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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봉·레드향·천혜향·황금향 등 감귤보다 크고 당도가 높아 ‘만감(滿柑)류’라 불리는 과일들은 대개 제주도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정읍이 ‘과학’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들고 만감류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정읍시농업기술센터가 도입한 당산도 측정 시스템이 그 중심에 있다. 농부의 오랜 경험과 직관에만 의존하던 시대가 저물고, 이제 ‘데이터’가 농산물의 맛을 보증하는 시대가 왔다.
그동안 과일의 가치를 매기는 척도는 주로 단맛의 정도를 나타내는 ‘당도(Brix)’였다. 그러나 소비자가 혀끝으로 느끼는 실제 풍미는 단맛과 신맛의 조화, 즉 ‘당산비(감미비)’에서 결정된다. 설탕처럼 달기만 한 맛보다는, 적절한 산미가 뒷받침되어야 감칠맛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정읍시가 도입한 정밀 측정 장비는 당도는 물론 산도(%)까지 분석해 두 수치의 비율을 정확히 계산해낸다. “우리 집 과일이 맛좋다”는 막연한 홍보 대신, “당산비 14의 최상급 품질”이라는 객관적인 성적표를 제시하게 된 것이다.
만감류는 수확 시기에 따라 맛의 편차가 매우 크다. 너무 일찍 수확하면 산미가 강해지고, 시기를 놓치면 과육이 푸석해지기 십상이다. 센터는 수확기인 12월부터 내년 2월까지를 중점 관리 기간으로 정하고, 관내 농가에 품질 측정 서비스를 지원한다. 이 데이터는 농민들에게 실질적인 ‘수확 나침반’이 된다. 측정값을 바탕으로 출하 시기를 정밀하게 조정하고 선별 기준을 엄격히 함으로써, 시장에 나오는 정읍 만감류의 맛을 상향 평준화할 수 있게 되었다.
정읍 만감류는 제주산과 비교했을 때 산미와 단맛의 밸런스가 뛰어나 ‘진한 맛’이 강점으로 꼽힌다. 현재 정읍에는 45개 농가가 약 12.8헥타르 규모로 만감류를 재배하고 있다. 이들은 ‘단풍아열대연구회’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역량 강화 교육과 판촉 행사, 나눔 봉사 등을 이어가고 있다. 정읍시농업기술센터 기술보급과(과장 하헌준)는 12월24일 “맛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를 객관적으로 관리함으로써 농가는 고품질 생산으로 소득을 높이고, 소비자는 균일한 맛의 정읍산 만감류를 신뢰하게 될 것”이라며 “정읍을 내륙 만감류의 독보적인 주산지로 키워가겠다”고 밝혔다.
행정의 과학적 지원과 농가의 자발적인 노력이 만나면서, 정읍은 이제 내륙 만감류의 새로운 거점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마치 정밀한 나침반을 얻은 항해사와 같다. 망망대해 같은 시장에서 ‘데이터’라는 정확한 지표를 따라 최상의 맛을 찾아내고 유지함으로써, 정읍 만감류는 독보적인 경쟁력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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