 표현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채선을 기리는 우리의 기념사업은 고창이 스스로의 문화정체성을 더욱 깊고 분명하게 다지는 여정이자, 미래세대에게 지역의 뿌리와 자긍심을 전하는 실천입니다. 그 길에 군민 여러분께서 함께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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