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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김개남 장군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순국 131주기 추모제가 정읍에서 열려, 장군의 애국정신과 희생정신을 다시 새기는 시간이 됐다. 동학농민혁명의 핵심지도자 김개남 장군의 순국 131주기 추모제가 10월18일 정읍시 산외면 동곡리 묘역에서 엄숙하게 봉행됐다. 정읍시 주최로 열린 이날 추모제에는 각계 인사와 시민 200여명이 참석해 장군의 애국정신을 되새겼다.
이번 행사는 김개남 장군 기념사업회(회장 김두식)가 주관했으며, 동학농민혁명 지도자의 사상과 정신을 후세에 계승하고 그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현장에는 이학수 정읍시장, 윤준병 국회의원, 박일 정읍시의장, (사)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곽형주 이사장을 비롯해 전국 동학농민혁명 유족과 관련 단체, 지역 주민 등이 함께했다. 추모제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을 향한 묵념으로 시작됐다. 이어 이학수 시장과 윤준병 의원, 박일 의장의 추모사가 이어졌으며, 초헌·아헌·종헌 순으로 전통 제례가 봉행됐다. 참석자들은 분향과 재배를 통해 장군의 넋을 기리고, 음복과 오찬을 함께하며 그 뜻을 나눴다.
이학수 시장은 “김개남 장군의 뜻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동학농민혁명 선양사업과 역사 알리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시민들도 “폭정과 외세에 맞선 장군의 용기와 정의를 오늘의 삶 속에서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김개남 장군은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1894년 9월 동학농민군이 재봉기했을 당시 청주 병영을 공격했으나 실패한 뒤 쫓기는 신세가 됐다. 안타깝게도 옛 친구 임병찬의 밀고로 체포됐고, 정식재판 없이 전라감사 이도재의 심문만으로 1894년 12월3일(음력) 전주 초록바위에서 순국했다. 당시 시신은 심하게 훼손돼 수습되지 못했고, 현재의 묘는 1995년 후손들이 조성한 가묘다. 장군의 이름은 여전히 민중의 자존과 항거의 상징으로 남아 지역사회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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