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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감옥이 된 정읍 돼지농장…이주노동자 잔혹사는 ‘구조적 폭력’
전북이주인권노동네트워크 기자회견 “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과 실태 조사 촉구”…체류자격 종속과 안전의 사각지대
김동훈 기자 / 입력 : 2026년 01월 12일(월)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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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간해피데이

정읍의 한 돼지농장에서 발생한 이주노동자 상습폭행 의혹은 개별 사업장의 일탈을 넘어, 농촌 이주노동자를 둘러싼 구조 자체를 다시 묻게 한다. 사건이 알려지자 시민단체들은 가해자의 인성문제가 아니라, 고립된 농촌환경과 사업주에게 종속된 체류자격 구조가 폭력을 반복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주노동자의 생명과 존엄이 개인의 선의에 맡겨진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는 문제 제기다.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이 농장에서 약 16개월간 일한 네팔 국적 노동자 등 3명은 관리자와 농장주로부터 반복적인 폭행과 폭언을 당했다. 관리자는 삽을 휘두르는 등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면서도 씨씨티비(CCTV)가 없는 장소를 골랐고, 농장주 역시 욕설과 폭행을 이어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피해 노동자는 생명의 위협을 느껴 사업장을 이탈했고, 지난 1219일 경찰에 신고했다. 농장주와 관리자는 폭언 사실은 인정했지만 폭행은 부인하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전북평화와인권연대, 민주노총 전북본부, 민변 전북지부, 전북중국인협회, 전북특별자치도노동조합, 아시아이주여성센터 등 14개 단체로 구성된 전북이주인권노동네트워크(이하 전북이주넷)는 지난 1230일 고용노동부 전주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이주노동자의 생명과 존엄을 사업주의 인성에만 맡겨두는 방관을 중단하라며 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과 실태 조사를 촉구했다.

시민단체들이 문제의 핵심으로 지목한 것은 사업주에게 종속된 체류자격 구조. 현행 고용허가제 아래에서 다수의 이주노동자는 고용주의 동의 없이는 사업장을 자유롭게 옮기기 어렵다. 농촌 축산현장은 주거지와 떨어져 있고, 외부와의 접촉도 제한적이다. 이 같은 조건 속에서 폭언과 폭행, 임금 체불이 발생해도 피해를 외부에 알리기란 쉽지 않다. 전북이주넷은 고용허가제가 특히 고립된 농촌에서는 이주노동자를 침묵하게 만드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읍 사건은 전북지역 농촌에서 반복돼 온 인권유린 사례의 연장선에 있다. 최근 몇 년간 전북의 축산농가에서는 이주노동자가 기본적인 안전조치 없이 위험한 작업에 투입돼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는 사고가 잇따랐다. 202412월 완주의 한 돼지농장에서는 분뇨처리 과정 중 이주노동자가 숨졌고, 2025년 초 김제의 돼지농장에서는 돼지분뇨장 질식 사고로 이주노동자가 중상을 입었다. 지난해 12월에는 정읍의 또 다른 돼지농장에서 네팔 국적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도 발생했다.

현장의 안전 실태 역시 심각하다. 전북이주인권노동네트워크가 도내 돼지농장 등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2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절반에 해당하는 11명은 돼지 분뇨 처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스 중독과 질식 위험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농장에 모국어로 된 산업안전 안내서나 표지판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15명이 없다고 응답했다. 언어 장벽과 안전 교육 부재가 생명과 직결된 위험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이민경 민주노총 전북본부장은 기자회견에서 한국 사회가 기피해 온 농촌과 축산 현장을 떠받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분명한 우리 사회 구성원이라며 이들의 죽음과 고통을 개인의 비극으로만 취급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취약한 농어촌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안전 실태를 전면적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들은 정부와 전북도에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 자유 보장 농어촌 이주노동자 인권·노동안전 특별 조사 시행 유엔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 보호에 관한 협약(ICRMW)’ 비준 등을 요구했다. 또한 고용노동부는 (경찰수사와는 별개로) 돼지농장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을 직권 조사하고 가해자를 엄중 처벌할 것을 요구했다. 폭력을 개인의 일탈로 환원하지 말고, 제도와 구조를 점검하라는 요구다.

정읍 축산농가 폭행 의혹은 이주노동자의 노동이 한국 농촌을 어떻게 떠받치고 있는지를 다시 드러낸다. 동시에 그 노동이 어떤 조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묻고 있다. 고립된 공간, 종속된 체류자격, 부실한 안전 체계가 결합된 현실을 바꾸지 않는 한, 비슷한 사건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주노동자가 일하러 온 사람으로서 존엄과 안전을 보장받는 구조를 만드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김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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