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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고창의 억눌린 삶은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웃음과 풍자 그리고 창작의 소리를 통해 오늘의 관객 앞에서 다시 숨 쉬었다. 척화비를 둘러싼 시대의 갈등과 억압받던 백성들의 삶이 판소리의 해학과 창작 음악을 만나면서, 역사는 관객 앞에서 다시 질문을 던지는 ‘오늘의 이야기’가 됐다.
사단법인 동리문화사업회와 동리창극단은 지난 8월27일 오후 7시30분 고창문화의전당에서 제4회 기획공연 창극 <1872 고창 히어로―소리의 성벽을 쌓아라!> 개막공연을 선보였다. 이번 공연은 고창군이 주최하고 군비를 지원했으며, 사단법인 동리문화사업회와 동리창극단이 주관했다. 공연은 무료로 진행됐고 객석은 공연을 찾은 군민들로 가득 찼다.
■척화비의 시대, 백성의 삶을 무대로
작품은 고창읍성에 척화비가 세워지던 1872년을 무대로 삼았다. 서구 열강의 침탈과 관의 횡포, 모양성 보수 노역에 시달렸던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역사적 배경으로 끌어와 판소리와 창극의 언어로 풀어냈다. 무대에는 동리정사의 큰 어른 신재효와 조선 최초의 여성명창 진채선, 남성명창 박만순 등 고창을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들이 등장했다. 신재효와 진채선, 승우 어린이, 동리정사에서 수련하는 소릿꾼들은 척화비를 둘러싸고 드러난 권력층과의 갈등을 창작 노래로 표현하며 당시 시대상을 무대 위에 펼쳤다.
작품은 억압과 갈등을 정면의 비극으로만 다루지 않았다. 풍자와 해학을 통해 백성들의 울분을 풀어내고, 웃음 속에서 삶의 희망을 발견하는 판소리 특유의 힘을 창극의 역동성과 결합했다. 작품이 붙든 중심은 결국 ‘소리’였다. 작품 소개에서 말하듯 “칼은 몸을 베지만, 소리는 닫힌 귀를 열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생각이 무대 전체를 관통했다. 백성을 위한 노래와 세상을 향한 외침은 관의 횡포에 맞서는 이야기와 만나며 하나의 창작극으로 완성됐다.
■판소리의 뿌리에 현대적 감각을 더하다
이번 작품은 전통 판소리를 기반으로 하되, 오늘의 관객이 만날 수 있는 창극의 형식으로 새롭게 구성됐다. 연출과 각색은 전통 판소리의 예술성과 대중성을 결합해 온 오진욱 연출가가 맡았고, 최기우 작가가 대본을 집필했다. 홍정의 음악감독은 판소리의 깊이에 현대적 음악 어법을 더했으며, 판소리 연구자인 최동현 교수가 역사적 배경과 인물에 대한 고증과 감수를 맡았다.
역사적 사건과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 만큼 대본과 연출, 음악, 고증을 각각 전문 영역에서 구성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과거를 그대로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적 사실을 창작의 바탕으로 삼아 새로운 무대 언어를 만들었다는 점이 이번 공연의 특징이다. 신유섭 동리문화사업회 이사장은 공연에 앞서 “최기우 작가의 탄탄한 대본과 오진욱 연출가의 연출, 홍정의 음악감독의 선율, 최동현 교수의 고증이 시너지를 발휘해 고창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아낸 완성도 높은 유쾌한 창극이 완성됐다”라며 “시대의 고단함을 위로하는 유쾌한 에너지를 현장에서 느껴보시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옹녀전’에서 역사 창극까지, 네 번째 도전
이번 작품은 2023년 창단한 동리창극단의 네 번째 기획공연이다. 동리문화사업회 신유섭 이사장의 뜻으로 창단한 동리창극단은 판소리의 고장 고창을 기반으로 지역의 역사와 사람, 이야기를 창극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첫 작품은 동리 신재효의 사설 ‘변강쇠가’를 각색한 <옹녀전>이었다. 제2회 기획공연 <금파>에서는 고창의 판소리 인물을 조명했고, 제3회 <고창흥부설전>에서는 판소리 ‘흥보가’에 고창의 정서와 상상력을 더했다.
네 번째 작품인 <1872 고창 히어로―소리의 성벽을 쌓아라!>는 창작의 소재를 역사적 사건으로 넓혔다. 판소리 사설과 인물, 지역의 이야기를 거쳐 이번에는 1872년이라는 구체적인 시대와 사건을 창극의 무대로 끌어왔다. 동리창극단의 작업은 전통 판소리를 그대로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판소리가 지닌 음악성과 해학, 이야기의 힘을 오늘의 무대로 옮기면서 고창이 품은 역사와 인물, 문화적 자산을 새로운 창작의 재료로 삼고 있다.
■군민과 함께 완성한 ‘소리의 성벽’
이번 공연에서 1872년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었다. 신재효와 진채선, 동리정사의 소릿꾼들이 살아가는 시대와 백성들의 울분, 권력과의 갈등은 창작 노래와 판소리의 해학을 통해 관객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심덕섭 군수는 공연을 관람한 뒤 “오늘 공연은 1872년 고창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억압받던 백성들의 삶과 희망, 그리고 소리의 힘을 새롭게 풀어낸 뜻깊은 무대였다”고 밝혔다. 이어 “구한말 신재효, 진채선과 승우 어린이, 그리고 동리정사에서 수련중인 소릿꾼들이 척화비를 둘러싸고 노정된 권력층과의 갈등을 아름다운 창작 노래로 표현한 작품이었다”며 “작품준비에 애써주신 동리창극단과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신유섭 이사장과 직원분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오늘 객석을 가득 채워 주신 군민 여러분께도 따뜻한 박수를 보낸다”고 전했다.
이번 공연은 1872년의 시간을 그대로 되돌리는 무대가 아니었다. 척화비가 세워졌던 시대의 갈등과 백성들의 삶, 그리고 신재효와 진채선으로 이어지는 고창의 판소리 자산을 오늘의 창작으로 다시 연결하는 작업이었다. 억눌린 백성들의 울분은 소리가 됐고, 그 소리는 풍자와 해학을 거쳐 관객에게 닿았다. 동리창극단의 네 번째 기획공연은 그렇게 고창의 과거를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고, 지역의 역사가 오늘의 무대에서 다시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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