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주간해피데이 | |
|
|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고준위방사성폐기물법)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고창군과 부안군이 인근지역 배제와 재정지원 공백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심덕섭 고창군수와 권익현 부안군수는 9월18일 오전 전북특별자치도의회 브리핑룸에서 ‘전국원전인근지역동맹 행정협의회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시행령에 대해 “주민 안전권을 침해하고 형평성을 무너뜨린 불합리한 조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전국원전인근지역동맹은 2019년 핵발전소 안전과 지원제도 개선을 위해 결성한 이래로, 2023년 행정협의회로 전환하며 23개 지자체가 회원도시로 가입해 있다.)
정부는 9월16일 국무회의에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부지 선정과 임시저장시설 설치를 핵심으로 하는 시행령을 의결했다. 하지만 시행령은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 설치를 허용하면서도 주민 동의 절차와 공론화 과정을 생략했고, 핵발전소(원자력발전소=원전) ‘주변지역’을 반경 5킬로미터로 한정해 인근 지자체의 실질적 참여를 배제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고창군과 부안군은 “임시저장시설이 장기적으로 영구화될 가능성이 크고, 정부는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국제적으로 확장된 30킬로미터 방사선비상계획구역 기준을 외면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심덕섭 고창군수는 “고창 해안과 부안 위도 앞바다에서는 원전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깝고, 어업인들은 온배수로 인한 생태계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며 “주민들은 실제 피해권 안에 있음에도 법령은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5킬로미터만을 주변지역으로 규정해 제도의 사각지대를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지난해 지방재정법 개정으로 일부 지자체가 지역자원시설세 지원을 받게 됐지만 고창·부안·삼척·양산·유성 등 5곳은 행정구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여전히 제외됐다”며 별도의 재정지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권익현 부안군수는 협의회장 자격으로 “방폐물 처분시설 설치 시한을 ‘노력한다’는 임의규정으로 둔 것은 임시저장시설의 장기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며 “원전과 동일한 위험에 놓인 인근 지자체를 지원에서 배제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주민 동의 없는 일방적 법제화를 추진한다면 지역 갈등은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고창군과 부안군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다섯 가지를 촉구했다. ▲주변지역 범위를 원전 반경 30킬로미터로 확대 ▲실질적인 주민 동의 절차의 법제화 ▲임시저장시설 영구화 방지 대책 마련 ▲고창·부안·삼척·양산·유성 등 5개 지자체 재정지원 근거 마련 ▲원자력 안전 교부세 신설을 통한 안정적 재원 확보를 제시했다. 이들은 “원전 인근 503만 주민의 생명과 안전은 일부 지역의 희생으로 해결될 수 없다”며 제도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정부가 이 요구를 수용해 제도를 전면 재정비한다면, 원전 인근 주민의 기본권인 안전권과 오랫동안 방치돼온 재정 불균형 문제를 바로잡는 중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 시행령을 이대로 밀어붙인다면, 제도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과 저항은 돌이키기 어려울 만큼 깊어질 것이다.
심덕섭 군수는 “안전은 미래 세대에 떠넘길 수 없는 당면 과제”라며 “정부가 이번 시행령을 전면 재개정하고, 주민 안전과 처우 개선을 위한 제도적 보완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권익현 군수도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합리적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며 연대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고창·부안 등 원전 인근 지자체들이 직접 나서 제도의 불합리성을 제기하고, 주민 안전과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제도 개선 요구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자리였다.
한편, 윤준병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정읍·고창)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의 특수성을 반영해 주변지역 범위를 기존 5킬로미터에서 10킬로미터로 확대하는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 고준위방사성폐기물법은 주변지역 범위를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으며, 시행령은 이를 발전소주변지역법처럼 5킬로미터로 제한하고 있다. 고준위방폐장은 일반 발전소보다 장기적이고 위험성이 높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주민 안전을 방기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윤 의원은 “법률에 직접 범위를 규정하고, 주변지역 범위를 10킬로미터로 확대해 주민지원 범위를 현실화함으로써 주민 참여와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며 입법적 보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고창군·부안군을 포함한 전국원전인근지역동맹과 탈핵단체들은 방사선비상계획구역 기준 30킬로미터를 주장하고 있어, 서로 방향은 같지만 정책목표는 충돌한다.
탈핵에너지전환전북연대 “고준위방사성폐기물법 시행령 전면 재논의하라”…“방사능 피해는 행정구역 경계에서 멈추지 않는다”
같은날 탈핵에너지전환전북연대는 또한 전북도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창·부안을 비롯한 전북 주민 의사를 무시하고 제정된 이번 시행령을 강력히 규탄하며, 즉각 폐기하고 원점에서 재논의할 것을 촉구한다”며 “고준위방사성폐기물법 시행령은 그 시작부터 민주적 절차를 완전히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고창·부안 지자체·의회·시민단체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법 시행령 의견수렴 기간동안 수차례 이견을 개진했으나 산업통상자원부는 일절 수용하지 않았다”며 “고준위핵폐기물 문제는 사회적 논의와 국민적 합의가 필수적임에도 정부는 오직 핵발전소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특별법과 시행령을 강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핵발전소 부지 내 저장시설 의견수렴 지역범위를 최소 30킬로미터로 확대하고 지역주민의 실질적 의사결정 참여를 법적으로 보장하라”며 “핵발전소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 건설계획을 백지화하고 핵폐기물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강조했다.
고준위핵폐기물의 안전한 관리를 위한 원칙과 절차 등을 규정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특별법은 ▲주민투표 실시와 통보 범위 ▲관리시설 부지 유치지역과 주변지역 범위 ▲부지 내 저장시설 관련 범위 등을 모두 시행령에 위임했다. 시행령은 이 범위를 일률적으로 ‘5킬로미터 이내’로 규정했다. 이는 ‘발전소주변지역법’의 주변지역 규정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원전 영향과 방사선 피해는 반경 5킬로미터에 국한되지 않고, 행정구역 경계에서 멈추지 않는다”며 “국제적 방사선비상계획구역 기준인 30킬로미터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사능방재법’상 방사선비상계획구역(방사선 비상 또는 재난이 발생하면 주민 보호 등 긴급 보호 조치를 위한 범위)를 핵발전소에서 반지름 20~30킬로미터로 설정한 것을 근거로 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