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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의 틀 안에서 솟구치는 시인의 목소리가 고창의 땅과 사람을 품고 『소리꽃』으로 피어올랐다.
삶에서 길어 올린 노래, 『소리꽃』
김영환 시인의 두 번째 시조집 『소리꽃』이 9월30일 도서출판 기역(책마을해리)을 통해 출간됐다. 총 120쪽 분량으로 구성된 이 책은 고창의 언어, 풍경, 역사, 삶의 결이 응축된 시조 100여 수를 담고 있다. ‘삶을 맷돌에 갈아내어 채로 걸러낸 눈물’이라는 표현처럼, 시인은 자신의 고통과 기억, 그리고 고창 사람들의 숨결을 시조라는 정형의 틀 안에서 섬세하게 풀어냈다.
김영환 시조시인은 2011년 『대한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고창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현재 (사)한국문인협회 고창지부장과 전라시조문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고창군청에서 30여년간의 공직생활을 퇴임한 후, 지역문학과 원목공예 작업을 병행하며 글과 손의 노동이 만나는 삶을 살고 있다. 꽃무릇시화공모전 최우수상, 가람이병기추모 전국시조현상공모 장원, 전라시조문학상, 고창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그의 첫 시집 『바람과 구름과 비』에 이어 이번 『소리꽃』은 시조 장르 안에서의 표현 폭과 미학의 밀도를 확장한 결과물로, 고창에서 살아낸 시인의 시간과 감정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
진채선에서 상사화까지, 5부 구성의 시적 여정
『소리꽃』은 총 5부로 구성돼 있다. 1부 ‘소리꽃’은 시집 제목이자 진채선을 소재로 한 시편을 중심으로 고창의 역사와 민초들의 노래, 전통소리의 맥락을 시조로 풀어낸 장이다. 첫 여성 명창 진채선을 향한 시인은 “삼천리 금수강산 모두가 하나되어 / 바닷가 모래언덕에 소리꾼이 모이네”라는 구절로 정형시 안에서 틀을 깨는 여성의 힘을 노래했다.
2부와 3부는 자연과 사랑의 이야기로, 구시포 바다의 사랑가와 선운사 꽃무릇의 슬픈 노래, 도솔산·참당암·곰소만 등의 자연지형이 시조의 배경이자 주체로 등장한다. 특히 3부 ‘상사화’는 동백·목련·배롱나무·위도상사화·가시연꽃 등 각 계절과 지리 속의 꽃들이 감각적 시어로 살아 숨 쉬며, 그 자체로 존재의 상징과 감정의 매개가 된다.
4부 ‘고향 생각’과 5부 ‘풍경소리’는 사람의 이야기다. 어머니, 고향, 기억, 상처, 추억이 녹아든 시조들이 실려 있다. 시인은 이 시편들에 포크가수 박우물과 협업한 노래시까지 함께 묶어, 독자들에게 낭송과 흥얼거림이 교차하는 시적 경험을 선사한다.
‘고창의 말’로 직조된 시조의 미학
김영환 시조의 가장 큰 특징은 ‘고창의 말’로 직조됐다는 점이다. 시인은 고창의 땅과 물, 바람과 햇볕, 지역민의 말쏨씨를 끌어와 시조의 재료로 삼는다. 그의 언어는 고창의 억양과 정서를 품고 있으며, 시조의 삼장구(3장 구조) 리듬은 삶의 곡선과도 자연스럽게 닮아 있다.
출판사는 “시조라는 정형 안에서 시인이 길어 올린 언어는 고창 땅을 훨훨 날아다니며 산천과 사람의 이야기를 벼려놓는다”고 소개했다. 특히 책에 수록된 부록 ‘고향 생각’과 ‘구시포 바다의 노래’는 지역민들이 더 가까이 시집을 체험할 수 있는 연결고리다.
시조가 된 삶, 삶이 된 시조
『소리꽃』은 시조를 단순한 문학 양식이 아닌, 삶의 방식으로 끌어올린 작업이다. 시인은 펴내는 글에서 “행복이란 갈망과 절망 속에서 거울 속 자기 모습을 보며 살짝 미소 짓듯 시어를 토해내는 일”이라며, 시를 통해 자신을 직면하고 새롭게 걸어 나가는 과정을 고백한다. 고창이라는 지역에서 오랜 시간 시와 나무, 노동과 공동체, 예술과 일상을 함께 살아온 김영환 시조시인의 이번 시집은 고창이라는 공간에 기반한 ‘문학적 자립’의 한 표본으로 읽힌다.
『소리꽃』은 고창이라는 공간과 김영환 시조시인의 삶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피어난 ‘소리의 꽃’이다. 정형을 따르되 그 틀을 유연하게 풀어내며, 지역과 역사, 사람과 자연이 오롯이 담긴 시어를 통해 고창의 시조가 다시 살아난다. 시인은 고창의 삶을 노래했고, 그 노래는 시조라는 이름으로 독자들 앞에 머문다. 『소리꽃』은 그래서 지역문학이 가지는 내적 밀도와 자생력을 보여주는 한 권의 증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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