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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이 학술 현장에서 다시 읽히며 고창 불교문화의 뿌리를 비추고 있다. 고창군이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의 역사·전승·보존 방안을 한자리에 모으며, 거대한 바위불의 시간을 새로 읽어낼 계기를 마련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그동안 전해지던 전승담부터 학계 연구 성과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하며 국가유산으로서의 위상을 현장 안에서 다시 정리하는 자리였다.
고창군과 올댓해리티지연구소는 11월14일 오후 고창문화원에서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 활성화 방안 모색을 위한 학술대회’를 열었다. 학술대회는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의 역사적 가치와 위상 재조명’을 주제로, 동불암지 마애불을 둘러싼 조성 배경과 조형 양식, 전승 이야기, 향후 보존·활용 방향을 한 자리에서 짚어보는 취지로 마련됐다. 고창군과 올댓해리티지연구소는 동불암지 마애불을 고창 지역사와 한국 불교미술사의 중요한 축으로 삼고, 체계적인 연구와 지역 연계 활용 방안을 모색하는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정성권 교수(단국대)는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을 “호남 서부지역의 경제력이 만들어낸 11세기 초대형 불상이며 법상종 교단의 대표적인 마애불”이라고 밝히면서, 주변의 조창 운영과 도요지 운영 등 지역 경제 기반과 연결된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불상이 단순 신앙 대상으로만 머문 것이 아니라 고려시대 서남해안 경제권과 긴밀히 얽혀 조성된 사례라는 점을 강조했다. 엄기표 교수(단국대)는 ‘보존과 활용’ 발표에서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보존과 활용과 더불어, 마애여래좌상 그 자체를 위한 보존과 활용 정책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제시하며, 문화재에 대한 행정적 접근이 아닌 ‘존재 그 자체’의 보존 원칙을 최우선에 둘 필요성을 밝혔다.
방민아 연구원(전주문화유산연구원)은 ‘선운사 동불암지의 고고학적 발굴 성과―마애여래좌상과 관련하여’라는 발표에서 그간의 발굴 조사 결과를 정리했다. 최인선 교수(순천대)는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의 양식과 특징―동학의 석불비기와 관련하여’ 발표를 통해 조형적 특성과 사상사를 함께 살폈다. 오강석 위원(국가편찬위원회)은 ‘선운사 동불암지 동면불의 설치 구조 연구’를 통해 바위 면과 불상 조각의 구조적 특징을 분석했다. 송화섭 전 중앙대 교수는 ‘문헌에 나타난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의 명칭 검토’ 발표에서, 문헌 자료를 토대로 현재 통용되는 명칭의 적절성을 검토했다.
심덕섭 고창군수는 인사말에서 “앞으로도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에 대해 문헌 고증과 지역 커뮤니티와의 연계를 포함한 활용 방안을 꾸준히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심 군수는 또 “겉모습을 보존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살아 있는 문화콘텐츠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고창군이 책임 있게 뒷받침하겠다”고 덧붙였다. 고창군은 향후 연구 성과를 토대로 보존정책과 활용계획을 함께 검토하고, 지역사회와 연결된 문화유산 활동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은 고창 선운사 산자락 암벽에 새겨진 거대한 바위부처이자, 전설과 근대사의 기억까지 품은 바위 불상으로, 국가지정 보물로 관리되고 있다. 신체 높이가 약 15.7미터, 무릎 너비는 약 8.5미터이며 연꽃무늬를 새긴 받침돌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마애불의 양식으로 보면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지만, 조성 시기는 신라말·고려·조선 등으로 의견이 다양하고, 백제 위덕왕 때 검단선사가 새겼다는 전설도 있다.
이 불상 이름의 ‘동불암(東佛庵)’에는 또 다른 뿌리가 있다. 예전에는 이 자리 부근에 ‘동불암’이라는 암자가 있었고, 지금의 바위불상 자리에는 금동불이 모셔져 있었다고 전한다. 금동불이 도난 또는 소실된 뒤, 그 자리에 직접 여래좌상을 새겨 넣으면서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이 되었다는 설명이 따라붙는다. 글자 ‘동(東)’이 아니라 ‘동(銅·구리 동)’이 맞는 이름이라는 견해도 이 전승과 연결된다.
동불암지 마애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는 가슴 부분에 얽힌 전설과 역사 이야기다. 바위불 가슴 안쪽에는 복장공(속을 파낸 자리)이 남아 있는데, 예전부터 “검단선사가 쓴 비결록이 들어 있다”, “복장 안 비기가 세상에 드러나는 날 조선이 무너진다”는 전승이 이어져 왔다. 18세기 말 전라감사 이서구가 기록을 꺼내 보려다 벼락이 떨어져 다시 넣었다는 이야기, 1892년 동학농민혁명 직전 동학 접주 손화중이 그 비밀 기록을 무사히 가져갔다는 이야기 등도 문화재청 안내에 실린 전승담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전승은 역사적 사실 여부와 별개로, 조선 말기 농민들이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던 열망이 민중 불상과 겹쳐 읽히는 지점이라 자주 언급된다. 거대한 바위불 가슴 속 비밀 기록에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염원이 겹쳐진 상징 구조라고 볼 수 있다. 학술대회 발표자들은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이 바위불상에 머무르지 않고, 민중사와 사상사, 현대의 보존정책까지 이어지는 입체적인 연구 대상임을 강조했다. 고창군과 연구자들의 논의가 계속될수록,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은 고창을 대표하는 국가유산으로서 한층 또렷한 위상을 갖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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