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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2일 자정을 기해 한빛핵발전소 1호기의 법적 설계수명이 종료됐지만, 정부와 사업자는 10년 추가 가동이라는 위험한 도박을 선택했다. 한국수력원자력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주민들의 안전 우려를 외면한 채 수명연장 절차를 강행하자, 영광과 고창 등 호남권 주민들은 발전소 정문 앞에서 직접 ‘영구정지’를 선포하며 국가의 일방 행정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주권자의 이름으로 노후 원전의 종말을 선언한 이번 행사는 행정적 강행을 거부하는 지역 공동체의 실질적 저항권 행사이다.
주민들은 한빛 1호기 앞에서 “문 닫고 시작하는 새로운 세상!”을 외쳤다. 12월20일 전남 영광 한빛핵발전소 정문 앞 도로에서 ‘한빛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이 열렸다. 호남권 주민과 전국에서 모여든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정당 관계자들이 설계수명을 다한 한빛 1호기의 영구정지를 선포하며, 핵발전에 종속되었던 과거를 뒤로하고 주권자의 이름으로 안전한 미래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장은 40년 동안 누적된 원전 가동의 불안을 끝내고자 하는 함성으로 채워졌다.
이번 선포식은 지역 주민과 종교계, 시민단체 등 민간이 주관한 행사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선언문에서 1986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한빛 1호기의 40년을 “고장과 사고로 점철된 흑역사”로 규정했다. 주최 측 자료에 따르면, 한빛 1호기에서 지난 40년간 45건의 고장과 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격납건물에서 40센치미터 크기의 대형 구멍이 발견되고 철판이 부식되는 등 안전 관리체계의 허점이 드러났다. 특히 2019년 제어봉 조작 실패에 따른 열출력 급증 사고를 언급하며, 이 사건이 지역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불안감”을 남겼다고 적시했다.
참가자들이 전면에 세운 요구는 “마음 편히 발 뻗고 잘 수 있는 권리”였다. 이들은 한빛 1호기의 수명연장이 노후 발전소를 더 돌리는 문제를 넘어, 송전망 문제와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 문제 등 “비민주적이고 부정의한 정책”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발전소 인근 어업의 몰락과 공동체의 갈등을 지켜봐 온 주민들은 핵발전소가 지역의 자생적 발전과 상상력을 가로막아 왔다고 성토했다.
행사는 전북 풍물패의 길놀이로 시작했다. 이어 호남의 무등산 호랑이와 저승사자가 등장해 “사건 사고의 골칫덩이” 한빛 1호기를 데려가러 왔다는 퍼포먼스로 분위기를 이어갔다. 절정은 ‘영구 봉인식’이었다. 참가자들은 “한빛 1·2호기 문 닫고, 발 뻗고 자자!”라는 구호에 맞춰 한빛 1호기 모형을 대형 현수막으로 덮어 봉인했고, 비누방울 총으로 축포를 터뜨리며 “핵 없는 세상”을 향한 새 출발을 환호 속에 알렸다.
종교계 인사들도 현장에 함께하며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강조했다. 불교 법만 스님은 “오늘부로 한빛 1호기는 영원히 멈출 것”이라며 국민적 동참을 호소했다. 원불교 유도은 교무는 14년여간 이어온 탈핵순례가 영구정지로 귀결되었음을 선언하며 지속 가능한 기도를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천주교 양기석 신부는 이번 영구정지가 “돈과 죽음이 아닌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회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라고 말했으며, 고창 주민 박종훈 목사는 “우리는 이 땅을 잠시 빌려 쓰는 나그네일 뿐”이라며 후손에게 위험을 물려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최 측은 이번 선포식을 한빛 1호기만의 사건으로 한정하지 않았다. 2026년 설계수명이 끝나는 한빛 2호기와 고리·월성 원전 등 잇따라 종료를 앞둔 노후 핵발전소들의 향방과도 연결돼 있다. 참가자들은 이날을 “강탈당했던 안전하고 새로운 내일을 되찾는 날”로 선언하며, 주권자인 국민의 힘으로 탈핵 세상을 만들어갈 것을 다짐했다. 이번 행사는 영광핵발전소안전성확보를위한공동행동, 공공성강화정읍시민단체연대회의, 탈핵에너지전환전북연대, 핵없는세상광주전남행동, 핵없는세상을위한고창군민행동, 영광한빛핵발전소영구폐쇄를위한원불교대책위, 천주교광주대교구정의평화의원회가 주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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