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주간해피데이 | |
자립은 시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취약계층의 삶을 바꾸는 힘은 현금 지원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설계된 일의 구조에서 나온다. 정읍시가 자활근로사업을 ‘지원 사업’이 아닌 ‘경제 생태계’로 재편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장 진입부터 기업 창업, 그리고 지역 환원까지 이어지는 단계적 설계는 자활을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닌 공공의 책임으로 끌어올린다.
정읍시는 2025년 자활근로와 자활기업 지원에 총 27억원을 투입했다. 단기 생계비 보조를 넘어 안정적인 일자리 제공과 근로 환경 개선, 사업성과의 지역환원까지 함께 묶는 구조다. 이 과정에 참여한 인원은 약 145명으로, 참여자들은 각자의 근로 능력에 맞는 사업단에서 직무 교육과 인문학 연수 등 역량 강화 과정을 병행하며 노동시장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시가 그리는 자활의 방향은 ‘버티는 생계’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소득 구조로 전환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시장 진입부터 사회적 일자리까지…유형별 맞춤 구조
정읍지역자활센터가 운영하는 사업단은 모두 12개다. 참여자의 역량과 목표에 따라 크게 시장진입형과 사회서비스형으로 나뉘며, 단계별 이동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 ▲신화세탁, ▲세탁1번가, ▲베트남골목식당, ▲정읍카페보네, ▲프리미엄세차 등은 기술 습득을 통해 창업이나 일반 기업 취업을 겨냥한 시장지향적 사업단이다. 반면 ▲샘골영농, ▲전처리사업단, ▲애견간식사업단 등은 지속 가능한 근로를 통해 노동 습관을 회복하고 장기 고용을 도모하는 사회서비스형에 속한다.
이 구조는 단순 분류가 아니라 이동 경로다. 근로 경험이 쌓이면 시장형으로, 성과가 검증되면 창업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2024년 11월 키즈놀이방 사업단 ▲‘블럭팡팡’이 자활기업으로 창업했다. 정읍시는 이로써 ▲정읍주거복지센터, ▲정읍희망나르미, ▲(유)기분좋게, ▲청크린, ▲샘골식품가공센터 등과 함께 자활기업 생태계를 한층 두텁게 갖추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업단→자활기업’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실제로 작동한다는 점이, 이번 창업에서 확인되는 대목이다.
옛 행정복지센터 리모델링…공간을 바꾸면 현장이 바뀐다
정읍시는 올해 옛 행정복지센터 건물을 리모델링해 정읍지역자활센터에 단독 시설을 제공했다. 이 조치로 임대료 절감 효과를 얻는 동시에, 기존 임차 건물에서 드러났던 협소한 교육장과 상담실 문제를 해소해 사업의 안정성을 높였다. 좁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던 교육과 상담이 분리·확장되면서 직무 훈련의 밀도와 참여자의 집중도가 함께 높아졌다.
근로 환경 개선도 병행됐다. 폭염에 취약한 샘골영농 등 야외 사업장에는 에어컨을 추가 설치하고 기능성 넥쿨러를 지급했다. 더 나아가 한국자활복지개발원 공모사업 예산을 활용해 전북지역 자활센터 가운데 처음으로 농지 작업장에 이동형 수세식 화장실을 설치했다. 현장의 불편을 그대로 대응한 조치로, 근로자의 안전과 존엄을 자활 정책의 중심에 놓겠다는 메시지다.
6년 연속 ‘우수기관’…성과로 확인된 운영 역량
정읍 자활사업의 운영 역량은 외부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정읍지역자활센터는 보건복지부가 주관한 ‘2025년 전국지역자활센터 성과평가’에서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2019년부터 올해까지 6년 연속이다. 전국 228개 센터를 대상으로 한 평가에서 참여자 취·창업률, 급여 변동률, 교육 이수율 등 주요 지표에서 고르게 높은 점수를 받았다. 우수기관 선정으로 확보한 인센티브 1519만원은 센터 운영비와 종사자 처우 개선에 재투자된다. 이는 단기간의 실적이 아니라 장기 운영 체계가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도움 받던 손’이 ‘도움 주는 손’으로…감동의 환원
정읍 자활사업의 가장 아름다운 지점은 ‘사회공헌’이다. 자활사업단과 자활기업이 다시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기여자의 삶’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골목식당은 방학 중 급식 공백에 놓인 아동에게 점심을 제공하고, 블럭팡팡은 취약계층 아동에게 무료 이용을 지원한다. 세탁1번가는 노숙인 시설과 독거노인 가구의 이불 빨래를 정기적으로 맡고 있다. 이 흐름은 지난 4월 정읍시와 정읍시자활기업협의회, 정읍지역자활센터가 체결한 업무협약을 계기로 더욱 구조화됐다. 협약 이후 5개 자활기업은 소성면 화재 피해 가구를 찾아 도배와 장판 교체를 진행했다.
정읍시 백지원 사회복지과장은 “자활사업은 단순히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기술 습득과 자산 형성을 통해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며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맞는 사업 모델을 발굴하고, 자립 사례가 확산될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자활근로 참여와 자활기업 창업, 자산형성지원에 대한 상담은 정읍시청 사회복지과 생활보장팀, 정읍지역자활센터, 주소지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에서 가능하다. 일자리를 넘어 구조를 바꾸는 실험은 이미 현장에서 작동하고 있다. 정읍이 놓은 자활의 사다리는 개인의 삶을 넘어 지역 경제의 한 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