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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된 마을 터가 스스로 숨을 쉬며 원시 숲으로 변해가는 동안, 그 속에서 어떤 생명들이 피어났을까. 고창군이 6년의 조사 끝에 펴낸 운곡람사르습지 생태도감은 자연이 스스로 쓴 치유와 복원의 기록이다. 850종에 달하는 풀과 나무의 이름 하나하나를 불러주는 이 도감은, 한때 사람의 터전이었던 곳이 어떻게 지구의 소중한 생태 금고로 거듭났는지를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다.
고창군이 운곡람사르습지의 풍부한 식물 자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생태도감 ‘고창 운곡람사르습지 일대에서 볼 수 있는 식물―함께 찾아보는 우리나라 풀과 나무 1-2’을 발간했다. 이번 도감은 2018년부터 2023년까지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전문가들이 100차례 이상 습지 구석구석을 누비며 직접 조사하고 촬영한 땀방울의 결실이다.
도감에는 운곡습지 전역에서 확인된 600여 종의 식물을 비롯해 인근 지역의 식물까지 총 132과 850종류의 방대한 정보가 담겼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멸종위기 야생생물인 백양더부살이, 가시연, 진노랑상사화의 서식 현황을 정밀하게 기록했다는 점이다. 또한, 과거에는 흔했으나 이제는 서식지 파괴로 보기 힘들어진 ‘논냉이’를 운곡습지의 깃대종으로 소개해 학술적 가치를 더했다. 물속에 잠겨 번식하는 독특한 습성을 지닌 논냉이가 대규모 군락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운곡습지의 건강성을 증명하는 지표가 된다.
이번 도감은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구성됐다. 현장에서 헷갈리기 쉬운 유사 종들을 사진으로 비교 설명하여 생태 관광객들이 가이드북으로 활용하기에 손색이 없다. 고창군 세계유산과(담당팀장 안찬, 주무관 이진희)는 “이번 도감은 사람의 발길이 제한된 시간 동안 자연이 스스로 일궈낸 경이로운 생명력을 기록한 결과물”이라며, “운곡습지의 생태계를 체계적으로 보전함은 물론, 이를 활용한 생태 관광과 교육 사업을 더욱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고창군은 이 소중한 기록물을 전국 도서관과 학교, 국가생태관광지역 등에 배포해 살아있는 생태 교육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종이 위에 새겨진 850종의 식물 정보는 단순히 학술적인 수치를 넘어선다. 그것은 우리가 자연을 간섭하지 않고 기다려주었을 때 자연이 돌려주는 풍요로운 보답이다. 이번 생태도감 발간을 계기로 운곡습지는 이제 세계적인 생태 교육의 장으로 도약할 준비를 마쳤다. 도감에 담긴 초록빛 생명력이 다음 세대에게도 변함없이 이어지길 바라는 고창군의 약속이 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운곡의 숨은 주인공, ‘논냉이’를 아시나요?]
운곡람사르습지의 깃대종(지역을 대표하는 상징 생물)인 ‘논냉이’는 이번 도감에서 가장 주목받는 식물 중 하나다. 과거 우리 주변 논둑이나 물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논냉이는 무분별한 개발과 농약 사용 등으로 이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희귀종이 되었다.
논냉이는 겨울에도 푸른 잎을 유지하다가 이른 봄 가장 먼저 꽃을 피워 봄을 알린다. 특히 물속에서 싹을 틔우고 번식하는 독특한 생태적 특징을 가지고 있어 습지 환경에 매우 예민한 식물이다. 운곡습지에 논냉이 군락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의 수질이 깨끗하고 생태계가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도감을 들고 운곡습지를 걷다 발밑의 작은 논냉이를 발견한다면, 우리는 자연이 살아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를 만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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